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정문서 발견된 목잘린 소년…메시지엔 "게임을 시작하지"
경악할 만한 범죄자 '사카키바라 세이토', 정체는 14세 중학생
일본 소년법 기준 연령 논란을 일으키다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1997년 5월 27일 고베(神戶)시 스마(須磨)구 도모가오카(友が丘)중학교 정문 바로 앞. 검은 비닐봉지 안에 어린 소년의 절단된 머리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인근 초등학교 6학년생 하세 준(土師淳). 소년의 입에는 범인의 도전장이 물려 있었다.
"자 게임을 시작하지."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살인마 '아즈마 신이치로(東真一郎)'의 아동살해극은 그렇게 막을 올렸다.
사카키바라 세이토가 보낸 도전장. 가운데 있는 도전장이 처음에 보낸 것이고, 왼쪽이 언론사에 보낸 두번째 도전장이다. 맨 오른쪽은 도전장을 보낼 때 쓴 봉투로 한자와 함께 음독이 달려있다.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
피해 아동의 참혹한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하세 준이나 그의 가족에겐 타인에게 특별히 원한을 살 만한 일도 없었기에, 인근 지역 학부모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살인자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실제로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단독 외출을 금지하거나, 등·하교에 동행하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추리소설에서 볼 법한 범인의 도전장도 후속 범죄를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불안은 지나친 것도 아니었다.
다음은 피해자 하세 군의 입에 물려 있던 도전장의 내용이다.
자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 우둔한 경찰 제군들 / 나를 멈춰보시지 / 나는 살인이 유쾌해서 견딜 수가 없어 / 사람의 죽음이 너무 보고싶어서 견딜 수 없어 / 더러운 야채들에게는 죽음의 제재를 / 다년 간 쌓아온 원한에 유혈의 심판을 / SHOOLL KILLER / 학교살사(学校殺死)의 술·도깨비·장미(酒鬼薔薇)
◆ 범인, 자의식 과잉에 꼬리를 잡히다
일본 수사 당국은 인근 전과자를 중심으로 범인 추적에 나섰다. 범행의 잔학성이나 고의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오타(SCHOOL의 오타 SHOOLL) 등을 종합했을 때 범인은 정신파탄자일 거란 견해가 힘을 얻었다.
특히 도전장 마지막에 쓰여진 '술(酒)도깨비(鬼)장미(薔薇)'라는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의견이 분분했다. 언론사들은 이 엽기적인 사건의 내용과 화제성에 주목해 매일같이 사건 추이를 보도했다.
그러던 6월 초 고베(神戸)신문사에 범인이 보낸 또 다른 도전장이 날라왔다. 새로운 도전장의 봉투에는 "내 이름은 사카키바라 세이토(酒鬼薔薇聖斗), 밤하늘을 볼 때 생각하면 좋겠지"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장문의 편지 내용을 추려보자면, 그는 자신의 범행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복수라는 점을 밝혔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의무교육에 대한 분노로 범행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또 자신은 살인이 즐겁기 때문에 앞으로 범행을 계속하겠다는 점도 암시하고 있었다.
범인은 도전장에 상당한 자의식을 보였는데 일례로 "TV에서 아나운서가 내 이름의 한자를 '오니바라'라고 잘못 읽는 것을 보았다. 사람의 이름을 잘못 읽는 것은 우롱하는 행위이며, 표지에 적혀 있는 문자(酒鬼薔薇聖斗)는 암호나 수수께끼가 아닌 거짓 없는 내 본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자의식 과잉은 거꾸로 꼬리가 밝히는 빌미가 됐다. 경찰 측은 두 번째 도전장이 날라오기 전까지 범인을 '오타쿠 기질이 있는 30대'로 추정했는데, 도전장의 작문 수준을 보고 중학생을 범인으로 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됐던 도모가오카 중학교 학생의 작문 중 하나인 '징역 13년'이 도전장과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작문의 주인공은 14세 소년 아즈마 신이치로였다.
심증을 굳힌 경찰은 같은 해 6월 28일 임의동행 형태로 아즈마를 체포했다. 아즈마는 처음엔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이 도전장을 보여주며 "필적이 일치해서 네가 쓴 거라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말하자 눈물을 흘리며 자백했다.
아즈마 신이치로의 학창시절 [사진=주간포스트] |
◆ "사람의 죽음을 이해하려면 한 번 죽여봐야겠다"
사실 아즈마의 범행은 하세 준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의 첫 범행은 이보다 몇 개월 전인 1997년 2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베시 길거리에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두 명이 망치로 머리를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뒤에서 접근해 머리를 노리고 망치로 가격한 사건이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이 "범인이 코트를 입고 학생가방을 메고 있었다"고 진술했고, 이에 따라 피해자 부모는 도모가오카 중학교에 학생 사진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거부했다. 피해자 부모가 경찰을 통해 한 번 더 요청했지만 그때도 학교 측은 거부했다.
