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종하고 사퇴했으니 비겁한 것"
[서울=뉴스핌] 김영은 기자 = '대기업 부장, 서울 자가, 명문대생 아들' 겉으로 보기에 성공한 삶이다. 하지만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부장은 행복하지 않다.
회사와 가정을 위해 자신의 자아를 누르고 살아온 '조직형 인간'이다. 상사의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아 하며 조직을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 지방 공장으로 좌천당한다. 조직에 충성했던 그가 조직에 버려지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김부장은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언젠가 나 자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버티는 가장의 어깨에 그 누구도 결코 돌을 던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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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부 김영은 기자 |
기자가 담당하는 모든 출입처에는 저마다의 김부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검찰을 출입하면서 검사라는 직업에서 김부장과는 다른 매력을 봤다. 조직에 속해 있지만 독립적이고, 위계질서가 엄격하지만 소신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소신의 품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검사는 조직인이면서도, 검찰권을 스스로 행사하는 단독관청임이 분명하다. 또 위계질서가 있어도 개별 검사는 자기 이름으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구조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둘러싼 논란은 그래서 더 씁쓸했다.
검사는 원칙적으로 1심 판결에 대해 7일 내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할 권한이 있다. 지휘부 판단을 받는 절차가 있지만 지시가 부당하거나 불법 소지가 있으면 담당 검사가 항소를 결정할 수 있다. 타당한 사유와 함께 개별 검사는 실질적으로 항소장 제출이 가능했지만 결국 대장동 사건 항소는 무산됐고, 검찰 수뇌부들은 사퇴했다.
한 검사 출신 인사는 "항소하고 사퇴했더라면 명분이 있었을 텐데, 굴종하고 사퇴했으니 비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사는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단독관청이지만, 독립적인 의사는 스스로 접어놓고 사퇴한 것이란 비판이다.
그는 "내부적으로 '결재'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결재는 내부 절차일 뿐, 검사와 결재와 다르게 외부적으로 한 행위에 법적 효력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런 점에서 개별 결정권자들은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기에 사퇴의 명분이 없다고 짚었다.
수사팀이 지휘부와의 충돌 상황에서 의견을 관철시킨 사례가 없던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 정무수석 측근이 개입한 의혹을 수사하던 당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기획재정부 실장 소환을 막는 대검 지휘부와 충돌했다. 소환 통보를 취소하라는 지시에 수사팀이 "직을 걸겠다"며 버틴 결과, 검찰은 당사자를 소환하고 진술을 받아 정무수석을 기소하는 데 성공했다.
검사는 김부장이 아니다. 김부장이어서도 안 된다. 조직의 논리에 자신의 소신을 접어두는 순간, 검사는 단독관청이 아니라 그저 조직의 부품이 된다.
김부장이 백상무에게 울분을 토해내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빤스 빨아가면서 뒤치다꺼리한 후배 헌신짝처럼 버리고…그럼 형은 좋은 리더야?". 물론 항소 포기 과정의 전말은 반드시 밝혀야 할 사안으로 남았지만, 검사들도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된다면 더욱 씁쓸해질 것 같다.
"상부 지시 따르고 조직 논리에 맞춰가며 한 게 검사 일이 아니었나요?" 검사가 김부장이 되는 순간, 그들이 지켜야 할 소신의 품격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조직의 논리만 남는다.
조직의 논리를 따르는 '김부장 검사'를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yek10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