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미래에셋 박현주회장의 휴먼스토리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살아있는 자본시장의 최고 스타다. 여의도 증권가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자금시장의 물꼬가 그의 행보에 따라 뒤바뀐다.
10여년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회사를 만든지 불과 10년. 박현주 회장이 사실상 한국 자본시장을 완전 접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그는 금융권 샐러리맨의 우상이다. 너도 나도 그의 성공스토리에 주목한다. 잘 나가던 대기업도 줄줄이 나자빠지던 IMF시절 소규모 금융회사를 차려 탄탄대로를 달렸고 지금 최고가 된 박현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존경심을 갖고 벤치마킹을 시도한다.
증권가에서, 자산운용가에서 가장 가고 싶은 직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주저하지 않고 미래에셋을 꼽는다. 그 때문인지 이제 미래에셋은 금융계의 사관학교라고 할 정도로 우수한 인력을 보유하게 됐고 또 배출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박현주회장이 있다.
고도성장을 이루며 자본시장에서 신화적 인물로 자리잡은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시장에 대한 통찰력과 비즈니스 마인드는 태생부터 부여받은 천부적인 기질일까.
화려한 무대 이면에는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거대한 업적뒤에는 드러나지 않은 스타들의 고민과 상처가 배어있다. 그를 신화로 이끈 동인들, 최고라는 단어 이전에 그가 겪어온 행보들,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그를 지켜봤던 시장의 평판들을 들어왔다.
이번 기획은 그의 성공스토리라기 보다는 휴먼스토리에 초점을 뒀다.
6회에 걸친 기획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와 성원을 바란다.
<시리즈 목차>
①한국의 워렌버핏, 박현주 회장
② 위기에서 건진 승리
③ 과묵했던 소년 박현주
④ 박현주의 무노조 경영
⑤ 가는 '사랑' 오는 '외로움'
⑥ 남은 자와 떠난 자

박현주가 말하면 모든 게 뉴스가 된다. 그만큼 금융시장에 미치는 그의 파워는 강력하다.
그가 이끄는 미래에셋은 금융시장내 최대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관이 됐다. 외국인이 좌지우지하던 국내 주식시장을 기관 중심으로 바꾼 것도 미래에셋이다.
한투, 대투, 현투 등 3투신을 포함해 수십년 역사를 가진 전통의 강호들도 어느 순간 신생사인 미래에셋에 뒤쳐지고 말았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10살에 불과한 미래에셋에게 최강자의 자리를 내준 셈이다.
박현주 회장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1997년 7월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했다. 곧이어 8월엔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하며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 때는 전 국민이 도탄에 빠졌던 외환위기가 불거지기 직전이다. 국내 굴지의 그룹도 쓰러지고, 잘 나가던 사업을 축소하던 그 시절, 박현주는 '대장정'에 나섰다.
◆'국민펀드'가 된 미래에셋펀드
펀드 대중화를 일군 미래에셋의 대표펀드만 잠시 들여다보자. 2001년 출시한 '미래에셋 인디펜던스 주식형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683%,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주식형펀드'는 무려 7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연간 평균 100%가 넘는 수익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은 미래에셋펀드 하나 갖지 않는 국민이 없을 정도다. 주식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새로운 꿈을 갖게 만든 것이 미래에셋이고 그 중심엔 박현주가 있었다.
"주식이 빠지고, 장이 나빠지면 고객들의 원성과 문의가 빗발친다. 하지만 미래에셋펀드를 팔면 고객 불만도 없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창구에서도 자사 상품이 아닌 미래에셋펀드를 팔게 되는 것이다." 은행 창구 직원들의 전언이다.
이제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시장의 비판세력조차도 함부로 입을 떼지 못한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이들 또한 먹고 살아야할텐데 시장 영향력이 너무 커버린 미래에셋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결국 상부상조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 "소수의 길에 서라"
취재 도중 박현주 회장을 '금융계의 노무현'이라고도 일컫는 이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요한 정치적 고빗길마다 보인 상식을 뛰어넘는 언행처럼 박 회장 또한 비슷한 스타일을 보인다는 얘기다.
물론 관점의 차이야 있겠지만 박 회장이 남들이 가지 않는 소수의 편에 서왔다는 점, 기가막히게 들어맞는 운이란 측면에선 공감가는 면도 있다.
박 회장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항상 '소수의 길'을 강조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장이 폭락할 때 주식을 샀고, 고점에서 팔아 어마어마한 수익을 남겨왔다.
그러다 보니 시장 영향력이 커졌고, 개인이나 기관 할 것 없이 미래에셋의 매매패턴을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됐다.
