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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비트코인① 한국 화폐 붕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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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 제2차 긴급 통화조치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조치
한반도 통일되면 원화 가치는 대 폭락? 왜?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 영화에서는 가끔 개인 금고에 5만원권 화폐를 가득 넣어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테크 측면에서 보면 이런 보관 방식은 당연히 최악이다. 합법화할 수 없는 검은 돈이나 탈세 목적이 아니라면 은행에 입금해 3%의 이자라도 받는 게 정상적인 화폐의 보관 방법이다.

그런데 화폐는 과연 영원한 걸까?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쓴다. 일본은 엔화, 유럽은 유로화, 중국은 위안화를 쓴다. 한국은 당연히 원화를 쓴다. 흥미로운 건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영원한 화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한국 화폐의 붕괴 역사를 살펴보자.

◆ 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한국은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역사적으로 주변국가들의 침략을 받는 일이 흔했다. 너무 먼 과거로의 역사여행은 자제하고 가까이에 있는 1900년도부터의 역사를 살펴보자. 1900년도 초반까지 조선에서는 상평통보가 화폐로 통용됐다.

그런데 1910년에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조선왕조)이 망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35년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이 시기에는 일본제일은행에서 발행된 '엔'과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 엔'이 화폐로 통용됐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됐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 지던 1945년 8월의 패망 직전에 도쿄에서 황급히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 한국으로 공수해 온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발행된 화폐로 인해 한국의 총 화폐 유통량은 1개월만에 기존의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화폐의 유통량이 2배로 늘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렇게 급조해 발행된 화폐들은 일본인들의 본국 귀향 자금으로 활용됐다. 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과 한국에 있던 일본인 단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다.

그 결과 한국 내의 물가폭등으로 이어져 몇 달 사이에 생활물가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 당시의 물가폭등으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서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때 만약 화폐 대신 금을 가지고 있었다면 화폐가치 하락의 상당 부분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광복 이후 한국경제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는 조선은행권이 '원(圓)'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통용됐다. 이런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5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한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개전 3일만에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은 한국은행 본점을 점령한 뒤 지하금고에서 미 발행 조선은행권 '원(圓)'을 대량으로 발견한다. 북한군은 남한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이 화폐들을 불법으로 마구 발행해 버린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다시 한번 급락했다.

그래서 이 당시 조선은행권을 가지고 있던 평범한 국민들은 본인들이 보유한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걸 다시 한번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물론 전쟁 중에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 상황에서 위조지폐까지 유통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적군인 북한군이 불법으로 제조한 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1950년 8월 28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조선은행권 교환 및 유통에 관한 건"을 공포했다. 이는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 발행한 '한국은행권'과 1대1로 교환하도록 하고 조선은행권의 유통을 정지시키는 '제1차 긴급통화조치'였다.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운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려면 필수적으로 신분확인이 필요하니 불법으로 조선은행권을 손에 넣은 북한군은 한국은행권으로의 교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보통 화폐 개혁을 할 때는 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절하)를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1차 화폐 개혁때는 1대1의 비율로 단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의 제2차 긴급 통화 조치

