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은행 예금잔액증명서 부당 발급…'직원 고의', '내부통제 시스템 미비' 결과물
[편집자] '야금(冶金)'은 돌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입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금융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첫단부터 끝단까지 주목받는 건 몸집이 큰 사안뿐입니다. 야금 기술자가 돌에서 금과 은을 추출하듯 뉴스의 홍수에 휩쓸려 잊혀질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사고를 되짚어보는 [한국금융의 뒷얘기 야금야금] 코너를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최근 선보였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후 개선된 건 있는지 등 한국금융의 다사다난한 뒷얘기를 매주 금요일 만나보세요.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 "우리 기업 정기예금에 설정된 질권있죠? 그것 좀 풀고 예금잔액증명서 하나 발급해주세요." 소형 건설사 A는 거래하던 광주은행 ㄱ지점을 찾아 이 같이 요구했다. 광주은행 직원 B씨는 이에 따라 A건설사의 정기예금에 대한 질권을 풀고,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해줬다. 그리고 이튿날 A건설사 정기예금에는 다시 질권이 설정됐다. 은행 직원 B씨의 클릭 몇 번으로 하루 새 A건설사의 서류상 자금은 '없었다→생겼다→없어졌다'를 오갔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금융감독원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 질권 설정된 예금, 사실상 '부채'
금감원은 지난 2017년 말 광주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금융회사들이 금융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잘 갖췄는지 정기적으로 들여다봐요. 당시 몇몇 지방은행에 테마검사를 나갔는데, 광주은행에서 예금잔액증명서를 부당 발급한 사례를 발견했죠." 광주은행은 또 어느 기업의 정기예금에 설정된 질권을 만기 전일 해제하고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한 후, 다음날 예금을 해지해 해당 기업의 실제 자금력에 혼돈을 주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질권은 채권자가 채권의 담보로 받은 담보물권을 말한다. 예금에 질권이 설정됐다는 것은 예금이 사실상 예금주의 돈이 아니라는 의미다. 때문에 예금 질권 설정여부는 예금주의 자금력을 판별하는 데 중요하다. 현재 예금잔액증명서에는 발급 시점의 질권 설정여부만 표기된다. 질권을 임의로 풀었다 묶으면서 기업의 자금력을 부풀려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해준 광주은행의 행태는 문제가 있었다. 금감원은 광주은행이 은행법 제34조(불건전 영업행위 금지·금융사고 예방 등)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건설사는 입찰에 참여하기 전 예금잔액증명서 등을 통해 자본력을 증명한다. 이 탓에 일부 소형 건설사들은 실제 자금력이 부족한 데도, 자금력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거래은행에 묶여있는 질권을 해지한 뒤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에 은행이 응하면 사기 같은 문제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는 전언이다. "기업이 실제 돈이 없는데, 돈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준 거잖아요. 충분히 악용될 수 있죠. 투자자를 속이는데 쓰일 수도 있고." 은행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 직원 '고의'‥회사 '내부통제 미비'
그렇다면 광주은행에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직원 잘못이 발단이다. "광주은행에선 업무착오였다고 해명했는 데요. 질권을 풀어서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해주는 것은 은행이 고객 부채를, 고객 돈으로 뒤바꿔 준거잖아요. 명백한 편법(자금력 위장)이에요. 실수였으면 지적하지 않았겠죠. 고의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금감원은 광주은행 해당 지점에 의도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사건에 연루된 직원 모두에 감봉 3개월, 견책 등 신분상 제재조치를 내렸다.
당시 광주은행의 낙후된 내부통제 시스템도 문제였다. 시중은행에선 예금잔액증명서 부당 발급 같은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은행권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은 맞아요. 보통 전산시스템을 구축한 지 오래된 경우 일어나죠. 과거에는 내부통제 개념이 약하다보니, 전산시스템에도 이게 반영이 잘 안 돼 있거든요. 광주은행도 그런 경우였어요." 제재조치를 내린 금감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업무가 문제없이 제대로 처리됐는지 자동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는 얘기다.
광주은행을 비롯해 지방은행들은 내부통제 시스템이 시중은행보다 미흡한 편이다. 자산규모 차이가 크다보니 인력, 비용을 투입하는 데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다. 연고 지역의 경기가 침체된 데다, 은행권 내 경쟁이 격화된 최근 몇 년 지방은행들 어려움은 더 커진 게 사실이다.
◆ "전산시스템 개선" 주문…이행보고는 아직
반면 최근 전산시스템을 사용하는 은행들은 서류를 전산시스템으로 자동 검증하는 단계를 거친 후 책임자, 자점검사를 통해 추가 확인을 하고 있다. 전산에 '승인을 올리세요'라는 문구가 뜨면 책임자들이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질권을 해제하는 서류는 작성하기도 복잡하고, 전산에 올라가도 책임자가 그 연유를 꼼꼼하게 확인해요. 질권을 해지했다가 다시 설정한다? 책임자가 전산에서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 바로 연락할걸요." 시중은행 한 관계자가 확신을 갖고 말했다.
금감원은 광주은행에 신분상 제재 외에 전산시스템 개선도 주문했다. 1차로 주어지는 기간은 제재공시가 난 날로부터 6개월이다. 예정대로라면 다음달 3일까지 사후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기간을 연장하고 싶다면 금감원에 사유를 명확히 설명하면 가능하다. 광주은행은 금감원에 내는 사후보고서에 전산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했는지 증빙하는 자료를 부착해 보고하면 된다. 이른바 지적사항을 이행했다는 완료보고다. 다만 제출 기한이 임박했지만 아직까지도 광주은행은 사후보고서를 내지 않은 상태다.
금감원은 광주은행을 비롯해 지방은행들의 내부통제 시스템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힘쓸 방침이다. "지방은행들이 인력, 비용에 한계가 있어요. 최근 경기가 안 좋다보니 어려움이 더 크고요. 그래도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선진화는 돼야죠. 저희도 이들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전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milpar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