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분열 외면 어려워…금리 정상화 요원
[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 경제에 대해 낙관적 평가를 내리며 추가적인 통화완화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느긋한 입장을 내놓았지만, 사실은 정치적 변수 등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야 하는 상당히 불편한 위치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9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유로존의 경기 하강 리스크가 둔화됐고, 디플레이션은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니라며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더 이상 절박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ECB 기준금리 동결 결정과 드라기 총재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뉴욕타임스(NYT)는 ECB가 겉보기에는 경기 개선 상황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이지만 유럽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정치권에서 불거지고 있는 분열 양상 때문에 속내는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ECB의 현 통화완화 정책 기조를 두고 국가별로 이해관계가 어긋나고 있는데다 섣불리 정책 결정을 내렸다가는 유럽 경기 회복세가 뿌리째 뽑히고 포퓰리스트 세력들이 득세할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 위태로운 줄타기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사진=블룸버그> |
유럽 등지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을 인식한 듯 드라기 총재는 일단 유로존 통합을 거듭 강조하며 분열 움직임을 견제했다.
그는 “유로화 탄생 때를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도 유로화가 잘못된 개념이라는 주장들이 있었다”며 “그들이 오늘날에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로존 회원국들이 위기의 순간에도 단결을 보여줬다며 “유로화는 그대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NYT는 드라기 총재가 통화정책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국가들 간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일례로 독일의 경우 ECB가 초저금리 정책으로 독일인들의 예금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펼쳐 왔다.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 ECB의 저금리 정책 덕분에 심각한 신용 위기를 그나마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만약 ECB가 대략 올해 중반부터 점진적으로 완화 정책을 축소해 나가기 시작한다면 이탈리아 포퓰리스트 정당인 오성운동은 ECB가 독일 편을 들어준다며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4월과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프랑스도 드라기 총재의 입장을 난감하게 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극우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의 당선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프랑스 국채금리가 치솟았는데, 이는 신용시장 비용을 낮게 유지하려는 ECB 정책 목표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서양 건너 미국의 정치 상황도 드라기 총재가 안심할 수 없는 요인이다. 유럽연합(EU)의 최대 교역 파트너인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휘 하에 무역 장벽을 높이게 되면 유럽의 수출이 타격을 입어 경제에도 파급 효과를 미쳐 통화정책에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금리 정상화 속도를 높이고 있는 연방준비제도 역시 금리를 낮게 유지해야 하는 ECB에는 부담이다.
애널리스트들은 ECB가 아마도 6월 정도에는 정책 의도를 좀 더 명확히 밝힐 것이며 국채와 회사채 매입 규모 축소와 같은 계획이 시사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다만 NYT는 복잡한 유럽의 정치,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결정은 아마도 수 년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