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사형 선고
검찰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 아냐...실체 파악해야"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1960년대 북한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집행당한 고(故) 오경무 씨에 대한 재심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는 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오씨와 그의 여동생의 재심사건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변호인은 "피고인들은 공소사실에 기재된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없기 때문에 혐의를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속한 진행을 위해 검찰 측에 별다른 의견이 없으면 증거목록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검찰은 "이 사건은 가족이 북한공작원으로 밀입국하는 등 북한과 직접 연관된 실체가 있는 사건으로 피고인에 대해 혐의가 인정되었기 때문에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고 그 형이 집행되었다"며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재심에서 본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심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오경대씨가 북한공작원이었던 이복형을 따라 북한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뒤 서울에 있던 오경무씨로 하여금 북한에 가도록 한 것에서 비롯됐다"며 "북한공작원이 관여된 순수 안보 사건이다"며 국가권력에 의해 실체가 조작된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피고인들이 불법적으로 연행되었다는 객관적 근거가 없고 나아가 당시 긴급 구속제도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불법 구금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이 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 사건이라기보다는 북한공작원이 지령을 받고 남한에 잠입한 실체가 있는 사건이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앞서 '불법 구금이 의심돼 재심개시에 동의한다는 취지'로 의견서를 제출했으나, 재심개시결정 이후 처음 열린 이날 공판에서 돌연 '불법 체포나 구금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pangbin@newspim.com |
재판이 끝나고 취재진을 만난 변호인들은 "검찰이 재심개시 단계에서는 인용 의견을 내고 공판에서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꿨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검찰에서 다음 기일에 증거목록을 제출하겠다고 하는데 불법 구금 상태에서 작성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 결국 검찰은 사건 관련자들을 모두 증인으로 불러내겠다는 것이다"며 "불필요한 증인신문이나 반복되는 절차를 통해 피고인이나 이미 무죄가 밝혀진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31일로 공판준비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 1966년 오경무 씨의 동생인 오경대 씨는 이복형의 말에 속아 배에 올라탔다 납북됐다. 이후 오경무 씨도 납북됐다 사상교육을 받고 가까스로 풀려났다. 이들 형제는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67년 오경대 씨는 징역 15년을, 오경무 씨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여동생 오 모 씨도 반공법상 편의제공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오경대 씨는 먼저 재심을 신청해 지난 2020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판결을 확정받았다.
이번에 재심을 신청한 오씨의 여동생은 "우리가 사람을 죽이고 뭐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면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전쟁 국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북한에 형제가 있다는 이유로 전부 교도소에 끌려갔다. 심지어 큰 오빠는 사형을 당했다. 옛날 생각만 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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