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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고백⑲]비밀정체 탄로난 잠입 여경 '아찔'

기사입력 : 2019년05월20일 14:32

최종수정 : 2019년05월20일 14:40

마약검사 피하려고..정상인 소변 담은 주머니 찬 '마약사범'
마약사범 본인 소변 맞는지 확인..소변에 온도계 넣는 '경찰'
잠복과 변장은 기본..속고 속이는 숨 막히는 추격전까지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마약 중독자들은 신체 은밀한 부위에 ‘오줌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마약을 하지 않은 정상인의 소변을 담은 주머니다. 마약사범이 경찰에 붙잡혀 마약검사를 할 때, 정상인의 소변을 제출하려는 일종의 ‘꼼수’다. 하지만 경찰 역시 만만치 않다. 경찰은 범인의 소변에 온도계를 집어넣는다. 방금 배출한 소변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소변이 특정 온도 이하면 ‘오줌주머니’에 들어있던 소변으로 거짓 제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장면을 목격한 순간, 마약사범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는 서로 속고 속이는 경찰과 마약사범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마약수사는 경찰 내부에서도 ‘극한의 심리전’으로 불린다. 마약사범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상상조차 어려운 ‘범행수법’을 만들고 경찰은 이를 뛰어넘기 위해 기상천외한 ‘수사기법’을 고안한다. 일부에서는 “마약사범이 경찰보다 수사기법을 더 잘 안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윤흥희 한성대 교수는 이런 마약사범들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베테랑 형사 출신이다. 30년 가까운 경찰 생활 대부분을 강력계에서 보낸 ‘수사통’이다. 2004년에는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 창설 멤버로도 활약했다. 현재는 한성대 행정대학원 마약학과에서 외래강사로 있다.

16일 서울 종로구 한성대학교 총동문회실에서 뉴스핌과 인터뷰 중인 윤흥희 한성대 행정대학원 마약학과 외래교수의 모습. 윤 교수는 30여년 간 경찰에서 마약 수사 등을 맡은 베테랑 형사 출신이다. [사진=임성봉기자]

윤 교수는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마약조직의 범행수법이 날로 지능화되고 있지만, 대한민국 경찰이 있는 한 이들은 반드시 붙잡힌다”며 “수사당국 간 공조체계 미흡, 예산 부족, 전문교육 미비 등 국내 마약수사의 한계 속에서도 현장 경찰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을 따돌리기 위한 마약사범들의 황당한 범행수법부터 이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경찰의 치밀한 작전까지. 이제는 현직을 떠난 윤 교수에게 경찰 마약수사의 ‘풀스토리’를 들어봤다. 다만 윤 교수는 마약사범이 악용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놨다.

◆정보원, 위장거래 그리고 급습

경찰의 마약수사 중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정보원을 활용한 수사다. 가장 오래된 방법이지만 현재까지도 마약수사의 제1원칙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보원의 종류는 유료 정보원과 무료 정보원 두 가지로 나뉜다. 유료 정보원은 경찰로부터 소정의 돈을 받고 관련 정보를 넘긴다. 무료 정보원은 특수한 관계를 바탕으로 경찰 수사에 협조하는 정보원이다.

수사는 정보원으로부터 얻은 첩보의 신빙성을 파악하는 등 수개월 간 진행되는 내사로 시작된다. 정보원은 △자수자 △제보자 △신고자 △여행사 △승무원 등 다양하다. 마약수사는 다른 사건과 달리 피해자가 없는 탓에 정보원 없이는 수사 개시 자체가 어렵다.

제보의 신빙성이 확인되면 구매자와 판매책의 접선 장소와 시간 등을 캐내는 작업이 이어진다. 잠복근무는 기본, 경찰을 따돌리려는 마약사범들의 거래방법 등을 사전에 면밀하게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라도 발생하면 검거는 물 건너간다. 경찰의 수사기법을 꿰뚫고 있는 마약사범들은 경찰의 작은 허점도 놓치지 않는다.

검거 작전이 최종적으로 수립되면 접선 장소를 중심으로 형사들이 배치된다. 마약 판매책 역시 접선 장소 곳곳에 사람을 배치한다. 경찰이 숨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눈을 피해 경찰은 변장하거나 예상치 못한 장소를 물색해 잠복한다. 거래가 이뤄지기 직전까지 경찰과 마약사범 간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이 이어지는 것.

