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사우디에 각종 사업 추진 중…베조스 '이중적 위치' 처해
실리콘밸리의 '큰 손' 사우디 빈 살만…"기로에 선 IT 기업"
[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쇼기의 암살 의혹 여파에 세계 언론인과 재계 인사들이 사우디에서 열리는 투자 콘퍼런스의 불참을 선언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아직까지 침묵을 지켜 의아함을 자아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워싱턴포스트(WP)의 사주인 제프 베조스이다.
특히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한 뒤 행방이 묘연해진 카쇼기가 현재 베조스가 사주로 있는 WP에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의 글을 기고해온 칼럼니스트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프 베조스의 침묵은 더 많은 의문을 들게 한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사진=로이터 뉴스핌] |
미국의 경제전문매체 CNBC는 아마존이 사우디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까닭에 베조스가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또한, 사우디가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에 투자를 단행하는 등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들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부연했다.
WP에서도 카쇼기의 실종과 관련해 사우디 왕실에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는 가운데 제프 베조스는 아직까지 이번 사태와 관련한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의 많은 재계 인사들이 카쇼기 암살 의혹에 분노의 목소리를 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JP 모간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과 우버의 다라 코스로샤히, 구글 클라우드의 다이앤 그린이 이달 사우디에서 열리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콘퍼런스에 불참을 통보해 간접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로스쿨의 인권 센터에 근무하는 페림 맥마혼은 CNBC에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놓는 가운데 WP의 사주가 명확한 입장이 담긴 성명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롭다"고 꼬집었다.
제프 베조스는 현재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베조스는 지난 2013년에 WP를 2억5000만달러에 인수한 이래 신문의 편집 방향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조스는 종종 WP 기자들이 얽힌 사건에는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016년에는 간첩 협의로 이란 감옥에 18개월 구금됐던 기자 제이슨 레자이언이 풀려나자, 기자와 전용 제트기로 동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랬던 베조스가 카쇼기 사태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점은 의문스럽다. CNBC는 베조스가 많은 미국의 기업인과 마찬가지로 사우디와 사업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부인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사우디에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계약 체결에 힘써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AWS는 사우디와 인접한 국가인 바레인에 중동 사업부를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같은 계획의 일환으로 지난 5월 이래 AWS는 바레인에서 활동하는 "AWS 사우디아라비아 공공정책 헤드"를 뽑는다는 공고를 올리기도 했다. 구인 공고에서는 지원자의 역할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클라우드 플랫폼 제공의 선두자로 아마존을 더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명시해놨다.
클라우드 사업 뿐만 아니라 아마존은 지난해 중동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수크닷컴(Souq.com)을 5억8000만달러에도 인수해,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디에 사무실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즉, CNBC는 제프 베조사가 언론사의 사주 그리고 아마존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이중적인 위치"에 처해 있으며, 이에 그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실리콘밸리의 '큰 손' 사우디 빈 살만…"기로에 선 IT 기업"
사우디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온 기업은 아마존 뿐만이 아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포함한 수 많은 기술 기업들이 사우디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는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베조스를 비롯해 애플의 CEO인 팀 쿡, 알파벳(구글 모회사)의 회장인 세르게이 브린과도 회동했다.
애플은 사우디에 첫 소매점 개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올 초 사우디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인 애저를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MS는 자사의 블로그를 통해 사우디의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의 규모가 290억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하며, 해당 기술이 '비전 2030' 달성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사우디 정부 기관에 의해 추진됐다고 밝혔다. '비전 2030'은 사우디를 세계적인 투자 허브로 재탄생시키 위해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사우디 최대의 국책 사업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 투자에 관심을 보여온 빈 살만 왕세자는 스타트업과 글로벌 기업 등 여러 기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사우디 국부펀드 공공투자펀드(PIF)는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에 4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바 있다. 여기에 빈 살만 왕세자는 최근 비슷한 규모의 금액을 2차 비전 펀드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애플과 퀄컴도 비전펀드에 출자에 참여했으며, 소프트뱅크는 우버와 위워크, 도어대시 등 기업 가치가 높은 여러 기업에 투자를 결정해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소프트뱅크의 마르셀로 클라우레 최고집행책임자(COO)는 16일 카쇼기 사태와 관련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클라우레는 "사우디와 연관된 대부분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주시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평상시와 같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의 펀드 역시 지속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CNBC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실리콘밸리의 최대 자금줄인 사우디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카쇼기 사태로 인해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로 맥마혼 교수는 CNBC에 "실리콘 밸리가 사우디 정부의 본질을 고려해보고, 인권의 관점에서 (사우디 정부의 본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좋은 시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우디와 꼭 사업을 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았지만, 미국 정부와 일부 대형 기업들이 33세의 젊은 왕세자가 주도한 새롭게 성장하는 시장의 매력에 이끌려 손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사건과 별개로 최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는 사우디로부터 직접적인 투자를 받은 기술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와 강현실 관련 기업인 매직 립, 차량 공유 기업인 우버와 리프트가 포함됐다.
saewkim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