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축 부재...글로벌ㆍ신사업 제동
[뉴스핌=양창균 기자] SK그룹이 최태원 SK(주) 회장에 이어 최재원 부회장까지 구속되며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나마 최 회장 공백을 메웠던 최 부회장까지 법정구속되면서 SK그룹은 망연자실하는 분위기다. 끝까지 기대를 걸었던 김원홍 전 SK 해운 고문의 변론재개 역시 항소심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글로벌 사업을 주도했던 최 회장과 신사업및 미래사업을 준비했던 최 부회장까지 구속되면서 SK그룹의 경영공백도 장기화될 전망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는 27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선고공판에서 최 회장에 대해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또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던 동생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도 징역 3년 6월의 실형과 함께 법정구속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의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펀드투자금을 횡령했다는 공소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 회장 형제 사건의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하지만 최근의 법원 기류를 감안하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오너 없는 SK그룹의 경영공백 장기화이다. 최 회장 구속 뒤 전문경영인인 김창근 회장 중심의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가 운영되고 있으나 한계점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 회장이 직접 챙겼던 글로벌 사업이나 대규모 투자계획은 당분간 중단되거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최 부회장이 주도했던 신사업과 미래사업 역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형제 동반구속, 경영공백 어쩌나
최 회장은 지난 1월 31일에 열린 1심 판결에서 법정구속된 뒤 8개월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2심 재판부에 희망을 걸었던 기대감도 무너졌다. 2심 재판부에서도 1심과 같이 최 회장의 유죄를 인정,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한발 더 나가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내려진 무죄판결을 뒤엎고 징역 3년 6월의 실형과 함께 법정구속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어느 정도 조치를 취한 상태이나 경영공백이 장기화될 땐 그룹 전체적으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SK그룹은 최 회장 수감 이후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의장을 맡은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협의회는 김 의장등 최고경영자 6인의 '집단경영 체제'이다.
그렇지만 항소심 판결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SK그룹 입장에서는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최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향후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그룹경영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기위기 상황에서 오너의 부재가 그룹 전체의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무엇보다도 당장 글로벌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의 경우 불구속상태로 1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글로벌 사업은 직접 챙겼다.
실제 지난 연말 협의회 의장에 김창근 회장이 선임됐지만 글로벌 사업 만큼은 최 회장이 직접 관할키로 방향을 정했다.
SK그룹 관계자는 "SK그룹의 계열사가 추진하는 글로벌 사업이 있을 땐 최 회장이 직접 경영에 관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지금보다 더 글로벌 사업에 매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얘기였다.
최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고 있는 SK(주)나 SK이노베이션 그리고 SK하이닉스등도 비상이다.
SK그룹 관계자는"최 회장은 그룹의 글로벌사업을, 최 부회장은 신사업과 미래사업을 각각 챙기고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 판결로 그룹의 양대 축이 모두 사라져 매우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 대법원서 반전있을까
결국 최 회장 사건의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하지만 SK 입장에서는 낙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몇년 사이 사법부와 검찰에는 대기업 총수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횡령·배임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양형 기준을 마련하는 등 한층 강화된 기준을 마련한 상태이다.
양형위는 횡령·배임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기본 형량으로 징역 5~8년, 감경 사유가 있으면 징역 4~8년을 선고하도록 했다. 집행유예는 형량이 징역 3년 이하인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300억원 이상 횡령·배임 범죄는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내릴 여지를 아예 없애 버린 것이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과 최 부회장에 대해 각각 450억원대 횡령과 배임을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있다. 이를 양형기준에 적용하면 집행유예 가능성 역시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한 최 회장측 변호인이 내세웠던 김 전 고문 카드 역시 더 이상 쓸 기회는 없어 보인다. 대법원에서는 범죄를 뒷받침하는 증거에 대한 사실관계등 법리적인 부분만 결정하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양형부당을 근거로 한 상고이유에도 해당되지 않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84조 4호에서는 사형이나 무기, 10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된 중형인 경우에만 상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다툴 수 있는 것은 증거의 사실관계 인정등 법리적인 부분만 판단하게 된다"며 "그렇다고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듯 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전 고문의 증언 없이 선고가 내려져 대법원 상고심에서 심리미진 등을 이유로 파기환송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일 열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 판결에서도 일부 배임행위의 유무죄 판단과 관련해 원심 판결에 법리오해 또는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있다며 김 회장에 대한 유죄 부분과 일부 무죄 부분을 파기했다.
[뉴스핌 Newspim] 양창균 기자 (yangc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