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골 노동자 이해한 사람은 억만장자 트럼프"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아이러니"
[뉴스핌=김성수 기자]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취임준비위에 따르면 트럼프 취임연설의 핵심 주제는 '국민 통합'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선거기간 동안 여성·인종·종교 문제에 대해 차별적 언행을 이어갔던 트럼프가 '국민 통합'을 논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미국 사회 분열의 단면 보여주는 트럼프
<사진=AP/뉴시스> |
또한 트럼프처럼 국론분열의 대명사로 각인된 인물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사회의 분열이 극심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미국 맨하탄 인스티튜트에서 발간하는 잡지 '씨티저널'은 트럼프의 주요 지지 기반이 시골 또는 농촌 노동층이라며, 미국 내 도시와 시골 지역 간의 단절이 트럼프에 대한 표심으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미시간을 비롯해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오하이오·인디애나·아이오와주에서 승리를 거머쥐어 백악관 주인이 됐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쇠락과 함께 중산층이 몰락한 이 곳은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북부 공업지역)'라고 불린다.
러스트벨트가 미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생산 비중은 1950년 45%에서 2000년 27%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고용 비중도 43%에서 27%로 떨어졌다. 미시간주는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9년 12월에 실업률이 13.9%로 치솟았다가 지난해 10월 4.7%로 떨어졌지만 과거의 해고 트라우마는 여전하다.
<화씨 9·11> 등 다큐멘터리 영화로 유명한 미국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작년 7월에 이미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것도 이 대목에서다.
무어 감독은 당시 허핑턴포스트에 올린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미시간 경선 때 포드 자동차가 멕시코로 공장을 옮긴다면 멕시코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입되는 차량에 35% 관세를 때리겠다고 위협했다"며 "이것은 미시간의 노동 계급 사람들에겐 달콤한 음악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트럼프는 미국의 경제성장과 세계화에 따른 혜택에서 소외되고, 민주·공화 양당의 관심에서도 배제된 시골 노동자 계층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 "뉴욕 부동산 재벌이 시골 노동자 마음 도닥여 뭉클"
이들은 도시인에 비해 연령층이 높고 세계화·다양성 등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데, 트럼프가 이들 노동자의 가치관을 효과적으로 대변함으로써 강력한 지지를 끌어냈다는 것.
뉴욕타임스(NYT)는 "시골 주민들은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느린 삶을 산다는 이유로 자주 조롱당하고 뒷전으로 떠밀리며 인종이나 성적 취향의 다양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시골 노동자들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는 인종, 성적 지향, 성별에 의한 차별 등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덕분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인도인 최고경영자(CEO)들, 커밍아웃한 게이인 애플 CEO 등이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실리콘밸리 <사진=블룸버그통신> |
또 실리콘밸리는 세계화, 자유무역, 이민 등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중국인, 인도인, 한국인, 유럽인 등 전세계 최고급 인재를 빨아들인 결과 전세계 기술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실리콘밸리가 얻은 과실이 미국 시골 노동자들에게도 공평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시절 창출됐던 미국 내 일자리는 제조업이나 광업 등 블루칼라보다는 정보기술(IT)이나 서비스 산업 등 화이트칼라 부분에 주로 집중됐다.
저학력 노동자들의 자리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노동자들의 급여나 근속연수, 근무여건 등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훨씬 악화되기도 했다.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세로 돌아섰으나 시골 노동자들은 그 혜택에서 소외된 것이다.
NYT는 트럼프가 '엘리트'라고 불리는 도시민에 대한 시골의 불만·분노를 활용해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유럽 포퓰리스트 정당들과 유사한 전략을 구사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뉴욕 부동산 재벌'이라는 트럼프의 출신이 역설적으로 큰 장점이 되기도 했다.
트럼프처럼 뉴욕에 사는 억만장자가 오히려 소외된 시골 노동자 계층의 심금을 울리는 '반전 매력'을 발휘해 그에 대한 지지가 더 공고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씨티저널은 "미국 시골 노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얘기를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했던 사람은 트럼프 뿐이었다"며 "그는 그에 맞게 메시지를 전하고 (막말) 연설 스타일을 구사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아이러니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