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서린동 사옥. SK그룹 안팎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난 26일 서린동 바로 인근의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에서 넘치던 희망의 탄성은 없었다. 그렇게 반전은 없었다.
오히려 최태원 회장의 아우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마저 징역3년6개월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특히 이번 재판의 핵심인물인 김원홍 전 고문이 전날밤 급거 국내로 송환되면서 고대하던 희망이었기에, 그 기대감이 절망으로 돌아선 순간, SK 임직원들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이날 재판이 열린 서초동 서울고법 형사대법정에도 아쉬운 탄성과 침묵이 교차했다. 방척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최회장의 부인 노소영관장은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선고공판이 끝난 이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한채 한동안 자리에서 북받치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기본적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뭔가 찜찜한 대목은 여전히 남는다. 피고인 최태원회장의 변호인측은 물론 재판부에서도 인정하던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 김원홍 전 고문이 국내송환되면서 증인신문이 가능했음에도 서둘러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특히 3심의 경우 사실관계를 다투는 게 아니라 법적용에 잘못이 없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기에 '사실관계'를 좀더 들여다봐야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재판부가 '직접증거'보다는 정황에 근거해 판단을 내린게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대규모기업집단을 이끌고 있는 재계 오너들은 이번 재판부의 판단을 깊이 곱씹어봐야한다. 재판부는 "대규모 기업집단 최고 경영자가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투명한 의사결정을 무시한 채 지위를 악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할 경우 경제 질서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기업범죄에 대한 엄벌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기업경영 전반에 걸쳐 투명성을 다시한번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얘기다. 이와함께 최 회장이 이동통신 정유 해외자원 반도체 등을 선도하는 대기업 최고경영자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펀드투자 등 극히 '비본질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것은 적잖이 실망스런 대목이다.
이제 최태원회장 형제의 유무죄는 대법원 최종심에서 가려지게됐다. 8만여명에 달하는 SK임직원들은 이번 일로 심히 위축될 수 있다. 오너가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의사결정도 쉽지않을 것이다. 대기업의 한 고위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오너가 구속되는 경우) 투자결정요? 아무일도 못합니다. 당연히 직원들은 위축되죠. 애비없는 자식이 따로 없습니다."
SK그룹은 글로벌시장을 선도하는 반도체, 해외자원개발, 석유수출 계열사를 둔 한국경제의 기둥이다. SK가 흔들리면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경제의 주름살은 더 늘어날 것이다. 마음은 무겁겠지만 김창근회장이 이끄는 수펙스(SUPEX)를 중심으로 잘 추스러야, 경영공백을 막고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지 않겠는가. SK 임직원들의 건투를 빈다. / 산업부장 이규석 newspim200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