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김근철 특파원=유럽연합(EU)과 영국이 아스트라제네카(AZ)의 코로나19 백신 물량 확보를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당국은 지난 주말 EU의 요청으로 로마 인근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보관 시설에 수사 인력을 급파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아스트라제네카측이 보관해둔 백신의 비축량과 향후 행선지 등을 파악, EU와 이탈리아 정부에 보고했다. 당시 이 시설에 보관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물량은 2천900만회분으로 파악됐다.
EU는 아스트라제테카가 유럽 지역에서 생산된 백신 물량을 영국 등 다른 지역에 빼돌릴 수 있다고 의심, 기습적인 현장 점검을 이탈리아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와관련, 이탈리아 현지 비축 물량은 EU 역내 국가와 국제백신공급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빈곤국에 공급될 뿐이라고 확인했다. 몰래 빼돌리는 물량은 없다고 해명에 나선 셈이다.
EU가 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운 이유는 영국과 아스트라제네카의 '특수 관계'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스웨덴의 '아스트라 AB'와 영국의 '제네카'가 합쳐서 설립된 다국적 제약회사다. 본사는 영국 캠브리지에 있다. 코로나19 백신도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9일(현지시간)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2021.03.20 [사진=로이터 뉴스핌] |
지난해 47년만에 EU에서 탈퇴한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독자적으로 신속하게 긴급 사용을 내렸다. 영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뿐아니라 화이자, 모더나, 존슨앤존슨 백신에 대해서도 발빠르게 긴급 사용 승인하고 물량 선점에 나섰다.
이덕에 영국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 EU를 앞지르고 있다. 영국의 백신 접종률은 최근 4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고, 이덕에 코로나19 사망자와 확진자는 두달 사이에 각각 93%와 85%나 감소했다.
더딘 백신 보급과 접종으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EU 회원국 상당수가 코로나19 3차 대유행 우려 속에 봉쇄령을 내리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EU로선 영국에 대해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쯤되자 EU와 영국은 24일(현지시간) 공동성명까지 발표하며 갈등을 봉합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공동성명은 "우리는 윈-윈(win-win)하는 상황을 만들고, 우리 국민들에게 백신 공급을 늘리기 위해 구체적인 단계에서 함께 일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둘러싼 EU와 '탈퇴한' 영국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과 앙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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