이후 3년간의 기나긴 전쟁으로 경제는 폐허가 됐다. 한국정부는 막대한 군사비 조달과 파괴된 생산시설 복구비용으로 통화를 대량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폭락했고 심각한 물가상승 압력에 시달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3년 2월 15일에 '제2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하고 기존의 대한민국 화폐였던 '원(圓)'을 '환(圜)'으로 변경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앞의 '제1차 긴급통화조치'와 달랐던 부분은 교환비율이 1대1이 아니라 화폐 액면 단위를 100분의 1로 낮춘 '화폐 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였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면 화폐단위를 '100원(圓)'에서 '1환(圜)'으로 변경해 화폐명칭도 바뀌었고 화폐 교환비율도 100대1이 됐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국가의 화폐가 어려움에 처하면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가 진행됐다. 6.25 전쟁 시절의 한국뿐 아니라 1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까지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를 단행했다. 도대체 왜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를 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은행예금을 동결해 정부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정부는 '화폐개혁'과 동시에 은행예금도 일정 금액을 강제로 동결시켰다. 기존예금은 10만환(圜) 이상, 긴급통화조치로 예입된 구권예금은 3만환(圜) 이상을 대상으로 20~100%의 체증율을 곱해 특별 정기예금과 국채예금으로 전환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통화증가 요인이었던 '유엔군 대여금'의 상환을 진행했다. 결국 통화량 급증을 억제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큰 폭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 표기의 숫자가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화폐단위를 절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요금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000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됐다고 가정해 보자. 옛날처럼 현금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면 100만원의 지하철요금을 현금으로 직접 지불하는 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계산과 지불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액권을 발행하거나 아예 '화폐 단위 절하'를 단행하는 경우도 많다.

◆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 조치

우리가 만약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장롱을 뒤진 결과 한국 화폐 다발이 무더기로 나왔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런데 그 화폐의 발행일이 만약 1960년이라면 그 화폐는 지금 시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정답은 사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지금 사용되고 있는 '원(WON)' 화폐는 1962년 6월 10일부터 도입된 화폐다. 그래서 그 이전에 발행된 화폐는 한국은행에서 교환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런 화폐라면 화폐 수집상에게 팔아버리는 게 100배는 더 이득이니까 말이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건 해방상황도 아니고 전쟁상황도 아니었다. 긴급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정부의 긴급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평온했던 시기의 난데없는 '화폐개혁'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의장(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부가 집권했다.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산, 투자, 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예금 이탈이 진행됐다. 그리고 1년 뒤인 1962년. 침체된 경제활동 때문에 안정적인 정권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계속 심각해지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6월 9일 밤 10시에 '제3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했다. 박 의장은 부정축재와 음성적으로 축적된 자금의 투기화를 막고, 악성 인플레를 방지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게 바로 1962년 6월 10일의 '제3차 긴급통화조치'다.

 화폐 개혁의 핵심은 '환(圜)'에서 '원'으로 단위를 바꾸고, 10대 1의 비율로 절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구당 교환할 수 있는 돈이 최대 5,000환(圜)에 불과했다. 원화로는 500원이다.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의무적으로 저금한 뒤 6개월에서 1년 후에 찾을 수 있었다. 또는 산업개발공사의 주식(연 15% 배당 보장)으로 바꿔야 했다.

그런데 구권을 신권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은 발표 이후 고작 7일에 불과했다. 전 국민이 7일안에 이 모든 걸 처리하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개인의 사유재산을 상당히 침해하는 억압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당시는 전쟁상황이 아니라 평시 상황이었다.

이 발표로 경제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바로 월요일 새벽부터 은행에는 화폐를 교환하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고, 일선 상점에서는 '구 화폐'를 받지 않거나 물건가격을 크게 올렸다. 아예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한국경제는 더욱 더 침체됐다.

그런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왜 기습적으로 '화폐개혁'을 진행하며 무리수를 둔 걸까? 화폐개혁을 하면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과 중국 화교들이 엄청난 규모로 숨겨둔 돈을 '신 화폐'로 바꾸려 할 것이고 이 때 강제로 예금으로 묶어서 국가의 부족한 재정적자를 메우고 산업자금으로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1962년의 통화개혁은 한국은행 총재 등 관계 당국자와의 사전협의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됐다. 신은행권은 정부가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사에 비밀리에 발주해 제조했고 6월 9일 중앙정보부와 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은행 본지점으로 현송됐다.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은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진행된 '통화개혁'의 기존 '환(圜)화' 회수내역을 보면, 100만 환(신화 10만 원) 이하의 소액이 90.5%를 차지했고 1억 환(신화 1천만 원)을 초과하는 예입은 총7건으로 12억 환에 불과해 당초 정부의 예상과 달리 여유자금의 현금 보관규모는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부정축재를 통해 숨겨진 돈의 규모는 많지 않았던 셈이다.

