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업 표류 불가피
[뉴스핌=양창균 기자] 총수 형제의 동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SK그룹이 벌써부터 투톱 부재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수십년간 쌓아 온 글로벌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M&A(인수합병)등 신사업에서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이 글로벌사업과 미래사업을 담당하던 두 축이 빠진 뒤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SK그룹의 글로벌 사업을 진두지휘하던 최태원 회장에 이어 신사업 등 미래사업을 책임졌던 최재원 부회장 마저 법정구속되면서 형성된 기류이다.
이중 글로벌 사업은 최 회장이 직접 발로 뛰면서 얻은 성과이다. 특히 최 회장은 전현직 국가원수와 총리 장관급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 및 유수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등이 참석하는 포럼을 중심으로 인맥을 구축하며 SK의 글로벌 영토를 확장시켰다. 최 부회장도 갈수록 약화되는 그룹의 성장동력을 대체하기 위한 사업아이템 발굴에 한창이었다.
◆SK, 글로벌사업 표류 불가피
SK그룹이 글로벌 시장으로 영토를 확장하려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 회장은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와 중남미 중동을 글로벌 거점구역으로 선정, 활발히 움직였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은 지난 연말 수펙스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글로벌 사업에 매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며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글로벌 거점구역으로 선정한 중국등 4개 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보폭을 넓힐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최 회장은 연초부터 글로벌 행보를 가속화했다. 연초 중국에서 밝힌 신년사에서도 "그룹의 포트폴리오 혁신과 글로벌 경영에 매진하면서 SK그룹의 새 도약과 국가경제 활력에 일조하는 데 힘쏟겠다"고 강조했다.
매년 평균 100일 이상을 해외에 머무르는 최 회장이 올해는 최소 180일까지 글로벌 행보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SK그룹은 "최 회장의 경우 SK본사가 각 국가별 글로벌 거점구역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올해는 글로벌 거점구역이 있는 중국과 동남아등을 잇따라 방문해 현지상황을 살필 계획이었나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다"고 귀띔했다.
최 회장의 글로벌 인맥의 산실인 포럼 참석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지난해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포럼 기조연설을 맡았던 최 회장은 올해 참석이 어렵게 됐다. 베이징 포럼은 2000년대 초반 최 회장이 아시아 각국 상호이해와 공동번영 모색을 위해 직접 제안한 세계적인 학술 포럼이다.
또 매년 초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도 참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 회장은 지난 1998년 회장직에 오른 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올해로 16년째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지난해 6월 SK그룹이 터키에 이어 콜롬비아에서도 1억달러 규모의 펀드조성에 성공한 것도 최 회장이 다보스포럼에서 쌓은 인맥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다.
◆미래 먹거리 사업도 '삐걱'
최 부회장이 직접 챙겼던 신사업등 미래사업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듯하다. 최 부회장이 지금까지 주도한 미래사업은 배터리사업(2차전지)과 LNG사업이다. 이중 LNG사업은 최 부회장이 수직계열화를 위해 상당부분 공을 들였던 분야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SK E&S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LNG사업의 밸류체인을 만들려고 했다"며 "최근까지 최 부회장은 LNG발전부터 수입에 이어 저장소와 판매까지 하나로 묶으려는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부회장의 법정구속 후 사업전개가 쉽지 않다는 게 SK그룹 내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달 27일 최 부 회장의 법정구속 소식이 나온 뒤 SK E&S가 돌연 STX에너지 인수전에 불참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1조원대의 인수금액 결정 이후에도 중요 경영상 판단에서 최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2차전지 사업도 암울하다. 지난해 9월 준공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서산 공장은 지난 2011년 5월 착공 이후 약 2500억 원이 투자된 곳으로, 최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층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실이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서산 배터리 공장 준공식에는 최 부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후 첫 대외행사로 남다른 애정을 표시했다. 심지어 그가 구속 수감됐던 지난해 초에는 옥중편지를 통해 "배터리는 SK이노베이션의 정유·석유 사업을 대체할 정도로 유망한 사업"이라며 임직원을 독려하기도 했다.
앞서 최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직접 독일 푸랑크푸르트를 방문해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탈과 합작회사 설립에 대한 협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이다. 배터리사업의 경우 판로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는 "배터리사업은 속도가 생명일 정도로 오너의 뒷받침이 없으면 속도를 낼 수 없다"며 "이제 겨우 배터리 생산라인이 가동돼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할 시점이나 걱정"이라고 답답해 했다.
이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글로벌사업과 미래사업은 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핌 Newspim] 양창균 기자 (yangc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