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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100대업종]⑥조제분유 산업上, 2015년 14조원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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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강소영 기자] 중국의 '두 자녀 정책'으로 전세계 영유아 관련 산업이 들썩이고 있다. 그 중 분유업계는 '둘째 특수'를 가장 많이, 제일 직접 누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두 자녀 허용 정책에 따라 분유시장은 오는 2020년까지 10~20%의 수직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중국이 18기 3중전회(제18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부 중 한 명이 독자일 경우 두 자녀 출산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힌 후, 중국 증시에서는 영유아 조제분유 생산업체의 주가가 급등하는 등 분유 시장이 '호재'를 맞아 큰 기대감에 휩싸였다.  외국계 분유회사는 중국에서의 전통적 시장 우위를 굳히기 위해 절치부심중이고, 중국 로컬업체은 시장 탈환을 위한 반격에 나설 태세여서 중국 분유시장은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맞고 있다.

 ◇ '둘째 아이' 출산으로 분유시장 매년 10~20% 성장 

[그래픽:송유미 미술기자]
중국 정부가 두 자녀 정책 방침을 발표하기 전부터 중국의 분유 시장은 빠른 성장이 기대되고 있었다. 2008년~2010년 중국은 신생아수가 급등하며 미국에 이어 세계 제2대 영유아 분유 시장에 '등극'했다.

중국에서 0~3세 영유아 인구는 6900만 명. 연간 출생 신생아 수는 1700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모유 수유가 불가능하거나 모유와 분유를 혼합 수유해야 하는 신생아는 적어도 전체의 20%인 3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의 분유 업계 전문가들은 두 자녀 출산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5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조제분유 시장 규모가 매년 10~20%의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자녀 출산 제도가 정착되면 중국의 연간 출생 신생아 수가 2000년 전후와 비슷한 1780만~19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2012년 중국에서 출생한 신생아 수는 1635만 명이었다.

분유 업계는 25~34세 도시(대도시와 소도시 포함) 가임  여성 인구가 둘째 출산 제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수치에 따르면, 2012년 중국의 공식 집계 인구는 13억 5404만 명. 이 가운데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15~49세 여성은 3억 8000만 명에 이른다. 또한, 임신·출산이 가장 왕성한 20~29세 여성 인구수가 1억 1000만 명에 달한다.

화태증권(華泰證券)은 최근 보고서에서, 2015년~2018년 사이 신생아 출생 수가 급증해 '신(新) 베이비붐' 시대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2019년부터는 신생아 증가세가 주춤해지겠지만, 한 자녀 출생만 가능하던 과거보다는 훨씬 많은 신생아가 태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 보고서는 2015년~2017년까지 연간 신생아 증가율이 각각 25%, 25%,20%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2015년과 2016년에만 둘째 출산으로 약 200만 명의 아이가 '추가'로 태어난다는 계산이다. 2018년~2019년에는 신생아 증가율이 15%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신생아의 증가는 분유 수요 증가로 직결된다. AC닐슨에 따르면, 2012년 중국 분유 시장 매출규모는 385억 위안(약 6조 7000억 원)을 기록했고, 분유 매출액은 최근 몇 년 연간 38억 5000만~77억 위안씩 늘어나고 있다. 둘째 아이 출산으로 분유 판매량은 매년 10~20%가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관련 업계와 전문가는 2015년 중국의 영유아 조제분유 시장 규모가 800억 위안(약 1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화태증권은 '두 자녀 제도'가 정착되면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에서 신생아수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했다. 대도시에서는 경제적 부담이 크고, 경제생활로 부부가 떨어져 지내는 비율도 높아 둘째 출산을 원하는 가정이 중소도시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유의 수요가 3·4선 도시를 중심으로 크게 늘 것으로 전망했다. 3·4선 도시는 직할시·부성급시인 1선도시와 각 성도(省都)와 경제특구 도시인 2선도시를 제외한 중소도시를 가리킨다. 

◇ '고속질주' 외국 분유 업계, '둘째' 업고 비상 준비 
외국계 분유 기업은 올해 연초부터 시장독점과 가격 담합 등 의혹으로 중국 감독 당국과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고 있지만, 중국 소비자의 외국계 분유 선호도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외국 분유의 '인기' 상승은 중국산 분유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현에서 발생한 '가짜 저질 분유' 사건으로 전국에서 수 십 명의 아이가 숨지고, 수많은 아이의 머리가 기형적으로 커지는 대두증(大頭症)에 걸렸다. 

2008년에도 멜라닌에 오염된 분유로 인해 6명의 유아 사망한데 이어 2010년에는 성조숙증을 유발하는 분유가 유통되는 등 불량 분유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분유를 사기 위해 외국으로 직접 '원정'을 나가는 부모들도 생겨나고, 중국 시장에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외국 수입 분유와 외국 브랜드 분유의 소비는 오히려 늘고 있다. 

베이징(北京)에서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있는 한국인 강모씨(여·32세)는 "어린 아이를 가진 중국인 직장 동료 가운데 중국산 분유를 이용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대부분이 외국 브랜드의 분유를 이용한다. 나 역시 한국에서 분유를 공급받는다"라고 밝혔다.

2013년 8월 기준, 중국 조제분유 시장에서 외국 분유의 시장 점유율은 51.41%에 달한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6대 외국 브랜드 분유의 시장점유율은 듀멕스(Dumex) 16.76%, 메드존슨(Meadjohnson) 12.06%, 네슬레(Nestle) 10.58%, 애보트(Abbott) 7.29%, 와이어스(Wyeth) 4.72%이다.

이들 외국 브랜드 가운데 애보트·와이어스·메드존슨과 듀멕스는 한 통당 150위안 이상 가격대의 고급 분유와  60~120위안의 중저가 분유 상품을 고루 갖추고 있다. 네슬레는 중저가 조제 분유를 주력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이처럼 외국계 브랜드가 조제분유 시장을 입체적으로 장악하고 있어 중국산 분유 업계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중국산 분유 업계의 상품 연구개발 실력과 기술력이 외국 분유 업계에 못미치고 있어 중국 분유 시장에서 외국 분유 업계의 '활약'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下편에서 계속 )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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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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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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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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