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홈 영상 금융

속보

더보기

[영상] 비트코인① 한국 화폐 붕괴의 역사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 제2차 긴급 통화조치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조치
한반도 통일되면 원화 가치는 대 폭락? 왜?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 영화에서는 가끔 개인 금고에 5만원권 화폐를 가득 넣어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테크 측면에서 보면 이런 보관 방식은 당연히 최악이다. 합법화할 수 없는 검은 돈이나 탈세 목적이 아니라면 은행에 입금해 3%의 이자라도 받는 게 정상적인 화폐의 보관 방법이다.

그런데 화폐는 과연 영원한 걸까?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쓴다. 일본은 엔화, 유럽은 유로화, 중국은 위안화를 쓴다. 한국은 당연히 원화를 쓴다. 흥미로운 건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영원한 화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한국 화폐의 붕괴 역사를 살펴보자.

◆ 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한국은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역사적으로 주변국가들의 침략을 받는 일이 흔했다. 너무 먼 과거로의 역사여행은 자제하고 가까이에 있는 1900년도부터의 역사를 살펴보자. 1900년도 초반까지 조선에서는 상평통보가 화폐로 통용됐다.

그런데 1910년에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조선왕조)이 망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35년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이 시기에는 일본제일은행에서 발행된 '엔'과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 엔'이 화폐로 통용됐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됐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 지던 1945년 8월의 패망 직전에 도쿄에서 황급히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 한국으로 공수해 온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발행된 화폐로 인해 한국의 총 화폐 유통량은 1개월만에 기존의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화폐의 유통량이 2배로 늘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렇게 급조해 발행된 화폐들은 일본인들의 본국 귀향 자금으로 활용됐다. 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과 한국에 있던 일본인 단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다.

그 결과 한국 내의 물가폭등으로 이어져 몇 달 사이에 생활물가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 당시의 물가폭등으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서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때 만약 화폐 대신 금을 가지고 있었다면 화폐가치 하락의 상당 부분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광복 이후 한국경제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는 조선은행권이 '원(圓)'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통용됐다. 이런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5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한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개전 3일만에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은 한국은행 본점을 점령한 뒤 지하금고에서 미 발행 조선은행권 '원(圓)'을 대량으로 발견한다. 북한군은 남한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이 화폐들을 불법으로 마구 발행해 버린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다시 한번 급락했다.

그래서 이 당시 조선은행권을 가지고 있던 평범한 국민들은 본인들이 보유한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걸 다시 한번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물론 전쟁 중에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 상황에서 위조지폐까지 유통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적군인 북한군이 불법으로 제조한 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1950년 8월 28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조선은행권 교환 및 유통에 관한 건"을 공포했다. 이는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 발행한 '한국은행권'과 1대1로 교환하도록 하고 조선은행권의 유통을 정지시키는 '제1차 긴급통화조치'였다.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운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려면 필수적으로 신분확인이 필요하니 불법으로 조선은행권을 손에 넣은 북한군은 한국은행권으로의 교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보통 화폐 개혁을 할 때는 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절하)를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1차 화폐 개혁때는 1대1의 비율로 단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의 제2차 긴급 통화 조치

이후 3년간의 기나긴 전쟁으로 경제는 폐허가 됐다. 한국정부는 막대한 군사비 조달과 파괴된 생산시설 복구비용으로 통화를 대량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폭락했고 심각한 물가상승 압력에 시달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3년 2월 15일에 '제2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하고 기존의 대한민국 화폐였던 '원(圓)'을 '환(圜)'으로 변경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앞의 '제1차 긴급통화조치'와 달랐던 부분은 교환비율이 1대1이 아니라 화폐 액면 단위를 100분의 1로 낮춘 '화폐 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였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면 화폐단위를 '100원(圓)'에서 '1환(圜)'으로 변경해 화폐명칭도 바뀌었고 화폐 교환비율도 100대1이 됐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국가의 화폐가 어려움에 처하면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가 진행됐다. 6.25 전쟁 시절의 한국뿐 아니라 1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까지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를 단행했다. 도대체 왜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를 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은행예금을 동결해 정부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정부는 '화폐개혁'과 동시에 은행예금도 일정 금액을 강제로 동결시켰다. 기존예금은 10만환(圜) 이상, 긴급통화조치로 예입된 구권예금은 3만환(圜) 이상을 대상으로 20~100%의 체증율을 곱해 특별 정기예금과 국채예금으로 전환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통화증가 요인이었던 '유엔군 대여금'의 상환을 진행했다. 결국 통화량 급증을 억제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큰 폭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 표기의 숫자가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화폐단위를 절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요금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000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됐다고 가정해 보자. 옛날처럼 현금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면 100만원의 지하철요금을 현금으로 직접 지불하는 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계산과 지불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액권을 발행하거나 아예 '화폐 단위 절하'를 단행하는 경우도 많다.

