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위기, '산업 유산'에서 '문화 심장'을 캐내다
의성 성냥공장에서 시작된 재생의 감각
전혜연 문화 기획자(문화유목민 대표)
지역의 쇠락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다. 사람의 발걸음이 줄고, 공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사라지고, 학교 운동장에 남은 정적이 점점 길어질 때 비로소 지역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사라져간다.
한국의 많은 지방 도시들이 지금 이 지방소멸이라는 경계에 서 있다. 이 단어가 통계 속 숫자를 넘어 냉정한 현실의 풍경이 되어가는 지금, 쇠퇴라는 흐름 속에서도 지역은 여전히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꺼내어 들을 수 있다면, 지역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 바로 예술의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은 잊혀진 지역의 스토리를 다시 끄집어내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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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혜연 문화유목민 대표. |
일례로 경북 의성군에는 우리나라 마지막 성냥공장인 의성성냥공장이 있었다. 1954년부터 2012년까지 운영된 이곳은 산업화 시대의 기억과 흔적, 그리고 한 세대의 삶의 터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문을 닫고 난 뒤, 공장은 빠르게 침묵의 몸으로 변해갔다. 기계는 먼지 속으로 가라앉았으며, 거대한 철골 구조에는 바람만 드나들었다. 폐허는 언제나 사회의 해부학적 단면이었다. 사람들의 흔적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시간이 퇴적되고, 산업의 기억이 미세한 층위로 남았다.
그런 공간에 예술이 들어서는 순간, 이야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의성군은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2027년까지 이곳을 예술과 지역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시킨다.
이 재생 과정 속에서 공장의 역사성과 예술적 가능성을 조명하기 위해 김진우 작가 기획전 '진화의 불씨'가 지난 18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의성성냥공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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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우 작가 기획전 '진화의 불씨'가 열리는 경북 의성군 성냥 공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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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우 작가 기획전 '진화의 불씨'가 열리는 경북 의성 폐성냥공장. [문화유목민 제공] |
김진우 작가는 멈춰버린 기계의 몸체를 다시 조립했고, 부서진 철골과 나무, 오래된 도구들을 새로운 질서 속에 넣었다. 공장 기계를 활용한 설치 작품을 비롯해 대형 조형물, 미디어 아트, 작가 사유와 기록이 담긴 드로잉 100여 점이 전시되었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구조물이 떨릴 때, 공장은 마치 깊게 잠들어 있던 신체가 다시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움직임은 단순한 조형적 효과가 아니었다. 작업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 "이곳은 아직 살아 있다"라는 감각이 퍼져나갔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공간을 "권력과 지식이 교차하는 신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의성 성냥공장의 철골에는 노동의 역사가 남아 있었고, 기계의 톱니에는 산업화의 리듬이 잠들어 있었다.
이 신체는 오랫동안 마비되어 있었지만, 예술은 그 마비된 신경계에 다시 자극을 건넸다. 작가는 공장과 함께 버려진 도구들을 아카이브로 시각화하여 물질에 남은 기억의 잔재를 끌어올렸고, 그것을 호흡으로 바꾸어 공간 전체를 감각의 장치로 만들었다. 관람객은 철제 구조의 떨림을 소리로 들었고, 잊힌 시간을 몸으로 느꼈다. 공장은 더 이상 산업의 폐허가 아니라, 감정이 다시 흐르는 장소로 변모했다.
전시 개막식이 열린 날, 갑작스러운 추위 때문이었는지 의성차향기다도회가 관람객에게 따뜻한 차를 나누어 주었다. 오래된 공장 안에 사람들이 모였고, 서로 말을 건네고, 차를 마시며 웃었다.
지역재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거대한 개발 계획이 아니라, 스토리가 깃든 공간에서 일어나는 작은 관계의 회복에서부터였다. 폐허였던 공간에 다시 사람이 들어오고, 이야기와 감정이 흐르는 순간, 지역은 조금씩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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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우 작가 기획전 '진화의 불씨'가 열리는 경북 의성 폐성냥공장. [문화유목민 제공] |
김주수 군수는 "의성성냥공장은 산업화 상징이자 지역민 삶의 터전이었던 공간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산업유산이 예술로 되살아나는 감동을 전하고 싶다"며, "공장이 단순한 과거 흔적을 넘어 미래 세대와 예술이 공존하는 문화 중심지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시는 공장의 원형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적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역 주민에게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예술 행사가 아니다. 산업유산을 어떻게 지역의 미래 자원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적 제안이었다. 지방소멸 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약해지고, 감정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삶의 리듬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지역은 문화 정책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도시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방향이 필요하다.
오래된 산업시설은 지역의 '기억의 신체'다. 그 신체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스토리와 감각을 불어넣는 산업유산 기반의 감각적 회복 정책이 지역재생의 핵심이다. 또한, 예술가는 공간과 오래된 사물들을 다시 읽어내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 감각이 지역의 숨겨진 스토리를 발견하고 지역을 다시 움직이게 하므로, 예술가의 현장 기반 창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문화 재생이 성공하려면 공간이 다시 '삶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주민이 공존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행사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므로, 주민 참여를 전제로 하는 문화 정책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이 사람들을 모으고, 교육 프로그램이 관계를 만들고, 방문이 지역 경제를 지탱할 때 비로소 스토리가 있는 지속 가능한 재생이 가능하므로, 관광·교육·창작을 묶는 복합 운영 모델이 중요하다.
성냥은 불을 만드는 도구다. 하지만 지역을 살리는 것은 불처럼 한번 번쩍이는 개발이 아니라, 천천히 이어지는 호흡이다. 불은 순간을 밝히지만, 호흡은 시간을 살린다. 예술은 바로 그 호흡을 가능하게 한다. 의성 성냥공장은 한 시대의 산업이 남긴 신체였지만, 지금은 감정과 기억, 관계가 다시 흐르는 '스토리가 있는 살아 있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 변화는 인구 소멸 시대에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예술은 잊힌 지역에 스토리를 입히고,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며, 도시를 다시 숨 쉬게 한다. 그 호흡이 이어지는 곳에서 지방은 다시 살아난다. 의성 성냥공장에서 시작된 이 작은 떨림이 지방의 미래를 위한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전혜연은 여성인권·미디어아트·도시교류를 통해 예술을 사회변화의 도구로 만드는 행동하는 큐레이터다. 2014년 글렌데일 '위안부의 날 특별전'을 시작으로 소녀상 지키기 국제 연대전을 이끌었고, 2017년부터 글렌데일시 공식 행사로 승격, 8개국 100여 명 작가가 참여했다. 국내에선 《여성인권이야기: 행진》을 성북, 부산, 보은, 고성, 포항, 인천, 김포, 파주 등 지방정부와 함께 이어가고 있다. 2018 평창올림픽 미디어아트 기획을 계기로 공공 미디어아트의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열었고, 수원문화축전·국립극장 등에서 지역 역사와 장소성을 담은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김포-글렌데일 교류전은 '경계'와 '자유'를 주제로 일상 공간에 공공미술을 설치했으며, 2024년에는 김포의 지역 의제를 다룬 '다양성'이란 전시로 네 지역을 아우르는 28명 작가 참여한 대규모 미디어아트전도 기획했다. 최근에는 사이버불링을 여성인권 의제로 삼아 국회 논의·전시·온라인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예술이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 대안과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 귀주사범대 동아시아미디어센터 책임연구원, 비영리 단체 문화유목민 대표, 전시 기획사 SR Comm 대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