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추구해온 건전한 재정정책 '시험대'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검토 요청 하셨으면 검토 해야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라면 등 가공식품 부가세율 한시 인하 공약과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심성 공약이 남발한 것에 대한 속앓이가 보이는 대목이다.
이정아 경제부 기자 |
기재부는 고위관계자는 같은 날 최 부총리가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도 말했다고 전했다.
관가에서는 최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한정된 재정 상황 속에서 양당이 발표한 공약을 두고 총선 이후 기재부가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앞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은 총선 공약으로 수십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재정 정책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가공식품 등 생활필수품(출산·육아용품) 부가가치세 한시적 인하,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기준 2억 상향, 저출산대응특별회계 신설, 5세부터 무상교육 등을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0~18세까지 매월 10만원씩 자립펀드 지원, 8~17세 1인당 월 20만원 아동수당 카드 지급, 근로소득 세액공제 공제 기준 및 한도 상향, 자녀 예체능 교육비 세액공제 등을 연이어 제시했다.
저출산 공약으로만 여당은 연간 3조원, 야당은 2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한동훈 위원장이 공약한 부가가치세 한시 인하와 간이과세 기준 상향에도 수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의 민생회복지원금의 경우 약 13조원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다만 윤석열 정부 출범 초부터 기재부는 건전재정(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GDP의 3% 이내로 관리) 기조를 꾸준히 견지했다. 그러나 올해 국세 감면액이 역대 최고치인 8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건전재정이 흔들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통해 발표한 ▲금투세 폐지 ▲부가세 간이과세 상향 ▲기업 밸류업 세제지원 등 잇따라 발표되는 감세 정책도 문제다.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갈 돈만 쌓이는 상황이다. 나라 곳간지기 역할을 하는 기재부가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다.
나라살림을 담당하는 기재부가 용산실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 부총리가 현 정부 초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출신인 만큼 대통령실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재부는 '2024 경제정책방향'에 담기지 않았던 금투세 폐지를 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폐지 결정을 내렸다. 출산지원금 전면 비과세 결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일 취임 100일을 지난 최 부총리가 총선이 끝나고 날아드는 총선 청구서를 제대로 선별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다시 말해 세수가 바닥난 상황에서 양당의 공약은 물론 대통령이 지시한 감세정책을 어떻게 수습할 지가 관건이다. 총선 이후로는 최 부총리 그리고 기재부가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총선 승리자가 국민의힘이 되든 더불어민주당이 되든 기재부는 수십조원의 청구서를 처리해야 한다. 이달부터 각 부처에서 예산안 편성을 위한 자리싸움을 시작했고 총선 이후에는 윤 대통령 주재의 재정전략회의, 세제개편안, 예산안 등 현안이 산적하다. 최 부총리가 유비무환의 태도를 지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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