◆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 조치

우리가 만약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장롱을 뒤진 결과 한국 화폐 다발이 무더기로 나왔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런데 그 화폐의 발행일이 만약 1960년이라면 그 화폐는 지금 시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정답은 사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지금 사용되고 있는 '원(WON)' 화폐는 1962년 6월 10일부터 도입된 화폐다. 그래서 그 이전에 발행된 화폐는 한국은행에서 교환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런 화폐라면 화폐 수집상에게 팔아버리는 게 100배는 더 이득이니까 말이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건 해방상황도 아니고 전쟁상황도 아니었다. 긴급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정부의 긴급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평온했던 시기의 난데없는 '화폐개혁'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의장(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부가 집권했다.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산, 투자, 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예금 이탈이 진행됐다. 그리고 1년 뒤인 1962년. 침체된 경제활동 때문에 안정적인 정권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계속 심각해지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6월 9일 밤 10시에 '제3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했다. 박 의장은 부정축재와 음성적으로 축적된 자금의 투기화를 막고, 악성 인플레를 방지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게 바로 1962년 6월 10일의 '제3차 긴급통화조치'다.

 화폐 개혁의 핵심은 '환(圜)'에서 '원'으로 단위를 바꾸고, 10대 1의 비율로 절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구당 교환할 수 있는 돈이 최대 5,000환(圜)에 불과했다. 원화로는 500원이다.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의무적으로 저금한 뒤 6개월에서 1년 후에 찾을 수 있었다. 또는 산업개발공사의 주식(연 15% 배당 보장)으로 바꿔야 했다.

그런데 구권을 신권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은 발표 이후 고작 7일에 불과했다. 전 국민이 7일안에 이 모든 걸 처리하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개인의 사유재산을 상당히 침해하는 억압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당시는 전쟁상황이 아니라 평시 상황이었다.

이 발표로 경제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바로 월요일 새벽부터 은행에는 화폐를 교환하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고, 일선 상점에서는 '구 화폐'를 받지 않거나 물건가격을 크게 올렸다. 아예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한국경제는 더욱 더 침체됐다.

그런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왜 기습적으로 '화폐개혁'을 진행하며 무리수를 둔 걸까? 화폐개혁을 하면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과 중국 화교들이 엄청난 규모로 숨겨둔 돈을 '신 화폐'로 바꾸려 할 것이고 이 때 강제로 예금으로 묶어서 국가의 부족한 재정적자를 메우고 산업자금으로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1962년의 통화개혁은 한국은행 총재 등 관계 당국자와의 사전협의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됐다. 신은행권은 정부가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사에 비밀리에 발주해 제조했고 6월 9일 중앙정보부와 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은행 본지점으로 현송됐다.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은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진행된 '통화개혁'의 기존 '환(圜)화' 회수내역을 보면, 100만 환(신화 10만 원) 이하의 소액이 90.5%를 차지했고 1억 환(신화 1천만 원)을 초과하는 예입은 총7건으로 12억 환에 불과해 당초 정부의 예상과 달리 여유자금의 현금 보관규모는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부정축재를 통해 숨겨진 돈의 규모는 많지 않았던 셈이다.

또 중국 화교들의 경우 이미 중국 정부에게 몇 번의 뒤통수를 맞은 경험들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금을 선호해 왔다. 이런 이유로 중국 화교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화폐 대신 '금'으로 바꿔서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사정권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화폐개혁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화폐개혁으로 인한 경제 현장의 극심한 대혼란과 미국의 우려까지 전달돼 군사정권의 예금봉쇄 정책은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1개월 뒤인 7월 13일에 봉쇄예금 동결을 해제했다. 이로써 기습적인 통화개혁은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 인플레이션 방지 등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부작용만 남긴 채 초라하게 끝났다.

1962년의 화폐개혁 이후에 한국 국민들은 현금자산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15% 이자율(현재 시점에선 고금리지만 그 당시는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다)의 은행예금을 기피하고 토지와 주택 구입 등 실물자산 투자로 돌아섰다. 한국 국민들의 부동산 사랑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화폐는 안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국가의 필요나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화폐개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종잇장처럼 화폐가 사라질 수도 있다. 아무리 군사정권 시절이라지만 7일안에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지 않으면 휴지가 돼 버리는 정책은 공포스럽다.

