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민주화 등 사회적 이슈에 멍든 대기업
[뉴스핌=배군득 기자] 올해 재계 이슈는 정치권에서 시작한 ‘경제민주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은 가뜩이나 경기가 불안한 시점에서 경제민주화가 거론되자 곤혹스러움을 넘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대형 수주 계약이나 제품 생산에도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기업가 정신이 움츠러든데다 대외경영여건 악화가 겹치면서 경영실적은 뒷걸음질 치고 있는 형국이다.
기업들의 이같은 행보가 이어지면서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은 무작정 대기업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 대기업이 대형 M&A나 시장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부분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
실제 한화 김승연 회장이나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 최근 배임 혐의 등으로 재계 총수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지만, 이들이 전문경영인이 하지 못하는 '도전적 사업 추진'으로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한 부분도 어느 정도 인정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무작정 규제로 설 곳 없는 대기업
올해 상반기 이슈 중 하나인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시대적 착오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대형마트의 등장은 맞벌이 증가, 자동차 AS화 확산, 도시규모 확대 등 소비자의 어쩔 수 없는 변화에 따른 것”이라며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는 것은 시대적 착오”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로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특정 이해집단 이익을 보호하고 오히려 보호해야 할 다수의 소비자와 대중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견해인 셈이다.
소비자가 재래시장을 선택하든, 대형마트를 선택하든 경제민주화는 그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논의되는 경제민주화는 대형마트를 규제하고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 활동과 영역을 규제하는 것 역시 경제민주화의 모순이라고 조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조 교수는 “경제민주화는 소비자 선택 결과를 존중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비자 선택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결국 경제민주화는 절차보다는 특정한 결과를 지향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 광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자 선호는 정부의 제공이 획일적으로 이뤄지면 결코 효율적인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며 “앞으로 경제민주화가 적극 추진되면 정치에 의한 시장개입, 정부에 의한 시장 개입이 늘어나 소비자 선택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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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지난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경제민주화 법안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경제민주화 법안은 사회 양극화의 모든 책임을 대기업의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붙히는 입법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사진=뉴시스> |
◆ 반기업 정서에 무너지는 기업가 정신
비단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만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로 촉발된 반기업 정서는 대기업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모든 시장에서 대기업이 사업에 뛰어들면 상권 침해로 결부한다.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저가의 물량을 공급해도 이를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이 공헌한 공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반기업 정서가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기업가 정신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그룹 총수들의 잇따른 비리가 도마위에 오르면서 전체적인 사업 구도도 위축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어려운 시점에 투자도 늘리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등 돌파구를 찾기위해 안간힘을 써도 사회적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대기업 창업주들이 국가와 경제 부흥을 모토로 내세우며 한국형 기업가 정신을 추구해왔던 전통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졌다. 기업 스스로가 사회와 단절하며 사회가 조용해지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한국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지금까지 근간이 된 대기업의 공헌을 무시한 부분도 상당수다. 지금의 한국경제는 경제민주화 등 '대기업 때기기'가 만연하면서 멍들어 쇠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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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근간이 돼 왔던 대기업이 흔들리면서 기업가 정신도 수면위로 가라앉고 있다. 일부에서는 전문경영인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그룹 총수가 해왔다며 경제민주화 등 대기업 불신이 오히려 한국경제의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진=뉴시스> |
대기업 총수들의 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사회는 냉랭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법원도 이전까지 한국경제에 영향을 고려해 관대하게 적용했던 판결을 거둬들였다.
한화 김승연 회장이 대표적 예이다. 기업 입장에서 부실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투입한 자금이 배임혐의로 분류되는 현실이다.
재계 총수들과 관계자들은 한국경제의 근간이 된 기업가 정신이 최근 한국경제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고 토로한다.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려해도 사회가 이를 불신하니 달리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국경제가 성장한 데는 그룹들의 도전 정신과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대기업이 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으로만 비춰진다”며 “기업가 정신을 살리더라도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 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전용덕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무분별한 재벌 개혁은 경제적 반향만 초래할 뿐”이라며 “우리가 대기업 또는 재벌의 해체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우리 모두가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끝>
[뉴스핌 Newspim] 배군득 기자 (lob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