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조현미 기자]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 고(故) 유일한 박사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기아와 질병으로 신음하는 민족을 위해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을 창립했다.
유한양행의 마크는 버드나무다. 유일한 박사가 고 서재필 박사에게 받은 것으로 알려진 버드나무는 ‘무수한 역경 속에도 꺾이지 않고 싱싱하고 푸르게 성장했으며 항상 국민보건 향상에 앞장서 온 모범기업’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김신권 한독약품 명예회장은 지난 1954년 한독약품을 창업했다. 김 명예회장은 196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독일 제약사인 훽스트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제약 선진화에 나섰다. 수입품과 동일한 품질의 의약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며 외화 절약에도 크게 기여했다.
▲유한양행 창업자 고(故) 유일한 박사(왼쪽), 한독약품 창업자 김신권 명예회장 |
그간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의약품을 만들어오며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꼽던 양사는 최근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신약 개발보다는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완제 의약품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제약회사가 아니라 ‘다국적사 도매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독·유한, 다국적사 의약품 경쟁적 도입
김신권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은 지난 9월 사노피(구 훽스트)와 합작 지분을 정리했다. 사노피 제품의 국내 유통 역할도 접었다.
아버지 시절에 맺었던 50여년에 가까운 합작 관계를 청산하며 홀로서기를 선언한 것이다.
독립 경영을 선언한지 불과 4개월 후 한독약품은 이스라엘계 제약사인 테바와 합작회사 ‘한독테바’ 설립을 발표했다.
테바는 1300여종의 복제약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복제약 업체다.
한독테바는 테바가 생산하는 복제약의 국내 유통을 전담한다.
합작사 내 한독약품의 역할은 테바 제품의 영업과 홍보, 마케팅, 대관업무 등이다.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은 합작회사 설립에 대해 “고품질의 복제약품을 적정가격에 공급해 국내 제약시장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독테바에 대한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독약품이 3개월 만에 ‘다국적사 보따리상’으로 돌아갔다는 비난이 인다.
보따리상 취급 제품이 사노피에서 테바 의약품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독약품 김영진 회장(왼쪽), 유한양행 김윤섭 사장 |
◆‘다국적사 도매상’ 자처…“비난”
유한양행도 이 같은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유한양행의 전문경영인인 김윤섭 사장은 올해에만 미국계 제약사인 길리어드가 만든 간염 치료제 ‘비리어드’, 독일계 제사 베링거인겔하임의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를 비롯해 7개 초대형 의약품을 들여왔다.
다국적사 제품을 도입해 거둔 신규 매출은 전체 매출액의 8% 내외인 600억~650억원 수준에 달한다. 내년에는 도입 품목 부문에서 올해의 두 배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문가들을 전망한다.
초대형 도입 품목으로 전체 매출도 증가했다. 이에 반해 판관비가 늘면서 영업이익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졌다.
업계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국내 대표 제약사들의 도매상 전락에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약가 인하로 인한 실적 부진을 만회하려는 움직임은 이해하지만 다국적사 제품 도입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 봄에 단행된 약가 인하로 많은 제약사의 실적이 크게 떨어졌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부 제약사는 다국적사 제품 도입에만 열을 올리며 제약사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뉴스핌 Newspim] 조현미 기자 (hmch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