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주신경계 파괴...장기·내분비계 등 전신질환 유발
마약중독자 조기사망률 높아...청소년 투약 부작용↑
치료·재활 없는 처벌만능주의...마약 투약·제조·유통 형량 동일
'사람 중심' 마약정책 필요...국가 콘트롤타워 마련돼야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윤혜원 기자 =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처벌 일변도인 국내 마약 정책에 쓴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전문가다. 처벌만능주의로는 마약중독자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고, 이들을 치료의 길로 유도해야 하는 쪽이 더 실효성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이 교수는 현 마약사범들의 형량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단순 투약자와 마약 유통·제조책이 같은 처벌을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단순 투약자는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유통·제조책 등은 강하게 처벌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11일 경기도 수원시 영동구 아주대학교 약학대학교에서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장이 인터뷰 중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9.06.11. [사진=임성봉 기자] imbong@newspim.com |
이 교수는 현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부이사장을 비롯해 한국약제학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지만, 국내 마약 정책의 숨은 공로자 중에는 ‘약사’가 많다. 그 중에서도 이 교수는 정부 부처도 앞다퉈 의견을 들으러 올 정도로 마약 분야의 권위자다.
이 교수에게서 마약의 약리학적 특성(부작용)과 국내 마약 정책의 문제점 등을 들어봤다.
◆“마약중독자 조기사망률↑...어릴수록 피해 심각”
신체에 유입된 마약이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곳은 한 군데에 불과하다. 중추신경계다. 중추신경계는 뇌를 포함해 각종 장기와 내분비계를 관장하는 인체의 사령탑과 같다. 컨트롤타워가 무너지면 그 아래도 무너지듯 중추신경계가 손상을 입으면 신체 전반에 걸쳐 악영향이 나타난다. 후각 마비, 청각 손실, 간 종양, 심장마비, 신장 손상, 골다공증, 백혈병이 대표적이다.
마약중독자 중 60세 이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각종 부작용과 후유증에 시달리다 제 명을 다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몸과 마음이 한창 성장 중인 청소년에게 마약의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육체적, 심리적 변화가 많고 성장기인 탓에 뇌가 한층 빠르게 파괴된다.
이 교수는 다행스럽게도 국내 청소년 마약 교육은 비교적 잘 이뤄지는 분야라고 평가했다. 마약퇴치운동본부 등 민간에서 관련 교육을 자체적으로 시행해왔고 정부에서도 이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마약 교육이 의무화된 단계는 아니고 교육 커리큘럼도 보완해야 할 점이 남아있지만 일단 긍정적 기류는 감지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마약의 특성을 고려하면 마약중독이 국가 차원의 치료가 이뤄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본다. 알코올이나 니코틴 중독처럼 마약중독 역시 의료,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중독자를 사회에 복귀시키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마약사범 가운데 마약을 제조, 유통하는 범죄자는 극소수고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중독된 단순 투약자가 대부분”이라며 “투약자 가운데 70%는 저소득층을 비롯한 취약계층이라는 점에서 환자이자 사회적 약자인 중독자들을 국가가 포용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사람 중심’ 마약 컨트롤타워 절실
한국에서는 마약 투약자에게 마약 제조, 유통과 똑같은 형량이 적용된다. 마약에 연루된 이상 제조든 유통이든 구매든 범죄자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여 처벌받는다.
검찰 /김학선 기자 yooksa@ |
전 세계 마약 공조의 컨트롤타워인 국제연합(UN)은 이미 마약범죄를 유형별로 구분해 정의하고 있다. UN은 과거 한국처럼 마약사범에 마약 제조·유통책과 투약자, 중독자를 통틀어 ‘마약범죄자’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 투약자를 ‘마약사용자’와 ‘마약중독자’로 따로 떼어 분류한다. 투약자에게는 처벌뿐 아니라 치료와 재활이 병행돼야 하며, 투약자도 중독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치료 재활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른 조치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최근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수사기관에서는 마약 유통책과 제조책을 단순 투약자보다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고 있다. 식약처도 마약 담당 부서를 확대해 마약 정책과 관련한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 교수는 마약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부의 의지’라며 국가가 마약 문제를 총괄하는 역할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예컨대 마약의 온상으로 알려진 태국은 3500억여원을 투자해 마약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지원한다. 한국과 국내총생산(GDP)에서 상당한 격차가 있음에도 이같이 막대한 예산을 쏟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태국 국왕의 의지가 있었다. 이에 비해 국내 마약중독자의 치료에 쓰이는 정부 예산은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 교수는 “국내 마약중독자는 30만~40만명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범죄자지만 동시에 환자이기도 하다”며 “중독자들의 마약 투약으로 발생하는 인력 손실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이들을 치료해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사회 전반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hw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