물론 정부가 화폐를 강제로 뺏지는 않는다. 그런데 보통 화폐개혁을 할 때는 '구 화폐'를 '신 화폐'로만 바꿔주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다. 1명이 교환할 수 있는 돈에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강제적으로 예금시켜 버린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개인 재산권 행사에 굉장한 침해를 받게 된다.

1962년의 화폐개혁으로 변경된 화폐 '원'이 지금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바로 그 '원화'다. 화폐개혁 이전인 예전의 원[圓]과 구별하기 위해 지금의 '원'은 한글로만 표기하고 영문 표기는 'WON'이다. 한국 화폐 '원(WON)'의 역사는 고작 60년에 불과하다.

◆ 한반도가 평화통일 될 경우 한국 화폐 '원'의 가치는?

이제 오래 전 우리의 소원대로 한반도가 평화통일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미래에 북한과 남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글로벌시장에서 유명한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짐 로저스'는 2013년에 국제시장에서 북한화폐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 로저스'는 왜 북한화폐에 투자했을까? 만약 남북통일이 될 경우 한국이 충분히 보상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짐 로저스의 투자를 이해하려면 동독과 서독의 통일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 1990년 독일의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은 각자가 발행한 마르크(mark) 화폐를 썼지만 교환비율은 달랐다. 국가재정이 취약했던 동독의 화폐는 암시장에서 서독화폐의 4분의 1에 교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서독 사람들이 희생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통일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1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동독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봤다. 추가로 발 빠르게 암시장에서 동독 화폐를 대거 매입했던 서독 투자자들도 4배의 이익을 얻게 됐다. '짐 로저스'가 노리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화폐의 상황은 어떨까? 북한은 2009년에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전격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개혁 이후인 2023년 현재 기준으로 '북한 원'의 환율은 1달러당 약 8,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원∙달러 환율 1,300원과 비교하면 화폐가치가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짐 로저스'는 혹시 평화통일이 되면 한국이 독일처럼 화폐 교환비율을 1대1이나 1대2로 너그럽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굳이 가능성을 따져보면 한반도의 평화통일보다 북한이 한 번 더 화폐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여전히 심각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시 한번 화폐개혁을 진행하면 구권을 가지고 있는 '짐 로저스'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짐 로저스의 명성은 세계적이지만 그가 과연 '북한 화폐'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확률은 희박하지만 먼 미래에 남북 통일이 됐을 때 한국 정부가 과거 독일처럼 북한과의 화폐 교환비율을 너그럽게 가져가는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화를 보유한 한국 국민들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자산은 원화보다 달러로 보유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미래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 6.25 전쟁을 겪었던 한국뿐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 최근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까지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화폐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긴 하지만 그 역시 신용화폐이자 종이화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화폐붕괴의 보험성격인 '금'이나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기도 하다.

 

②편에서 계속… 비트코인② 독일 화폐 붕괴의 역사…나락 간 베네수엘라 화폐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자.

뉴스핌 (촬영 : 조현아 / 편집 : 문소희)