운도 절묘하게 뒤따랐다. 축구에서 '최고의 공격이 최고의 수비'라는 말이 있듯이 박회장 또한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이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선제적인 매매스타일, 남들이 아니라고 할 때 과감하게 주식을 편입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다. 때마침 시장은 상승세를 탔고 그는 이겼다.
물론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것이 시장이어서 공격적 매매패턴은 시장이 반대로 갈 경우 그만큼의 리스크를 떠안고 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는 이같은 방식으로 돈을 벌었고, 최고의 펀드를 유지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 미래에셋 공화국... 제왕적 구조
미래에셋은 박 회장을 중심으로 한 일사분란하고 강력한 의사결정 구조가 특징이다.
최초 20~30명 조직에서 10년새 100배가 넘는 3000여명에 달하고 자기자본은 100억원에서 시작해 200배가 넘는 2조원을 넘는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 했지만 임직원들의 박 회장에 대한 충성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같은 점은 오너체제를 갖춘 기업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 중 미래에셋 박 회장의 카리스마는 단연 으뜸이다.
물론 이같은 점으로 인해 미래에셋은 시장 경쟁에서 항상 '업계최초'라는 상품과 트렌드를 이끌며 급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펀드를 보유하고 이에 일희일비할 정도의 큰 조직이 된 지금, 이같은 의사결정 구조의 비효율성은 개선돼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않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주식시장에서 한 사람의 의사결정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단일 의사결정은 경영의 비효율성을 높인다. 독립적인 의사결정,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조직이 발전한다. 카리스마 경영은 한계가 있다. 미래에셋도 박 회장의 권력은 분산되고 분화돼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측은 "능력있는 전문가들에게 부문별 간판 CEO를 맡겼고 책임있는 의사결정을 한다"며 "한 사람이 아닌 매주 열리는 투자전략위원회를 통해 형평성 있는 판단을 한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운용업계에선 결국 박 회장의 한 마디가 바로 미래에셋의 법이 아니겠는가란 관측은 지배적이다.
리더로서의 박 회장은 잘하는 이에겐 포상을, 못하는 이에겐 가차없는 해고를 단행하며 조직관리를 해왔다. 작은 실수도 박 회장의 판단에 따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잘릴 수도 있는 조직문화다.
"제대로 된 리더는 조직원들에게 공포 아니면 이익을 줘야한다"고 말한 나폴레옹이 불현듯 떠오른다.
10여년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회사를 만든지 불과 10년. 박현주 회장이 사실상 한국 자본시장을 완전 접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그는 금융권 샐러리맨의 우상이다. 너도 나도 그의 성공스토리에 주목한다. 잘 나가던 대기업도 줄줄이 나자빠지던 IMF시절 소규모 금융회사를 차려 탄탄대로를 달렸고 지금 최고가 된 박현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존경심을 갖고 벤치마킹을 시도한다.
증권가에서, 자산운용가에서 가장 가고 싶은 직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주저하지 않고 미래에셋을 꼽는다. 그 때문인지 이제 미래에셋은 금융계의 사관학교라고 할 정도로 우수한 인력을 보유하게 됐고 또 배출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박현주회장이 있다.
고도성장을 이루며 자본시장에서 신화적 인물로 자리잡은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시장에 대한 통찰력과 비즈니스 마인드는 태생부터 부여받은 천부적인 기질일까.
화려한 무대 이면에는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거대한 업적뒤에는 드러나지 않은 스타들의 고민과 상처가 배어있다. 그를 신화로 이끈 동인들, 최고라는 단어 이전에 그가 겪어온 행보들,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그를 지켜봤던 시장의 평판들을 들어왔다.
이번 기획은 그의 성공스토리라기 보다는 휴먼스토리에 초점을 뒀다.
6회에 걸친 기획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와 성원을 바란다.
<시리즈 목차>
①한국의 워렌버핏, 박현주 회장
② 위기에서 건진 승리
③ 과묵했던 소년 박현주
④ 박현주의 무노조 경영
⑤ 가는 '사랑' 오는 '외로움'
⑥ 남은 자와 떠난 자

박현주가 말하면 모든 게 뉴스가 된다. 그만큼 금융시장에 미치는 그의 파워는 강력하다.
그가 이끄는 미래에셋은 금융시장내 최대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관이 됐다. 외국인이 좌지우지하던 국내 주식시장을 기관 중심으로 바꾼 것도 미래에셋이다.
한투, 대투, 현투 등 3투신을 포함해 수십년 역사를 가진 전통의 강호들도 어느 순간 신생사인 미래에셋에 뒤쳐지고 말았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10살에 불과한 미래에셋에게 최강자의 자리를 내준 셈이다.
