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폭행 등 범죄 저지른 연예인 방송 출연 금지 법안 발의
"대중에 미치는 영향 커 제재 필요" VS "연예인 기본권 박탈"
전문가 "시민사회에 맡겨야 할 부분, 법적 제재는 신중해야"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윤혜원 기자 = 최근 정치권이 마약범죄 등을 저지른 연예인에 대해 방송 출연을 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발의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예인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들어 방송계에서 영구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중독 치료 시스템이 부실한 한국 상황에서 단순히 중독자를 궁지로 몰아넣는 극단적인 처벌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중독=질병’ 인식 부족한 법안?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지난달 25일 마약·도박·성폭행·음주운전 등 범죄를 일으킨 연예인들에게 방송 출연 금지 등 제재를 내리는 ‘방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형법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연예인들에 대해 방송 출연정지·금지를 하도록 제재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지키지 않고 해당 연예인들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벌칙 조항 제105조도 개정안에 새롭게 담겼다.
[수원=뉴스핌] 윤창빈 기자 =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가 12일 오전 수원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19.04.12 pangbin@newspim.com |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마약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의 경우, 단순 투약 여부를 떠나 벌금형 이상이면 무조건 제재를 받는다는 점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벌금이나 실형 등 사법적 처벌을 받은 뒤에도 업계 차원의 제재까지 받는 건 이중처벌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특히 방송 출연 금지로 인해 경제적 위기 등 비관적인 상황에 놓일 경우, 다시 마약에 의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독 치료 기회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처벌만 강화할 경우 오히려 역기능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마약이나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 중 방송에서 하차했다가 다시 재범을 저지른 사례들도 있다.
가수 이센스는 2011년 대마초 흡연혐의로 적발돼 모든 활동을 중단했으나 이후 대마초 500g을 밀수입하다 적발됐다. 이센스는 2015년에도 친구와 대마초를 흡연했다가 경찰에 세 번째 적발되기도 했다.
방송인 신정환 역시 2005년 불법 도박을 하다 적발돼 7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후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으나 2010년 또 한 번 원정도박이 발각돼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법적 제재 신중해야
전문가들은 연예인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활용해 이들이 중독 치료를 받도록 기회를 확대한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현상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마약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의 사회복귀를 법적으로 막을 경우, 일반인 마약 중독자의 사회복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이번 방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며 “현재도 마약중독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재취업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중독자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연예인은 공인으로서 특수성이 있지만, 엄연히 하나의 직업이고 생계유지 수단이라는 점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며 “기본권 측면에서라도 국가가 재취업의 기회까지 박탈하는 것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남 창녕군 국립부곡병원 내 약물진료소로 향하는 계단 [사진=임성봉 기자] |
마약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의 방송 활동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중독자를 보호하고 치료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법적으로 이들을 제재한다는 것부터 부적절하다는 설명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연예인의 방송 출연 여부는 오롯이 방송사가 결정할 일이지 국가가 개입하거나 법으로 규제할 사안이 아니다”며 “엄밀히 말해 방송내용에 대한 개입이고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여론을 살피면서 마약범죄 연예인의 출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여론에도 방송사가 마약범죄 연예인을 출연시키면 국민들이 시청거부 운동을 벌일 수도 있는 만큼, 이 문제는 시민사회에 맡겨야 할 부분이지 결코 국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