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펀드 사태처럼 증권사에 선지급 요구
회생법원 판결 11월로 연기...난감한 증권업계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매출채권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에 투자한 개인들이 판매 증권사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들이 공개적으로 원금 선지급을 요구하고 나서며 최대 판매처인 하나증권, 신영증권을 비롯해 연관된 증권사들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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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서울 홈플러스 가양점 인근 신호등에 붉은색 불이 켜져 있다. leehs@newspim.com |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서울 여의도 하나증권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피해 최소화를 위해 증권사가 선지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지난 8월 말 금융감독원에 집단 민원을 제출하며 최소 40% 이상 선지급을 요구한 데 이어, 본사 앞 시위로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40% 선지급이 어렵다면 무이자 대출 방식으로라도 유동성을 지원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문제가 된 홈플러스 전단채는 홈플러스가 물품을 외상으로 결제할 때 발생하는 카드매입채권을 기초로 발행된 단기채권이다. 신영증권이 발행을 주관했고, 하나증권 등 증권사가 이를 인수해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총 발행 규모는 4000억원으로 이 중 개인 판매분은 3000억원 수준이다. 하나증권이 약 2200억~2500억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최대 판매처로 지목됐다. 신영증권은 465억원가량을 판매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카드대금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자 투자금도 묶였다.
투자자들은 애초 홈플러스와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향해 책임을 물었으나, 사태 해결이 지연되면서 판매사로 화살을 돌렸다. 불완전판매 가능성과 함께, 고객 보호 의무를 들어 증권사가 선지급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라임·디스커버리·옵티머스 사태 등에서 금융사가 투자금의 30~80%를 선지급한 전례도 근거로 제시됐다. 2020년 라임 사태 당시 은행권은 환매 연기 펀드에 대해 원금의 절반가량을 먼저 지급했고, 디스커버리 사태에서도 기업은행·하나은행 등이 30~50%를 선지급했다.
옵티머스 사태 때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최대 70%까지 선지급에 나서며 고객 유동성 지원에 나선 바 있다. 법적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도 정치권 압박과 감독당국 권고, 신뢰 회복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금융사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다만 증권업계 전반에서는 선지급 여부에 선을 긋고 있다.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금융당국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의적으로 투자금을 지급할 경우 주주 배임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부터 증권사를 통한 홈플러스 전단채 판매 현황 조사에 착수했지만, 현재는 홈플러스와 대주주 MBK파트너스의 사기성 여부 수사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회생법원 역시 당초 9월께 결론을 낼 것으로 전망됐던 회생 심리를 11월로 연기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당국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신중한 태도가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다만 국정감사가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증권사를 압박할 경우, 과거 사모펀드 사태 때처럼 법적 판단 전 선지급이 재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onew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