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한국 마약 소비·생산국 분류..."원료물질 수급에 이용"
전문가 "아직 소량 제조지만...'자급자족' 수요·공급 확산 경계"
"초보적 제조도 문제...쉽고 빠른 마약 접근, 투약·중독 가중"
"과거 마약생산 대거 소탕, 처벌·규제 강화...감시 늦추지 말아야"
[서울=뉴스핌] 임성봉 윤혜원 기자 = 국제사회가 한국을 마약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국내 전문가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직 콜럼비아나 태국처럼 공장화된 상태는 아니지만, 초기대응에 실패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2019년 국제 마약통제보고서’에서 한국을 마약 소비·생산국으로 분류하고 “한국의 탄탄한 상업 기반시설이 마약 원료물질 수급에 이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필로폰의 원료물질인 에페드린 5대 수입국 가운데 한국의 수입량이 가장 높았고 수입량 역시 증가세다. 헤로인 제조에 사용되는 무수아세트산(acetic anhydride)이 파키스탄이나 중동 등지로 유통되는 창구로 활용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국이 자칫 본격적인 마약 생산기지로 전락할 수 있는 중대한 기점에 놓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진=관세청] |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한국이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대표적인 마약 생산국·태국, 미얀마, 라오스)’ 수준은 아니지만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단계라고 보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은 현재 비즈니스 구조를 갖추지 않은 소량의 제조, 유통 사례가 주로 발견된다”면서도 “이러한 제조, 유통 사례들을 초장에 잡지 않으면 생산국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에서 마약이 생산, 보급되는 ‘자급자족’ 체제는 마약 소비를 촉진해 다시금 마약 공급을 늘리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며 “제조·유통사범은 강력히 처벌하고 단순 투약자는 다시 마약에 손대지 않게 교육과 치료·재활을 병행하는 ‘투트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도 최근 급증하는 마약 수요를 고려해 국내 마약 제조망을 원천 차단할 필요성이 크다고 봤다. 국내에서 직접 공수되는 마약은 수요를 한층 빠르고 손쉽게 충족해 투약과 중독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국내 소규모 범죄조직이나 개인이 합성한 마약은 대부분 공정을 상당 부분 생략하고 급조한 것”이라며 “다만 국내 마약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마약이 증가하면 투약자와 중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초보적 마약 제조도 문제가 될 소지는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결국 국내에서 마약 제조 사례가 증가하는 것도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마약 수요를 줄이기 위한 투약·중독을 사전 예방하고 유흥가를 포함한 마약 거래 장소 단속 등을 제도화해 공급 유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을 본격적인 마약 생산국으로 분류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에서 마약을 생산하는 제조책의 기술 및 조직화 수준이 중국이나 북한 등에 비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김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현재 국내에서 생산된 마약보다 해외에서 밀반입되는 비중이 높고, 국내 마약 생산도 제조공장을 통해 대량생산하는 시스템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며 “마약생산국은 가까운 미래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최근 국내 마약 생산이 어려웠던 이유는 과거 검경 등 수사기관이 마약을 제조하는 기술자를 비롯해 마약범죄조직을 대거 소탕하고, 정부가 마약 생산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라며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감시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hw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