박현주 회장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1997년 7월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했다. 곧이어 8월엔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하며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 때는 전 국민이 도탄에 빠졌던 외환위기가 불거지기 직전이다. 국내 굴지의 그룹도 쓰러지고, 잘 나가던 사업을 축소하던 그 시절, 박현주는 '대장정'에 나섰다.
◆'국민펀드'가 된 미래에셋펀드
펀드 대중화를 일군 미래에셋의 대표펀드만 잠시 들여다보자. 2001년 출시한 '미래에셋 인디펜던스 주식형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683%,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주식형펀드'는 무려 7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연간 평균 100%가 넘는 수익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은 미래에셋펀드 하나 갖지 않는 국민이 없을 정도다. 주식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새로운 꿈을 갖게 만든 것이 미래에셋이고 그 중심엔 박현주가 있었다.
"주식이 빠지고, 장이 나빠지면 고객들의 원성과 문의가 빗발친다. 하지만 미래에셋펀드를 팔면 고객 불만도 없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창구에서도 자사 상품이 아닌 미래에셋펀드를 팔게 되는 것이다." 은행 창구 직원들의 전언이다.
이제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시장의 비판세력조차도 함부로 입을 떼지 못한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이들 또한 먹고 살아야할텐데 시장 영향력이 너무 커버린 미래에셋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결국 상부상조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 "소수의 길에 서라"
취재 도중 박현주 회장을 '금융계의 노무현'이라고도 일컫는 이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요한 정치적 고빗길마다 보인 상식을 뛰어넘는 언행처럼 박 회장 또한 비슷한 스타일을 보인다는 얘기다.
물론 관점의 차이야 있겠지만 박 회장이 남들이 가지 않는 소수의 편에 서왔다는 점, 기가막히게 들어맞는 운이란 측면에선 공감가는 면도 있다.
박 회장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항상 '소수의 길'을 강조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장이 폭락할 때 주식을 샀고, 고점에서 팔아 어마어마한 수익을 남겨왔다.
그러다 보니 시장 영향력이 커졌고, 개인이나 기관 할 것 없이 미래에셋의 매매패턴을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됐다.
운도 절묘하게 뒤따랐다. 축구에서 '최고의 공격이 최고의 수비'라는 말이 있듯이 박회장 또한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이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선제적인 매매스타일, 남들이 아니라고 할 때 과감하게 주식을 편입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다. 때마침 시장은 상승세를 탔고 그는 이겼다.
물론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것이 시장이어서 공격적 매매패턴은 시장이 반대로 갈 경우 그만큼의 리스크를 떠안고 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는 이같은 방식으로 돈을 벌었고, 최고의 펀드를 유지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 미래에셋 공화국... 제왕적 구조
미래에셋은 박 회장을 중심으로 한 일사분란하고 강력한 의사결정 구조가 특징이다.
최초 20~30명 조직에서 10년새 100배가 넘는 3000여명에 달하고 자기자본은 100억원에서 시작해 200배가 넘는 2조원을 넘는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 했지만 임직원들의 박 회장에 대한 충성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같은 점은 오너체제를 갖춘 기업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 중 미래에셋 박 회장의 카리스마는 단연 으뜸이다.
물론 이같은 점으로 인해 미래에셋은 시장 경쟁에서 항상 '업계최초'라는 상품과 트렌드를 이끌며 급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펀드를 보유하고 이에 일희일비할 정도의 큰 조직이 된 지금, 이같은 의사결정 구조의 비효율성은 개선돼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않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주식시장에서 한 사람의 의사결정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단일 의사결정은 경영의 비효율성을 높인다. 독립적인 의사결정,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조직이 발전한다. 카리스마 경영은 한계가 있다. 미래에셋도 박 회장의 권력은 분산되고 분화돼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측은 "능력있는 전문가들에게 부문별 간판 CEO를 맡겼고 책임있는 의사결정을 한다"며 "한 사람이 아닌 매주 열리는 투자전략위원회를 통해 형평성 있는 판단을 한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운용업계에선 결국 박 회장의 한 마디가 바로 미래에셋의 법이 아니겠는가란 관측은 지배적이다.
리더로서의 박 회장은 잘하는 이에겐 포상을, 못하는 이에겐 가차없는 해고를 단행하며 조직관리를 해왔다. 작은 실수도 박 회장의 판단에 따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잘릴 수도 있는 조직문화다.
"제대로 된 리더는 조직원들에게 공포 아니면 이익을 줘야한다"고 말한 나폴레옹이 불현듯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