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한기진 기자] 이런 '노사 대화'가 있다. 기존 노사합의서의 수정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노조는, 사측의 제안서를 처음에는 열어보지도 않았다가 반송한다. 제안서의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데, 그러자 사측은 “제안서를 읽어 봐달라”며 사정한다.
하나금융지주와 자회사 외환은행의 노조 사이에서 일이다. 발단은 법원이 양측에 ‘대화’를 요구하면서다. 노조는 지난달 20일 대화단 회의를 하고 하나금융 측에 2.17 합의서 수정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하나금융은 “조직과 직원의 상생을 위해 양보안”이라며 노조에 내밀었는데, 노조는 지난달 30일 “사측의 제시안은 2.17 합의서의 기본정신(5년 독립경영 보장)을 무시한 것”이라며 제안서를 반송했다.
2.17 합의서는 하나금융이 2012년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노조와 맺은 합의사항이다. 핵심은 오는 2017년 2월까지 외환은행의 독립경영 보장으로 사측은 그 기간을 앞당기는 대신, 직원들의 고용과 급여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노조는 독립경영을 건드리지 말라며 사측의 제안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화란 서로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놓고 양보와 타협을 끌어내는 과정인데, 노조의 이런 모습은 대화 ‘진정성’을 의심받기 충분하다. 독립경영 논의를 뺀 합의서 수정은 노조의 일방적 ‘요구서’이다.
지난달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통합중단 가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심의에서 김용대 수석부장판사가 “(노사 가운데) 대화를 열심히 누가 하는지 심의결정에 참작하겠다”고 말한 것을, 노조는 곱씹어 봐야 한다.
누구를 위한 독립경영 고집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겨우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독립경영을 고수하느라 외환은행 직원들의 고용과 은행 경영을 걱정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최근 우리은행 노조는 성동조선에 자금지원 반대를 위해 뛰었다. 노조는 “직원들이 은행 실적증대를 위해 야근과 휴일근무까지 하는데, 은행의 건전성 악화가 분명한 일에는 나서지 말라”며 “은행의 해외신용등급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런 타 은행 노조의 모습에 외환은행 직원들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혹시 2.17 합의서에 서명했던 전임 노조위원장이 쓴 책 제목처럼 ‘대화하지 마라, 절대로!’를 떠올릴까.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