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지구촌 자금 시장이 21년 전 닷컴 버블과 흡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경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단순히 주가 밸류에이션이 한계 수위까지 뛴 데 따른 쓴 소리가 아니다. 뉴욕증시에서는 20년간 이어졌던 IT 대형주와 국채 수익률의 양의 상관관계가 깨졌고, 증시 바깥에서는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들의 돈잔치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재정 및 통화 측면의 유동성 공급이 초래한 결과로, 버블이 무너지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13일(현지시각) 시장 조사 업체 CB 인사이트에 따르면 연초 이후 전세계 스타트업 기업들의 자금 조달 규모가 2924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연간 수치인 3026억달러에 근접한 결과다.
지난해 3월 벤처 캐피탈 업계는 코로나19를 이른바 '블랙 스완'으로 규정하고, 비상장 기업의 자금 조달이 닷컴 버블 붕괴 직후인 2001년 및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 사태 당시인 2009년처럼 마비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자금시장은 전문가들의 예상과 정면으로 상반되는 상황을 연출했고, 신생 업체들이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
투자 규모 1억달러를 웃도는 이른바 '메가 라운드'의 건수가 연초 이후 751건에 달했다. 이미 지난해 수치인 665건을 훌쩍 뛰어넘은 셈이다.
미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영국의 벤처 캐피탈 업체 헉스턴 벤처스의 후세인 칸지 파트너는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자금 시장이 닷컴 버블이 무너지기 직전인 1999년과 매우 흡사하다"며 "유동성이 넘쳐나고, 잭팟을 터뜨릴 투자처를 발굴하려고 혈안"이라고 전했다.
1990년대 인터넷 기업에 대한 투기가 봇물을 이루면서 기업명에 '닷컴'이라는 용어가 들어가기만 해도 주가가 폭등했고, 1995~2000년 사이 나스닥 지수는 400%에 달하는 상승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버블은 무너졌고, 2000년 고점에서 2002년 10월까지 나스닥 지수는 단기간에 약 80%에 달하는 폭락을 연출했다.
이른바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모기업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대형 IT 종목이 상승 날개를 펼치면서 최근까지 5년 사이 나스닥 지수는 세 배 가까이 뛰었다.
아마존과 알파벳,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이 1조달러 선을 뚫고 올랐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나란히 기업 가치 2조달러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비상장 스타트업 가운데 10억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은 소위 '유니콘' 기업이 올해 상반기 249개 업체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연간 수치에 비해 두 배 가량 높은 결과다.
특히 디지털 결제 업체 스트라이프가 지난 3월 기업 가치 950억달러로 평가 받는 등 비상장 업체의 밸류에이션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투자자들은 강한 경계감을 내비치고 있다.
넘치는 유동성을 앞세워 벤처 캐피탈 업계에 '묻지마 투자'가 날로 고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투기적인 베팅의 결과가 2000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근처의 월가 표지판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영국 핀테크 스타트업 오픈파이드의 아이애나 디미트로바 최고경영자는 "기업의 수익성과 영속적인 성장 가능성에 근거한 투자가 아니라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모간 스탠리도 강한 경고음을 냈다. IT 대형주와 국채 수익률의 전통적인 상관관계가 깨졌고, 이는 기술주 밸류에이션이 위험 수위에 오른 사실을 드러내는 단면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20년간 기술주는 경제 성장 사이클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하며 등락했고, 장기물 국채 수익률과 양의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하지만 과도한 유동성이 IT 섹터와 채권시장에 교란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의 음의 상관관계를 연출하고 있다.
최근 상황은 21년 전 닷컴 버블이 붕괴됐던 시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고 모간 스탠리는 주장했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