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이번엔 열차 사고다. 이태원 참사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또 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6일 밤 서울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가 탈선해 시민 수십명이 다쳤다. 객차 내부 여기저기가 참혹하게 부서진 사진이 보도됐다.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올 들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관할 노선에서 발생한 열한번째 탈선 사고다. 코레일 노선에서만 한 달에 한 번 기차가 탈선한 셈이다. 코레일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시설 오취급·작동 불량 등 선로전환기 문제로 발생한 사고가 가장 많다.
조재완 산업부 기자 |
철도업계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최저가 입찰제 폐해라는 지적이다.
열차 기대수명은 대략 25년. 한 번 제작하면 20년 넘게 달리는 차량이다. 열차 구매부터 유지보수, 교통관제 운영까지 철도운송사업은 코레일이 독점하는데, 공기업인 탓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 책임자가 교체된다.
쉽게 설명해 열차 구매를 책임지는 사람 따로 있고, 열차를 운영 관리하는 책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다. 열차를 구매하는 입장에선 노후열차를 유지·보수하는 일은 먼 미래에나 있을 '남 일'이다. 일단 열차를 가장 저렴하게 사고 보자는 식이다. 그렇게 굳어진 최저가 입찰 관행이 결국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아찔한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최저가 입찰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코레일과 철도업계는 지금도 줄다리기 중이다. 코레일은 당초 지난 9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EMU-320 입찰 공고를 내려했지만 이를 무기한 미뤘다. 이번 입찰에 해외기업들까지 참여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철도업계가 적격업체 선정 기준을 놓고 강하게 반발하면서다. 일반열차가 아닌 고속차량 입찰에도 해외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과 유럽 기업들이 저가공세를 펼치면 현행 입찰 구조에선 국내 기업들은 사실상 수주를 포기해야 한다. 철도업계 95% 이상은 영세한 중소기업이다.
국민들로선 '가장 저렴하게 만들어진' 고속열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열차 제작 경험이 전무한 해외기업들은 최저가 견적을 써낼 수 있다. 입찰 목적 자체가 포트폴리오 이력 한 줄 채우는 데 있기 때문"이라며 "저렴한 외국산 부품으로 만들어진 차량은 보수·관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실제 코레일 차량 정비사들이 업게에 고충을 토로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수입산 차량이 국산 차량보다 수리하기 까다로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코레일의 최저가 입찰제를 손보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코레일은 현행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근거해 경쟁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낸 업체를 낙찰한다. 명목상 2단계 경쟁입찰이라고 하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지 오래다. 경쟁입찰에 참여한 업체 전체가 사실상 기술·품질 등을 검증하는 1차 관문을 통과한다.
이 같은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매년 국정감사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때 뿐이다. 입법 움직임은 전혀 없다. 오히려 최저가 입찰에 응하지 않은 기업 때리기에만 혈안이 돼있다. 최근 인천을 지역구로 둔 야당 의원들은 '국내 1위 철도기업이 입찰을 거부해 KTX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는 취지의 여론전을 펼쳤다.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의 교통 민원을 기업 탓으로 돌린 셈이다.
현재 코레일은 감사원에 고속차량 입찰 도입과 관련한 사업계획 컨설팅을 의뢰한 상태다. 사실상 감사원에 결론 내려달라며 공을 떠넘긴 것이다. 감사원의 컨설팅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안전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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