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부자증세 반대, 절벽 회피엔 필수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반(反) 시장적인, 시장에 있어 `문제적인` 인물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성공 다음 날인 지난 8일 뉴욕증시는 뚝 떨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부자증세 등 각종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공화당의 반대 수위가 높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 경제가 '재정절벽(Fiscal Cliff)'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월가는 오바마의 재선을 두려워했다. 4년 전 오바마에게 몰렸던 월가 자금은 올해엔 한결같이 밋 롬니 쪽으로 갔다. 미국 정치헌금 감시단체인 책임정치센터(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월가가 롬니에게 몰아준 자금은 1600만 달러에 달한다. 오바마에 간 돈은 고작 4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월가의 변심은 부자증세는 물론 배당수익과 투자를 통해 얻는 이익에 대한 세금, 즉 자본소득세율도 오를 것이 분명해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것을 우려한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성공 후 기자회견의 키워드도 부자증세였다. 그는 올해로 끝나는 `부시 감세`를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인 가구에 대해선 연장하지 않음으로써 이들 부자들에 대한 세율을 높일 계획이다. 그래서 앞으로 10년간 1조 6000억 달러(1736조 원)을 더 걷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야 이 기간동안 4조 달러의 재정적자를 감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배당수익과 투자를 통한 이익금, 즉 자본소득세율도 일반 소득세율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내년부터는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이 현재의 15%에서 20%로 오르고 점진적으로 35% 내외의 일반 소득세율에 맞춰나갈 방침이다.
게다가 오바마 정부는 월가의 탐욕을 정조준해 왔다. 월가를 금융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간주하고 각종 규제의 고삐를 계속 죌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 마디로 채찍만 가하는 오바마의 재선이 월가엔 달가울 리 없다. 이런 불만이 시장에는 증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모습을 바꿔 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황급히 자금을 빼가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 22일자 로이터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헤지펀드에 맡겨둔 자금 가운데 회수하겠다고 예고한 것의 비중을 나타내는 SS&C GlobalOp 선물 환매 지수는 5.19%에달했다. 지난해 같은 달의 3.44%, 그리고 9월의 3.19%에 비해 크게 오른 것.
빌 스톤 SS&C 테크놀러지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는 오바마 정부의 과세 방침에 따른 움직임"이라고 해석했다. 내년부터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올해 자금을 서둘러 회수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 이 지수는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19.2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2009년 9월 이후 10%대 아래로 내려갔었다.
그러나 과연 오바마의 재선이 반 시장적인 것일까. 월가와 부자들의 강력한 조세저항이 공화당과 얽혀 일종의 포퓰리즘적 구호를 만들고 있을 뿐이란 지적도 나온다. 공화당과 부자들의 반대로 현재의 상황을 질질 끌다가는 결국 나라 곳간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올해 나라빚은 4년 연속 1조 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다. 누적 부채는 16조 달러를 넘게 된다. 현재는 초저금리에 돈을 조달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상황은 곧 바뀔 수도 있다. 오바마 재선 성공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신용평가사 피치가 재정절벽을 못넘으면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할 수도 있다고 경고음을 낸 건 `공갈협박`이 아니란 얘기다.
사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월가의 대표 인물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나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CEO 같은 이들은 되레 부자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엘-에리언 핌코 CEO는 최근 포춘지 기고문에서 "지난 10여년간 호황기 때에 이득을 본 부자들은 구제금융과 연방준비제도의 부양책 등으로 인해 손실까지 만회했지만 공화당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부인하면서 부자들에 대한 증세가 나쁘다고만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몇몇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는 것보다 재정절벽을 맞닥뜨리는 것이 경제에 훨씬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간의 건설적인 협의가 절실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자산운용 업계의 큰 손 블랙스톤의 한 스트래티지스트 역시 "단순한 산수로만 보더라도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라는 구멍을 막기 위해 세수를 늘려야만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일부 전문가들은 세율이 급격하게 오르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채권수익률이 사상 최저 수준이기 때문에 오히려 투자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배당을 주는 주식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오바마 정부가 기업들의 활기까지 죽일 생각은 분명 없어 보인다. 일자리를 늘리고 민간 부문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부자에겐 세율을 올려도 법인세율은 낮출 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조세정책센터(Tax Policy Center)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국내총생산(GDP)에서 법인세가 차지한 비중이 1.3%에 불과했을 정도다. 1950년에 이 비중은 5~6%에 달했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