longinus@newspim.com

[관련기사]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바이낸스, 8.4조원 해킹 당해…역대 최대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추정 피해액 63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에 달하는 암호화폐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이낸스는 소셜미디어 X를 통해 "추정 총 피해액은 약 63억"라며 "블록체인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피해 자산을 동결했으며, 현재까지 약 30억 달러가 온체인에서 동결됐다"고 밝혔다. 바이낸스는 즉각 모든 가상자산의 입출금을 일시 중단했다. 비트코인 [사진=블룸버그] 바이낸스 측은 비상 상황에서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2018년에 조성한 '사용자 자산 보호 기금(SAFU)'을 언급하며, 모든 손실을 보상하겠다고 강조했다.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테더와 서클 역시 해킹과 관련된 자금 각각 15억 달러 이상과 8억 달러 상당을 즉각 동결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블록체인 정보업체 TRM 랩스는 이번 공격의 배후로 북한 정찰총국 산하의 엘리트 해킹 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를 지목했다. TRM 랩스는 "강력한 온체인 및 오프체인 정보에 근거해 이번 공격은 북한의 정예 해킹 부대인 트레이더트래이터의 소행으로 판단한다"며 "이러한 판단을 매우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해킹은 지난해 2월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비트에서 발생했던 15억 달러 규모의 탈취 기록을 크게 뛰어넘는 역대 최대 피해다. 이번 사건으로 암호화폐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비트코인은 29일 미국 증시 마감 후 3% 하락했고, 아시아 거래에서도 추가로 3% 떨어져 7만 7천 달러 아래로 하락하며,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타 알트코인도 매도세를 보였다. 가뜩이나 트레이더들은 이번 주 암호화폐 시장의 큰 변동성에 대비했던 상황이라 충격이 크다. 30일 110억 달러 규모의 옵션 만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 주(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중 한 곳 또는 둘 다 탈환할 경우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한편, 사이버 보안 위협은 암호화폐 업계를 넘어 금융권 전체로 확산하는 양상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같은 날 예측시장 플랫폼 폴리마켓은 제3자 소프트웨어 제공업체가 해킹돼 국제 거래소 거래를 한 시간 동안 중단시켰다. 블록체인 분석 플랫폼 버블맵스는 X에 게시한 글에서 700명이 넘는 폴리마켓 사용자들이 27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한국 대신증권은 최근 고객 정보 유출과 미래에셋운용의 해킹 피해가 공개됐다. 일본에서도 GMO인터넷그룹의 외환거래 클라우드가 해킹 협박을 받는 등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wonjc6@newspim.com   2026-10-30 14:11
사진
서울 주택 매입 무주택자 44% 증가 [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서울 아파트 거래가 위축되는 가운데 올해 생애최초 부동산 매수자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어났다. 서울 집값과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내 집 마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잇따라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입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30대를 중심으로 첫 부동산 매수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공급 확대에 대한 기대보다 당장의 주거 불안이 매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I일러스트 = 최현민 기자] ◆ 서울 첫 매수자 전국 대비 10배 이상 증가…30대가 절반 30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가 둔화하는 상황에서도 올해 생애최초 부동산 매수자가 지난해보다 크게 늘면서 주거 불안에 따른 실수요자의 매수 움직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1~9월 서울에서 생애 처음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은 6만5750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만5711명보다 2만 39명(43.8%)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전국 생애최초 매수자는 32만 471명에서 33만2358명으로 3.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국 증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무른 반면 서울은 40% 넘게 늘면서 매수 지역이 서울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 경우 9만6031명에서 10만8032명으로 12.5% 증가했지만 인천은 3만1255명에서 2만 664명으로 33.9% 감소했다.  연령별로는 30대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1~9월 서울의 30대 생애최초 매수자는 3만588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2602명보다 58.7% 늘었다. 전체 서울 생애최초 매수자의 54.6%를 차지하는 규모다. 20대 역시 4552명에서 6699명으로 47.2% 증가했고 40대는 1만772명에서 1만3994명으로 29.9% 늘었다. 상대적으로 주택 마련 수요가 높은 30대를 중심으로 첫 부동산 매수가 확대된 모습이다. 월별로 보면 올해 서울 생애최초 매수자는 1월 6554명에서 4월 7341명으로 늘었고 8월에는 9353명까지 증가했다. 9월에는 8324명으로 전월보다 감소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 5983명과 비교하면 39.1% 높은 수준이다. ◆ 집값·전셋값 동반 상승…공급 확대에도 입주까지 '하세월' 생애최초 매수자가 늘어난 배경으로는 서울 주택가격 상승과 전세시장 불안이 거론된다. 주택 매매가격뿐 아니라 전세가격까지 오르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7% 상승했다. 강남권 일부 지역에서 가격 조정이 나타났지만 중랑구와 성북구, 서대문구 등 강북권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서울 전체 아파트값은 오름세를 유지했다. 이달 들어서도 상승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10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1% 상승했다. 상승폭은 전주보다 줄었지만 서울 전체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의 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세시장에서도 가격 상승과 매물 부족 우려가 이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의 주거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 전세 계약을 갱신하거나 월세 부담을 감수하는 대신 매매시장에 진입하려는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3기 신도시와 수도권 신규택지 조성 등을 통해 주택공급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날도 김포 아라와 구리 건원, 하남 등 수도권 신규택지 6곳에 7만6700가구를 공급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신규택지에 공공택지 최단기 착공모델을 적용하더라도 실제 입주는 2033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택지 지정과 보상, 기반시설 조성 등 후속 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단기간에 주택공급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서울시와의 주택공급 협의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이번 신규택지 발표에서도 서울 내 공급부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신규 공급 물량이 모두 경기도에 집중된 만큼 이번 대책 역시 서울 주택시장의 수급 불안을 진정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분간 공급계획이 실제 입주 물량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서울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의 움직임이 무주택자의 매수 결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무주택자들의 매수세는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차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제 입주까지는 최소 3년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 집을 구해야 하는 무주택자들의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서울 집값과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주택을 확보하려는 실수요자들의 움직임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min72@newspim.com 2026-10-30 12:0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