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의 '밀착 구애'에도 냉혹한 선 긋기… 트럼프식 '기선 제압'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이 예상치 못한 발언 하나로 외교가를 술렁이게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지는 자리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겉보기엔 농담처럼 들렸지만, 동맹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려는 트럼프 특유의 기선잡기식 '거래형 외교' 본색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 "기습은 일본이 전문 아니냐"
발언은 회담 말미 일본 기자의 질문에서 비롯됐다. 이란 공습과 관련해 "왜 아시아 등 동맹국에 사전 통보가 없었느냐"는 물음에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많은 신호를 주고 싶지 않았고, 기습 효과를 위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곤 옆에 앉은 다카이치 총리를 향해 "기습(Surprise)에 대해 일본보다 더 잘 아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왜 그때(진주만 공습)는 나에게 미리 말 안 했느냐?"라며 웃으며 반문했다. 회담장은 잠시 어색한 정적에 휩싸였고, '우익의 여제'로 불리는 다카이치 총리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미·일 동맹의 '성역'을 깨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이번 발언을 단순한 실언으로 보지 않는다. 전후 미·일 관계에서 '진주만'은 극도로 예민한 상징으로, 역대 대통령들이 외교적 결례를 고려해 언급을 피했던 주제다. 2016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진주만에서 화해의 의미로 헌화하며 '적에서 동맹으로'의 가치를 강조했던 장면은 그만큼 상징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관계의 '금기'를 단숨에 깨뜨리며, 일본을 상대로 확실한 기선 제압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의 미안함보다는 현재 미국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동맹이라 해도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특히 이번 이란 공습처럼 동맹국을 배제하고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흐름이 강화될 경우, 한국과 일본도 향후 주요 안보 사안에서 '사후 통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다카이치의 '친 트럼프' 행보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방미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의 '특별한 친분'을 부각하려 했다. 백악관 도착 직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포옹하며 반가움을 표시했고, 회담 중에는 "세계 평화를 가져올 유일한 리더"라고 치켜세우며 '도널드'라는 이름을 직접 불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그 순간 '진주만'을 언급하며 일본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 놓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아무리 밀착 행보를 보여도, 결국 판을 짜고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상기시킨 셈이다.
◆ "실리 외교 파고에 대비하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아시아정책연구센터 미레야 솔리스 소장은 NYT에 "트럼프 대통령의 전임자들은 미·일 간 깊은 화해 과정을 존중해 일본 지도자들 앞에서 진주만 문제를 장황하게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발언은 매우 이례적이며 충격적이었다"며 "이번 회담의 목적은 미·일이 공유하는 비전과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지, 과거의 분열과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일성은 동맹 간 신뢰를 확인하기보다는 미국의 실리적 우위를 재차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역시 이러한 '거래형 외교'의 파동 속에서 냉철한 전략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