또 중국 화교들의 경우 이미 중국 정부에게 몇 번의 뒤통수를 맞은 경험들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금을 선호해 왔다. 이런 이유로 중국 화교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화폐 대신 '금'으로 바꿔서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사정권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화폐개혁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화폐개혁으로 인한 경제 현장의 극심한 대혼란과 미국의 우려까지 전달돼 군사정권의 예금봉쇄 정책은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1개월 뒤인 7월 13일에 봉쇄예금 동결을 해제했다. 이로써 기습적인 통화개혁은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 인플레이션 방지 등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부작용만 남긴 채 초라하게 끝났다.

1962년의 화폐개혁 이후에 한국 국민들은 현금자산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15% 이자율(현재 시점에선 고금리지만 그 당시는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다)의 은행예금을 기피하고 토지와 주택 구입 등 실물자산 투자로 돌아섰다. 한국 국민들의 부동산 사랑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화폐는 안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국가의 필요나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화폐개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종잇장처럼 화폐가 사라질 수도 있다. 아무리 군사정권 시절이라지만 7일안에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지 않으면 휴지가 돼 버리는 정책은 공포스럽다.

물론 정부가 화폐를 강제로 뺏지는 않는다. 그런데 보통 화폐개혁을 할 때는 '구 화폐'를 '신 화폐'로만 바꿔주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다. 1명이 교환할 수 있는 돈에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강제적으로 예금시켜 버린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개인 재산권 행사에 굉장한 침해를 받게 된다.

1962년의 화폐개혁으로 변경된 화폐 '원'이 지금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바로 그 '원화'다. 화폐개혁 이전인 예전의 원[圓]과 구별하기 위해 지금의 '원'은 한글로만 표기하고 영문 표기는 'WON'이다. 한국 화폐 '원(WON)'의 역사는 고작 60년에 불과하다.

◆ 한반도가 평화통일 될 경우 한국 화폐 '원'의 가치는?

이제 오래 전 우리의 소원대로 한반도가 평화통일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미래에 북한과 남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글로벌시장에서 유명한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짐 로저스'는 2013년에 국제시장에서 북한화폐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 로저스'는 왜 북한화폐에 투자했을까? 만약 남북통일이 될 경우 한국이 충분히 보상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짐 로저스의 투자를 이해하려면 동독과 서독의 통일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 1990년 독일의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은 각자가 발행한 마르크(mark) 화폐를 썼지만 교환비율은 달랐다. 국가재정이 취약했던 동독의 화폐는 암시장에서 서독화폐의 4분의 1에 교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서독 사람들이 희생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통일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1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동독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봤다. 추가로 발 빠르게 암시장에서 동독 화폐를 대거 매입했던 서독 투자자들도 4배의 이익을 얻게 됐다. '짐 로저스'가 노리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화폐의 상황은 어떨까? 북한은 2009년에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전격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개혁 이후인 2023년 현재 기준으로 '북한 원'의 환율은 1달러당 약 8,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원∙달러 환율 1,300원과 비교하면 화폐가치가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짐 로저스'는 혹시 평화통일이 되면 한국이 독일처럼 화폐 교환비율을 1대1이나 1대2로 너그럽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굳이 가능성을 따져보면 한반도의 평화통일보다 북한이 한 번 더 화폐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여전히 심각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시 한번 화폐개혁을 진행하면 구권을 가지고 있는 '짐 로저스'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짐 로저스의 명성은 세계적이지만 그가 과연 '북한 화폐'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확률은 희박하지만 먼 미래에 남북 통일이 됐을 때 한국 정부가 과거 독일처럼 북한과의 화폐 교환비율을 너그럽게 가져가는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화를 보유한 한국 국민들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자산은 원화보다 달러로 보유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미래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 6.25 전쟁을 겪었던 한국뿐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 최근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까지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화폐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긴 하지만 그 역시 신용화폐이자 종이화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화폐붕괴의 보험성격인 '금'이나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기도 하다.

