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빈소 조문 2일차
장례의원 장상, 이 여사 에피소드 나눠
"결혼 안했어도 상당한 일 했을 것"
[서울=뉴스핌] 김준희 김현우 기자 = “이희호 여사님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인권운동가로서 그 위치가 당당했다. 영부인이 됐기 때문에 그 위치를 크게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섭섭해 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희호 여사의 장례위원장인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은 12일 이 여사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이 같이 알렸다.
장 전 총장은 “제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게 여사님께서는 김대중이란 청년을 만나서 사랑하고 존중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꿈에 반했다는 것”이라며 “그 꿈을 함께 이루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건 모험이고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사님께서는 결혼을 안 했어도 상당한 일을 하셨을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나누며 가정이라는 지평을 넘어서 국가라는 지평에서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께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대통령께서 이루신 일의 몇 분의 1은 여사님의 기여가 크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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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정일구 기자] |
1세대 여성운동가로 분류되는 이희호 여사는 1959년 여성단체 YWCA 연합회 총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 여사는 여성·인권 활동가로서 혼인 신고 의무화, 축첩 반대 등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에 앞장섰다.
장 전 총장은 “여사님은 여성의 인권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엄청나게 분노했다. YWCA에서 축첩한 정치인을 축출하는 운동을 시작하셨다. 반세기 전엔 와이프가 둘인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였는데 여사님이 과감하게 그런 슬로건을 거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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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24일 서울 국회의사당광장에서 열린 제 15대 대통령 취임식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
그는 이어 이 여사를 ‘행동파’라고 소개했다. 장 전 총장은 “여사님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하셨다. 큰 조직을 만들어 이사장이 되고 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실질적으로 일이 이뤄지느냐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 전 총장은 ‘북한 아이들을 위한 뜨개질’ 활동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어느 날 동교동으로 인사를 갔더니 북한에 있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장갑을 뜨고 계셨다. 제가 ‘여사님, 그거 몇 개 뜨셔서 역사가 바뀌겠어요?’ 했더니 여사님이 빙긋 웃으며 ‘내가 이렇게 뜨는 줄 알면 다른 사람들도 다 뜨기 시작해서 장갑이 늘어난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장 천 총장은 “(이 여사는) 솔선수범해서 일이 파급되도록 하신다”며 “아주 조용히, 광고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이희호 여사와 장 전 총장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인연을 맺었다. 장 전 총장은 “여사님이 YWCA연합회 총무로 일하실 때 명동에서 종종 뵀는데 외국에서 유학하고 오셔 날씬하고 지성미가 철철 흐르는 그런 분이었다”며 “그 때부터 여사님을 좋아하고 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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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장상 장례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6.11 mironj19@newspim.com |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결혼 당시 반대가 심했던 이 여사측 지인들의 뒷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장 전 총장은 “한 번은 YWCA에 갔는데 모여 앉아서 훌쩍거리거나 슬픈 표정을 짓는 분들이 있었다”며 “왜 그러나 했더니 여사님이 시집을 간다고 그러더라. (그분들 입장에선) 여사님이 너무너무 아까웠던 것 같다”고 풀어놨다.
그는 이어 “당시 이희호 총무께선 ‘나는 그 분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큰 꿈을 도와드리고 싶다’ 그랬다. 우리가 좋아했던 처지니까 이 총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일리가 있을 테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총리 후보에 올랐던 장상 전 총장은 낙마 이후 청와대 식사자리에 초대된 이야기도 나눴다. 그는 “내가 안됐다고 여사님이 우셔서 즐겁게 해드리려고 결혼 뒷얘기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김대중 대통령께선 ‘나같이 핸섬한 남자를 놓칠 수가 있냐’며 웃으셨다”고 전했다.
장 전 총장은 “여사님은 김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밤 지새워 기도하다 기절했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그런 측면이 가까운 분들에겐 알려졌지만 대통령 영부인이다 하면 잘 모르지 않나. 이번에 장례식을 맞아 여사님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보람이다”고 말했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