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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고백㉛] "나는 수사기관에 잡혀본 적 없다"

기사입력 : 2019년06월11일 15:08

최종수정 : 2019년06월11일 15:45

중학교 1학년 마약에 처음 손댔다 덧셈, 뺄셈 못할 정도로 몸 망가져
"경찰이 잡아갔다면 마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
"죽을 것 같다" 찾아간 병원서 의사 도움으로 단약 시도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윤혜원 기자 = 최영호(가명)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외아들인 최 씨가 자신의 가난을 끊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아버지.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최 씨의 성적은 떨어졌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 입에서는 늘 술 냄새가 풍겼다. 아버지는 멀지 않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최 씨는 별로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가 됐다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중학교 1학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술과 담배도 처음 배웠다.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서운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최 씨에게 다가왔다. 친구는 음악하는 형들을 통해 얻었다며 알약 몇 개를 꺼내 보였다. 동네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은 모두 먹는 약이라고도 했다. 최 씨는 두려웠지만 “남들도 다 하는데 나는 왜 못해”라는 생각으로 알약을 집어삼켰다. 최 씨의 길고 긴 ‘마약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최 씨는 약을 먹은 뒤 한 시간쯤 지나자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럼증이 일었다.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친구는 다음날도 찾아왔다. 최 씨는 거절했지만, 친구는 끈질겼다. 유혹은 달콤했고 의지는 나약했다.

그날 이후 최 씨는 약물 없이는 단 하루도 지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술과 마약만 있다면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약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최 씨를 더 깊은 수렁으로 유혹했다.

최 씨를 찾아온 한 동네 선배는 대뜸 대마초를 권했다. 동네에서는 이미 대마초를 즐기는 친구들도 많았다. 처음 약물을 접했을 때와 달리 최 씨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고민 없이 대마초를 입에 물었다. 그렇게 그는 돈만 생기면 마약을 사는데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런 최 씨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동네 형이 갑자기 찾아왔다. 자신이 운영하는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지내라는 제안이었다. 수중에 한 푼도 없던 최 씨는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최 씨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돈을 받고 거슬러주는 단순한 계산이 안 되는 것이었다. 뺄셈, 덧셈처럼 단순한 사칙연산조차 버거웠다.

마약은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몸을 잠식한 상태였다. 갑자기 숨이 차고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도 했다. 급기야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다 손님과 싸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급기야 심각한 공황증세가 찾아왔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최 씨를 덮쳐왔다. 동네 형은 정신병원을 권했지만, 최 씨는 단칼에 거절했다. 자신이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도 마약은 최 씨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당구장 영업이 끝나면 친구들을 불러 몰래 마약을 즐기기 시작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물에 의지하는 삶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최 씨는 갑자기 가게를 들린 형에게 약물을 하는 모습을 들켰다. 그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도망갔다. 그렇게 마약 소굴로 돌아간 최 씨는 다시 마약에 허우적대는 삶을 살아갔다. 동네에는 최 씨가 ‘약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단약(마약을 끊는 일)도 시도해 본 적 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최 씨는 이때 단순히 의지만으로는 마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친구들이 최 씨를 볼 때마다 “같이 마약 하러 가자”고 꾀면서 단약의 길은 멀어져 갔다.

마약은 그런 최 씨를 점점 파멸의 길로 인도했다. 그는 가족은 물론 친척들에게 “사업 수완이 좋은 동업자를 만나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며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작은 사업을 벌여 놓았지만, 일은 남에게 맡겨놓고 자신은 마약만 즐기고 살았다. 사업은 번번이 실패했고 그럴 때마다 최 씨는 마약을 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럴수록 병적으로 마약에 집착했고 아무런 빛조차 없는 삶을 헤매게 된다.

검찰 /김학선 기자 yooksa@

그러던 중 과거 당구장에서 느꼈던 마약 부작용과 죽음의 공포가 다시 최 씨를 찾아왔다. 최 씨는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정신과 의사를 만난 최 씨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남김없이 쏟아냈다. 처음 마약을 접했던 계기부터 산 송장이나 다름없는 지금의 모습까지. 의사에게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

최 씨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입원치료를 결정했다. 이미 망가진 몸과 마음이었지만, 최 씨는 상처받은 자신의 삶도 이곳에서 치료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 씨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수사기관에 잡혀본 적 없다. 입원 기간 최 씨는 “학생 때 경찰에 잡혀 호되게 혼났다면 마약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곱씹었다.

돌이켜보면 최 씨의 과거는 후회와 안타까움만 가득했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지 않았다면, 중학교 1학년 친구의 제안을 뿌리쳤다면, 마약을 끊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던 동네 형을 끝까지 따랐다면, 더 일찍 병원을 찾아왔다면. 늦었지만 최 씨는 이제 후회의 지난날을 떠나보내고 마약 없는 새로운 삶을 꿈꿀 뿐이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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