접선 장소에 구매자가 나타나도 곧장 거래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잠복해 있을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판매책은 실시간으로 접선 장소를 바꾼다. 경찰 역시 판매자와 구매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하지만 최종접선 장소에서도 판매책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퀵 오토바이 배달기사나 제3자를 통해 마약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잠복해 있던 경찰은 구매자가 마약을 전달받은 후 이를 ‘눈’으로 확인하면 곧바로 검거에 들어간다. 구매자를 붙잡았다고 수사가 종결되는 건 아니다. 구매자를 붙잡은 뒤에야 판매책-유통책-제조책 등 ‘상선’을 파악하는 수사가 개시된다. 마약 수사의 핵심은 거래 과정에 있는 모든 상선을 파악하는 일이다.

정보원 활용 수사가 만능은 아니다. 영악한 마약범죄조직은 경찰의 정보원 활용 수사를 역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역공작’이다. 역공작을 펼치는 수법은 이렇다. 먼저 마약범죄조직에서 전과가 없는 조직원을 제보자로 위장시켜 경찰에 보낸다. 이후 경찰에게 자신의 조직과 관련된 마약 정보의 일부를 넘긴다. 이 과정에서 조직원은 경찰에게 “해당 조직에게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아 복수하기 위해 제보하려고 한다”는 그럴듯한 제보 이유를 댄다. 하지만 이 조직원은 경찰의 수사상황 등을 파악해 조직에 보고한다.

실제로 이 같은 수법이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제보를 받은 경찰관이 “그 정보는 이미 입수해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검거가 무산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경찰의 수사정보를 입수한 조직이 증거물을 없앤 후 모두 잠적하면 경찰로서도 손 쓸 도리가 없다.

정보원 활용 수사만큼 많이 이뤄지는 수사기법은 ‘위장거래수사’다. 경찰이 마약 구매자인 척 위장해 판매책을 검거하는 방식이다. 보통 정보원 활용 수사와 병행된다. 하지만 경찰이 판매책과 직접 접선하는 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실제로 윤 교수도 과거 위장거래 수사 중 판매책에게 정체가 발각된 적이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진=뉴스핌DB]

당시 거래 접선지였던 서울의 한 호텔 로비에서 부하들과 잠복하고 있던 윤 교수에게 판매책이 전화를 걸어왔다. 윤 교수는 이날 작전에서 구매자로 위장한 상태였다. 판매책은 윤 교수에게 “곰(마약사범 사이에서 경찰을 뜻하는 은어)들이 나 잡으려고 변장까지 하고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당연히 검거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윤 교수는 “마약사범들은 경찰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재주가 있다”며 “이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는 변장하는 방법도 계속해서 개발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해상에서 이뤄지는 위장거래는 더 위험하다. 윤 교수는 “해상에서는 변수에 대응하기가 어렵고 기동성에도 큰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베테랑 마약 수사관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마약범죄조직이 이상한 낌새를 차리면 경찰이더라도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교수는 과거 해상에서 위장거래를 시도하다 부하 여경이 위험에 처하는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일반적인 해상거래는 구매자와 판매책이 서로의 배에서 물건만 주고받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날 거래현장에서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판매책이 갑자기 구매자로 위장한 여경을 자신들의 배에 태워 달아나기 시작한 것.

잠복해 있던 형사들이 여경을 구하려 급하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판매책의 배는 이미 멀어진 뒤였다. 판매책에게 붙잡힌 여경은 결국 정체가 발각돼, 자칫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다행히 뒤늦게 따라붙은 수사팀이 여경을 구해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미국 등 마약수사 선진국에서 자주 활용하는 ‘통제배달수사’도 대표적인 기법으로 꼽힌다. 이 수사는 마약이 유통되도록 한 후 이를 추적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가령, 중국에서 국내로 필로폰 1㎏이 밀수입된다는 첩보를 입수해도 수사당국이 이를 압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약범죄조직의 ‘계획대로’ 마약이 유통책-판매책-구매자에게 전달되도록 한다.

