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가혹행위에 따른 위법수집증거"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1960년대 북한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집행당한 고(故) 오경무 씨가 재심에서 5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는 30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오경무씨와 그의 여동생 오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 즉 피고인들이 자백하는 취지의 조서들은 수사기관에서 행해진 불법체포와 고문 등 가혹행위에 따른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고 나머지 증거들로는 피고인들의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pangbin@newspim.com |
재판부는 "재심이 개시된 이후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법률(국가보안법 위반 등)은 모두 개정됐고 현재 법령에 따르면 피고인들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협하고,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당시 시대적 상황 아래 가족의 정에 이끌려 가족 전부에게 가혹한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오경무씨의 여동생은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런 일도 있나 싶다. 제 오빠는 너무나 정의로웠던 분인데 아무런 힘이 없어서...이렇게 (재심) 기회가 주어져서, 이런 결과가 나와서 너무 기쁘다기 보다 놀랍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건을 대리한 서창효 변호사는 "검찰은 재심 첫 공판 당시 이 사건이 북한과 연관된 실체가 있는 사건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아무런 실체가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오늘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지만 이미 고인이 된 오경무씨는 돌아올 수가 없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정규 변호사 역시 "이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사법살인 피해자 사건"이라며 "검찰이 항소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5월 열린 재심 첫 공판 당시 "이 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 사건이라기보다는 북한공작원이 지령을 받고 남한에 잠입한 실체가 있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 9월 열린 결심공판에서는 오경무씨에 대해 징역 8년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1966년 오경무씨의 동생인 오경대씨는 이복 형의 말에 속아 배에 올라탔다 납북됐다. 이후 오경무씨도 납북됐다 사상교육을 받고 가까스로 풀려났는데 이들 형제는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67년 오경대씨는 징역 15년을, 오경무씨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여동생 오씨도 반공법상 편의제공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오경대씨는 먼저 재심절차를 통해 지난 2020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판결을 확정받은 바 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