 

②편에서 계속… 비트코인② 독일 화폐 붕괴의 역사…나락 간 베네수엘라 화폐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자.

뉴스핌 (촬영 : 조현아 / 편집 : 문소희)

longinu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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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태릉·과천 등 6만호 조성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와 태릉CC(골프장), 경기 과천 경마장(렛츠런파크서울)을 비롯한 서울 도심부와 경기 서울 근교지역에 총 6만가구가 공급된다. 이를 위해 11개 도심 내 공공부지에 4만3500가구가 공급되며 신규 공공주택지구를 새로 지정해 6300가구를 짓는다. 또 도심 내 노후청사를 활용해 모두 9900가구가 지어질 예정이다. 오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착공한다. ◆ '9·7 주택공급 확대방안' 후속초지...도심 6만 가구 조성 2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발표했다.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의 후속조치인 이번 1·29 대책에서는 도심권에서 6만가구가 공급된다. 지역별로 서울은 3만2000가구(53.3%), 경기 2만8000가구(46.5%), 인천 100가구(0.2%)가 각각 배정됐다.  공급 계획 [자료=국토부] 먼저 도심내 공공부지에는 4만3500가구를 짓는다. 이 가운데 서울시와 정부가 마련한 기존 공급물량 7400가구를 제외하면 3만6100가구가 새로 지정된 물량이다.  서울 용산구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캠프킴에서 기존계획 물량 7400가구를 포함한 총 1만2600가구가 공급된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는 60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정부 방침에 따라 주택공급수가 1만가구로 4000가구 늘어나게 됐다. 서울시가 주택공급 확대에 대한 문제로 지적했던 학교 신설은 중단한다. 착공은 2028년으로 예정됐다. 수도권전철 남영역 인근 캠프킴 부지의 주택규모는 2500가구로 기존 1400가구에서 1100가구 더 확대됐다. 2029년 착공을 추진한다. 아울러 인기 주거지역인 서빙고동 '501 정보대'부지에도 신혼부부 등을 위한 소형주택 150가구를 짓는다. 2029년 착공 예정이다.  경기 과천시 일원 과천경마장과 방첩사 부지에서 9800가구를 건립한다. 정부는 과천 경마장(115만㎡)과 국군방첩사령부(28만㎡) 이전 후 해당 부지 총 143만㎡를 통합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경마장과 방첩사 이전계획을 국방부와 농식품부와 협의해 올 상반기내 완료하고 오는 2030년 착공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시절 주택공급 후보지로 떠올랐던 서울 노원구 태릉CC 총 87만5000㎡에는 6800가구가 공급된다. 정부는 장기간 진척되지 못하던 태릉CC 개발사업을 국가유산청과의 협의를 거쳐 본격 추진하고 주민을 위한 교통대책과 충분한 녹지공간 마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거친 후 공공주택 지구지정과 지구계획 수립 등을 병행해 2030년 착공을 추진한다.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및 성남시청과 인접한 곳에 신규 공공주택지구 성남금토2지구와 성남여수2지구 약 67.4만㎡(20만평)를 지정한다. 이들 신규 택지에는 630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두 공공택지는 인허가 및 보상을 완료한 후 착공은 2030년 목표다.  서울 동대문구 일원에서는 국방연구원과 인접한 한국경제발전전시관을 함께 이전하고 이전 부지 총 5만5000㎡ 규모에 주택 1500가구를 짓는다. 국토부는 국조실·기후부·성평등부와 협의해 해당 기관을 2027년 상반기까지 이전하고 이전 시점에 맞춰 사업 승인, 토지 매입 등을 추진해 2029년 착공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인접 역세권 부지와 그간 장기 지연된 사업의 계획을 변경해 총 1만1500여가구를 신규 공급한다. 정부는 이들 지구에 대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함으로써 사업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먼저 경기 광명시 광명경찰서 부지 약 9000㎡에 550가구를 짓는다. 2027년까지 경찰서 이전을 완료하고 이전 일정에 맞춰 2029년 착공한다. 경기 하남시 신장 테니스장 부지 약 5000㎡에는 300가구가 공급된다. 2029년 착공을 목표로 한다.  서울 강서구 강서 군부지 약 7만㎡에는 918가구가 건립된다. 당초 부지 매각 방식으로 추진됐던 이 사업은 위탁개발 방식으로 변경해 재개된다. 2027년 착공될 예정이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공군부대 13만㎡부지는 군부대 압축·고밀개발 방식으로 2900가구를 공급한다. 착공은 2030년이다.  