다만 이 과정을 관계 당국이 공조해 함께 추적·감시한다. 이후 구매자에게 최종적으로 배달이 완료되면 추적과정에서 파악된 마약사범을 모두 검거한다. 다른 기법과 비교해 수사력은 적게 투입되고 상선까지 단번에 파악해 붙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약범죄조직은 이 같은 통제배달수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수시로 ‘유통 계획’을 바꾸는 치밀함을 보인다. 인천공항에 들어오기로 했던 물건을 갑자기 김포공항으로 빼돌리거나, 버스로 옮기려던 것을 퀵 오토바이 배송으로 바꾸는 식이다.

◆검거 현장에서의 ‘천태만상’

마약사범의 검거 현장은 다른 강력사건보다도 특히 위험하다. 마약에 취한 범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테랑 형사들도 현장을 급습할 때면 잔뜩 긴장한다. 실제로 검거 현장 대부분은 ‘육탄전’으로 시작해 육탄전으로 끝난다. 황급히 증거를 인멸하려는 용의자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의 몸싸움은 일상적이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탓에 설득이나 대화도 불가능하고 경찰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반면 마약에 취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마약사범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눈이 풀린 채 몸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은 평범하게 보일 정도다. 윤 교수도 검거 현장에서 엽기적인 마약사범들의 모습을 봤다.

16일 서울 종로구 한성대학교 총동문회실에서 뉴스핌과 인터뷰 중인 윤흥희 한성대 행정대학원 마약학과 외래교수의 모습. 윤 교수는 30여년 간 경찰에서 마약 수사 등을 맡은 베테랑 형사 출신이다. [사진=임성봉기자]

환청과 환시는 외형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마약 중독자들의 흔한 증상이다. 과거 윤 교수가 붙잡은 한 마약사범은 검거 상황에서도 약에 취해 방 벽에 귀를 대고는 “형사님, 옆방에서 성관계 소리가 들려요”라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마약사범은 환시 증상으로 “꽃이 여자로 보인다”며 꽃에 입맞춤을 하거나 껴안는 엽기적인 행각을 보이기도 했다.

온몸에 상처를 내는 ‘환촉’도 마약 투약자들의 주요 증상이다. 환촉은 마약 중독자가 자신의 몸에 거미 등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을 받는 것으로, 이 느낌을 없애려고 자신의 몸을 긁어 흉터가 생기기도 한다. 일명 ‘메스 버그(Meth-Bug)’다. 최근 배우 겸 가수 박유천 씨의 다리 종아리 흉터 사진이 공개되면서 환촉에 의한 상처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마약사범 검거 현장은 ‘증거 확보’의 싸움이다. 경찰은 마약과 투약 기구 등의 물증을 확보해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해야 한다. 분명 마약으로 보이는 물질이라도 국과수의 감정 결과 없이는 증거 능력이 없으며, 투약 기구 등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마약사범 대부분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체포 직전까지도 격렬하게 저항한다.

특히 국과수의 마약검사를 피하기 위한 이들의 ‘꼼수’도 기상천외하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온몸을 제모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최근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할리)씨와 가수 겸 배우 박유천씨가 이 같은 범행수법을 사용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윤 교수는 마약사범이 국과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단언했다.

윤 교수는 “소변이나 머리카락으로 마약검사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수준이고 겨드랑이나 항문에 난 털에서도 마약은 검출된다”며 “현재로서는 어떤 방법을 써도 투약한 마약을 검출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마약류는 최근 논란이 된 일명 ‘물뽕(GHB)’이다. 다른 마약과 달리 약물이 신체에서 소변으로 배출되는 시간이 30여 분에 불과하고 중독 증상이 거의 없는 탓이다.

물뽕이 주로 성범죄에 이용되는 이유도 같다. 범행에 물뽕이 사용됐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고, 피해자 역시 약물 피해를 인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다른 마약처럼 별도의 투약 기구가 필요하지 않고 휴대성이 좋다는 점도 범죄에 악용되는 주된 이유다.

윤 교수는 “합성 대마 등 신종 마약도 크게 늘고 국제운송이나 SNS 등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특히 수사 공조체계가 미흡한 한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독립된 마약 수사기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 등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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