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른바 '스텔싱' 사건 손배책임 인정…"100만원 배상해야"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성관계 도중 콘돔을 제거한 남성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동부지법 민사32단독 임범석 부장판사는 피해자 A씨가 옛 연인 사이였던 B씨를 상대로 낸 2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A씨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와 B씨는 헤어진 연인관계였다. 그러다 지난해 4월, 전 남자친구인 B씨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고 이를 기점으로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재회 후 처음으로 성관계를 하던 도중 A씨는 콘돔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성병과 임신 등 불안감 때문에 콘돔 착용 없이는 성관계를 하지 않았던 A씨는 곧바로 화를 냈고, B씨는 유난이라고 되레 맞받아쳤다.
법원로고 [사진=뉴스핌DB] |
A씨는 나중에야 자신이 당한 일이 이른바 '스텔싱(Stealthing)', 즉 성관계 도중 상대방 동의 없이 콘돔 등 피임기구를 제거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B씨는 '외국에서나 신고감이지 한국에서는 아니다', '유난 떨지 말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화가 난 A씨는 소송을 제기하려고 했으나, 그 과정부터가 쉽지 않았다. A씨와 상담한 변호사 10명 중 8명이 소송이 힘들다며 사건 수임을 거부했다.
실제로 영국과 독일·스위스·캐나다 등 서구권에서는 스텔싱을 강간에 해당하는 성범죄로 보아 형사처벌하고 있다.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라 하더라도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중간에 뺀 경우에는 동의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를 처벌할 조항 자체가 없다.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같은 민사소송은 가능은 하지만 증거를 제시하기도, 고의를 입증하기도 힘들다.
B씨 역시 법정에서 성관계 도중 콘돔을 뺀 사실 자체는 인정했으나 A씨가 보는 앞에서 동의하에 뺐으며 A씨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취지로 책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사건을 살펴본 법원은 1년여 만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명시적으로 동의를 받지 않은 콘돔 제거가 불법행위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이로 인해 A씨가 겪었을 우울과 불안 등의 정신적 피해를 인정했다.
다만 임 부장판사는 "성병과 원치 않은 임신에 이르는 피해까지는 발생하지 않은 점, 피고가 곧바로 성병 검사를 받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A씨가 청구한 금액 중 일부만을 인용했다.
A씨의 법률 대리인은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스텔싱이 무엇인지 인식도 없고, 그런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에 사건을 수임했을 때도 무조건 승소할 사건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혹시나 재판부 성향에 따라 잘못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adelant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