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참패, 그러나 여론은 지지
성과도 있었지만, 당내 시선은 달랐다
국민 여론보다 당내 권력 논리가 우위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취임 11개월 만에 자민당 총재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자민당 총재 사임은 곧 일본 총리직 사임을 의미한다.
이시바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소수 여당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 출발했다.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국정을 운영했지만,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하면서 당내에서는 이시바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는 계속 집권에 대한 뜻을 거듭 밝혔고, 여론도 그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여론의 지지에도 결국 자민당 내부의 퇴진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서 이시바 정권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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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 사임 발표 기자회견 후 단상을 내려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선거 참패, 그러나 여론은 지지
변곡점은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였다. 자민당은 참패하며 정국 주도권을 잃었고, 지도력 공백을 이유로 이시바 책임론이 급부상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흐름이다. 8월 발표된 주요 여론조사에서 모두 내각 지지율이 상승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는 전회 조사보다 17%포인트 급등한 39%를 기록했고, 교도통신 조사에서는 35.4%로 전월보다 5.5%포인트 올랐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4%포인트 상승했다.
이시바 총리의 사임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서도 "사임할 필요 없다"는 응답이 절반에 달했다. "사임해야 한다"는 응답은 7월 54%에서 8월 42%로 줄었다.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정권을 이어가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이는 일본 정치에서 드문 현상이다. 선거 패배가 곧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안정적 국정 운영을 맡길 인물은 이시바뿐"이라는 국민의 선택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들이 나왔다.
◆ 성과도 있었지만, 당내 시선은 달랐다
이시바 총리는 집권 기간 동안 내세울 만한 성과도 있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조기에 타결해 일본 수출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였고, 최저임금을 전국 평균으로 사상 최대 폭 인상해 "물가 상승을 상회하는 임금 인상"이라는 목표를 구체화했다. 또한 야당과 협력해 연금 개혁 법안을 처리했고, 방재청 신설과 쌀 증산 정책 같은 '이시바 색깔' 정책도 추진했다.
하지만 당내 평가는 달랐다. 정책의 상당 부분이 야당 요구를 반영한 결과였기에, 자민·공명 양당 내부에서는 "우리의 업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참의원 선거 패배로 당내 주류는 "정권 유지 자체가 어렵다"며 총리 퇴진을 기정사실화했다.
결국 이시바 정권의 한계는 "성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성과를 정치적으로 포장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국민과 당내 권력층의 평가 기준이 완전히 엇갈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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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민당 총재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국민 여론보다 당내 권력 논리가 우위
9월 들어 퇴진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자민당 최대 원로인 아소 다로 최고 고문은 "정권 안정을 위해 새로운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이시바 총리의 퇴진을 압박했고,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도 공개적으로 퇴진을 요구했다.
자민당은 8일 당 소속 의원 295명과 광역지자체 지부 대표 47명 등 총 342명을 대상으로 조기 총재 선거 실시 여부를 물을 예정이었으며, 과반에 가까운 160여 명이 조기 총재 선거에 찬성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바 총리는 결국 "당내 분열을 막기 위해 물러난다"며 자진 사퇴를 선택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다음 세대에 바통을 넘기고 싶다"고 밝혔다.
이는 정권 연장보다는 당의 결속을 우선시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 여론보다 당내 권력 논리가 우위를 차지한 셈이다.
지지율 반등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물러난 것은, 일본 정당 정치에서 '당내 논리'가 '국민 여론'보다 강하게 작동함을 보여준다. 의원내각제의 본질적 특징이지만, 동시에 일본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흡수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