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헐리우드 48시간'. 실제 헐리우드 스타들이 레드카펫 밟기 48시간 전부터 애용한다고 알려져 한 때 광풍을 일으킨 다이어트 음료다. 말이 다이어트 음료지, 사실상 이틀 간 곡기를 끊어야 한다. 해당 제품을 물과 섞어 하루에 4번 씩 마셔주면 된다. 그 외 음료나 음식은 취식 불가다.
몇 해 전, 이 음료를 구입해 48시간 단식에 도전한 적이 있다. 첫째 날 저녁부터 고비가 찾아오더니 이틀 차에 머리가 어지럽고 집중력이 저하됐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치솟았고 평소처럼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기력이 없어 누워있고만 싶었다. 일상을 내려놔야만 할 것 같았다. '곡기를 끊는다는 건' 그랬다.
단 이틀간의 경험만으로 '단식 투쟁'하는 모든 이들을 존경하게 됐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억제하고, 모든 일상을 포기하면서까지 단식을 자행하는 이들에겐 분명 본능과 일상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한(恨)이든, 자신의 기본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든, 이 사회 대의를 실현키 위한 정치적 투쟁이든 말이다. 나를 버려가며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결기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박서영 정치부 기자 |
국회 앞 단식 농성장이 설치됐다. 어느 날 갑자기 기자의 일터엔 이재명 대표를 보기 위한 지지층들이 줄을 지었다. 이 대표의 단식을 응원하는 이들과 힐난하기 위한 이들이 뒤엉켜 고성을 높였다. 일주일이 좀 지났을까. 수척해진 모습의 이 대표는 이내 몸져누웠다. 이 대표의 단식은 연일 도마 위에 올랐다. 여당 지도부는 '출퇴근 단식쇼', '웰빙 단식, '관종DNA'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모 국민의힘 의원은 단식 텐트 부근서 수산물 시식회를 연다며 조롱글을 올렸다.
물론 단식의 희화화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2016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의 해임안 처리에 반발하며 대표실 안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을 때도 초유의 '비공개 단식'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2018년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을 당시 일각에선 '혼수성태'라는 조롱이 이어졌다. 정치인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때마다 그 가치와 결기를 의심하는 이들은 너무도 쉽게 단식을 희화화했다.
사실 기자도 이 대표의 단식에 내포된 대의나 명분을 명확히 알진 못한다. 이 대표가 곡기를 끊어가며 얻고자 하는 게 사법리스크로부터의 자기방어인지, 진정 윤석열 정권에 대한 항변과 규탄인지 알지 못한다. 출퇴근길 마주하는 단식 텐트를 보며 매일 같이 고민하지만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때문에 이 대표 단식을 향한 의심의 눈길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제1야당 대표가 민생 현안을 뒤로 하고 드러누워 버린 것에 대한 분노 또한 이해한다.
다만 자신의 본능과 일상을 내려놓겠다는 어떤 이의 마지막 승부수 앞에 일말의 존중은 필요해 보인다. 사람의 건강이 직결된 상황에서 그 안위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마음은 정치를 떠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이재명의 단식이 어떤 가치와 명분을 지니고 있는지 직접 만나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날세운 비판에도 힘이 실린다.
이재명을 상대 편 대표라고만 볼 게 아니라 협력해야 할 국회의원 동료이자 곡기를 끊어낸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여야 평행선이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과거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식이 역사에 남을 민주화의 불꽃이 됐듯, 정치적 단식이 그만큼 무겁고 엄중한 결기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민들이 기억해줄 협치는, 어쩌면 국민의힘 당대표실에서 몇 걸음 가면 닿는 단식 텐트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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