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김 센 중국과 유사…호찌민 개발 더뎌
中 실패 교훈 삼아 동남아 진출 앞장서길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하노이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테이프 커팅식에 앞서 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다짐은 이미 현실이 된 것 같았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1층에선 인증사진을 남기려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복도에선 결혼 스냅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연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에게 이미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단순 쇼핑공간이 아닌 방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랜드마크'가 된 모습이었다.
노연경 산업부 기자 |
잠실 '롯데타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롯데그룹 입장에선 엄청난 모험이었다. 백화점, 대형마트, 아쿠아리움, 호텔 등 여러 시설을 결합한 복합 쇼핑단지다 보니 참여하는 계열사 수도, 투자 금액도 늘었다.
빠른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베트남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투자할 때 그 나라의 GDP를 가장 많이 고려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에서 쇼핑몰 하나에 한화로 약 8600억원 규모를 투자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롯데가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과감한 투자를 진행한 것이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보복으로 인해 완전히 철수한 중국 시장 대신 베트남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롯데의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까지 전면에 등장하며 베트남 시장이 곧 롯데의 미래라는 것을 암시했다.
다만 베트남 시장도 중국 시장과 비슷한 잠재적 리스크가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현지 합작법인을 세운 2016년 11월 이후 공식 개관까지 약 7년이 걸렸다. 현지에서 만난 한 주재원은 "베트남 정부는 빈그룹과 같은 자국 기업이 진행하는 사업은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반면, 외국기업에는 인허가도 쉽게 내주지 않는다"며 "외국기업의 사업 진행 속도가 더딘 이유"라고 말했다.
비슷한 이유로 호찌민에 롯데그룹이 개발 중인 투티엠 에코스마트 시티 사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듯 보인다. 롯데그룹은 베트남의 경제도시인 호찌민에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보다 더 많은 1조2000억원가량의 사업비를 투자해 복합 쇼핑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작년 9월 신동빈 회장이 참석한 착공식 이후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최근 투티엠 개발 사업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의 대주주를 롯데쇼핑에서 롯데건설로 바꾸려고 한 시도도 베트남 정부가 승인을 해주지 않아 가로막혔다. 정부의 입김에 사업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 중국과 비슷하다.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국에 의존했다가 역풍을 맞은 건 롯데뿐만이 아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과 같은 화장품 대기업과 국내 면세점들도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쓴 맛을 봤다. 이후 롯데를 포함한 아모레퍼시픽, 롯데면세점 등은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유통 맏형'인 롯데가 8조원 이상의 수업료를 내고 얻은 중국 사업에서의 교훈을 밑바탕 삼아 동남아 시장에서는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한국 기업 진출의 선봉에 서주길 기대해 본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