경기 남양주시 퇴계원 일대 군부대 부지 35만㎡에 4180가구를 짓는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2029년 착공을 추진한다. 또 경기 고양시 구국방대학교 부지 33만㎡에는 2570가구를 공급한다. 2029년 착공을 목표로 서울 상암DMC와 잇는 직주근접 미디어밸리를 조성할 방침이다. ◆ 공급확대에 범부처 역량 결집...투기 방지도 병행 정부는 이번 1·29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주택공급촉진 관계장관회의'를 신설한다. 회의에서는 발표 부지에 대한 이행 일정 점검 및 조기화를 추진하고 신규 물량 발굴에도 지속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기존 시설 이전이 필요한 부지는 2027년까지 이전을 결정하고 택지 조성에 착수할 수 있도록 범부처가 역량을 결집해 추진상황을 집중 관리할 예정이다.  사업 속도 제고를 위해 2026년 중 국방연구원과 서울의료원, 강남구청 등 13곳에 대한 공기업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추진하고 국유재산심의위·세계유산영향평가 등 사전절차도 신속 이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국가가 서민주택 공급 등을 위해 추진하는 공공주택지구조성 사업은 국무회의 등을 거쳐 그린벨트(GB) 해제 총량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방안을 5년 한시로 추진한다.  이와 함께 투기 방지를 위해  해당 지구 및 주변지역은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즉시 지정한다. 이를 토대로 투기성 토지 거래 등을 사전에 차단할 방침이다. 정부는 지구·주변지역에 대한 조사 결과 미성년·외지인·법인 매수, 잦은 손바뀜과 같은 이상거래 280건을 선별했으며 이에 대한 분석 및 수사의뢰 조치에 나섰다.   향후 정부는 올 2월 도심 공급 확대를 위한 신규 부지와 제도개선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올 상반기 중 '주거복지 추진방안'을 발표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donglee@newspim.com 2026-01-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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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최고위, 한동훈 '제명' 의결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국민의힘이 29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제명' 징계안을 의결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당원 징계안이 윤리위 의결대로 최고위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표결에는 최고위원 6명과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총 9명이 참여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표결 내용이나 찬반 부분은 비공개"라며 구체적인 표결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징계 의결의 취지에 대해 최 수석대변인은 "의결 취지는 이미 윤리위 내용이 공개돼 있어 그 부분을 참고하면 된다"며 "기존 말씀드렸듯이 윤리위 의결대로 최고위에서 의결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의결 과정에서 징계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최고위원들 사이 사전회의는 배석하지 않아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한 "의결 때 비공개였고 저도 배석하지 않은 관계로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좌)와 한동훈 전 대표 [사진=뉴스핌 DB] 최 수석대변인은 "절차적으로 의결에 대한 통보 절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의결이 된 부분으로서 결정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징계는 의결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다. 한편 한 전 대표가 가처분을 신청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 입장은 따로 없다"며 "신청되면 신청 절차에 임해서 필요한 부분 소명이나 그런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명 확정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전해졌다. allpass@newspim.com 2026-01-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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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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