가해자는 아즈마였다. 아즈마는 후에 이 사건을 언급하며 여학생 두 명을 망치로 때린 순간 양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며 "이 선을 넘은 다음에는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같은 해 3월 16일, 아즈마는 길을 걷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 한 명에게 접근했다. "주변에 손을 씻을 곳이 없을까?"라고 물어 안내를 받은 그는 손을 씻은 뒤 망치로 여학생의 머리를 내려쳤다. 피해자는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일주일 뒤 사망했다.
아즈마는 곧바로 다른 장소로 이동해 10분 뒤엔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의 복부를 나이프로 찔렀다. 다행히 칼에 찔린 피해자는 죽지 않았다.
아즈마는 후에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범행에 대해 "사람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람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쉽게 죽일 수 있는 급소를 찾기 위해 대상은 반격할 수 없는 인간으로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5월 24일,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적당한 살인 대상을 물색하던 중 자기 동생의 친구인 하세 준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하세 준은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신체장애아였다. 하세 준은 아즈마의 동생과 친해 종종 집에 놀러왔기 때문에, 아즈마는 준이 거북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즈마는 준에게 "같이 거북이 보러 가자"며 인적 없는 풀숲으로 유인한 뒤 교살했다. 이후 철물점에서 줄톱과 자물쇠를 훔쳐 풀숲에 있던 안테나 탑의 자물쇠를 파손하고 사체를 숨겼다.
◆ "내가 죽인 시체는 곧 '내 작품'"
아즈마는 체포된 뒤 진술에서 당시 살인에 대해 "내가 사람을 죽여서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만족감보다 더 멋졌다"고 말했다.
아즈마는 살해 다음날 검은 비닐봉투와 칼을 챙겨 살해현장에 와 나이프로 눈을 찌르고 입을 찢은 뒤, 눈꺼풀을 잘라냈다. 목을 절단할 때는 봉투를 이용해 피를 한 모금 마셨다고도 밝혔다. 이후 아즈마는 만족할 때까지 절단된 머리를 쳐다봤다고 했다.
경찰이 "시체의 눈이나 얼굴을 보고도 목을 자르는데 거부감이 없었나"라고 묻자, 그는 "별로 없었다"며 "내가 죽인 시체니까 말하자면 '내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살해 당일인 24일 하세 준 가족의 실종신고를 받아 수사를 진행했고 26일엔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즈마는 시체를 숨겨둔 장소로 가 머리를 꺼내 5분 정도 관찰했다. 이후 인근 연못에 범행에 쓴 쇠톱을 버리고 집에 머리를 가지고 돌아와 물로 씻었다.
27일 오전 1시 배낭에 피해자의 머리를 넣은 아즈마는 자전거로 도모가오카 중학교에 갔다. 정문 담 위에 머리를 올려두려 했지만 자꾸 떨어지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던 그는 정문 중앙에 머리를 두고 도전장을 입에 물렸다.
◆ 미성년자에겐 죄를 물을 수 없는가…분노하는 사회
아즈마는 구속된 후 7월 25일 고베지방재판소에 송치돼 10월 17일 고베가정재판소에 넘겨졌다. 누가봐도 의심의 여지없이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했지만 일본의 소년법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 일본의 형사미성년자 연령은 만 16세였지만 아즈마는 15세였다.
일본에선 소년법 적용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실제로 이후 연령 기준이 내려가게 됐다. 하지만 아즈마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법원은 아즈마에게 살인죄를 묻진 못했지만 아즈마가 고어 호러무비에 빠져있었다는 점, 작은 동물들을 자주 죽였고, 이상한 언동을 보였다는 점으로 정신 치료를 받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의료소년원에 수감된 아즈마는 중간에 1년 간 일반 소년원으로 이감됐을 때를 제외하면 약 8년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리고 2005년 그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다. 변호사를 통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헌화하고 싶다고 했지만 유가족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2016년 주간지 '주간문춘'에 의해 공개된 성인이 된 아즈마의 모습 [사진=주간문춘] |
현재 아즈마와 그의 가족들은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가 소년원 안에서 용접술을 배웠기 때문에 용접공으로 살고 있다는 설이 우세하다.
아즈마의 부모는 아들의 범죄에 자살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평생 죄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소년A, 이 아이를 낳고'라는 책을 출판해 관련 수익금을 모두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아즈마 역시 2015년 자신의 범행 내용을 담은 수기 '절가(絶歌)'를 출판했다.
서문에선 유가족에 대한 사죄를 밝혔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수기를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거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게다가 이 책은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화제에 올랐고, 아즈마는 한화 1억원 가량의 인세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일본에선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로 이득보는 일을 제한하는 '샘의 아들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2016년 2읠 일본의 문예춘추(文藝春秋)가 출판하는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은 아즈마의 근황을 공개했다. 기사에 실린 아즈마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이에 일본에선 범죄자가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불안과 분노가 일기도 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