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사우디 아라비아의 저명한 언론인 자말 카쇼기의 실종을 둘러싸고 흉흉한 소식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파장이 금융시장으로 번졌다.
사우디의 국채 디폴트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신용부도스왑(CDS)이 폭등한 것.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재정 적자에 빠진 사우디의 해외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원유 의존도를 낮춰 미래 성장 동력을 다각화한다는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아울러 사우디를 핵심 자금원으로 진행했던 일본 소프트뱅크의 2차 비전 펀드 출범이 불발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실리콘밸리 역시 돈줄 마비에 대한 우려에 홍역을 치르는 등 카쇼기 사건의 파장이 금융권에 확산됐다.
터키에서 실종된 사우디아라비아 유력 언론인 자말 카쇼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1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카쇼기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 뒤 사우디 채권의 디폴트 리스크 헤지 비용이 30% 치솟았다.
그가 극심한 고문을 받은 뒤 토막 살해됐고, 암살 용의자 가운데 사우디 왕세자의 경호원이 포함됐다는 보도가 나온 데 따른 시장 반응이다.
카쇼기의 실종 전 1000만달러의 사우디 채권에 대한 디폴트 헤지 비용은 7만달러를 밑돌았지만 최근 9만달러에 근접했다.
지난 2016년 5월 이후 사우디가 달러화 표시 채권 및 신디케이트 론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총 680억달러로 파악됐다.
이전까지 전무했던 달러 자금 조달이 불과 2년 사이 급증한 것.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이는 신흥국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에 해당한다.
원유 의존도를 축소, 새로운 성장 엔진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자금 조달이 절실한 상황에 언론인카쇼기 실종이 뜻밖의 복병으로 등장한 셈이다.
채권시장의 투자 심리가 급랭한 것은 물론이고 다음주 사우디에서 개최되는 기업 경영자 및 자문관 컨퍼런스에서 서방 기업들이 연이어 불참을 선언하고 있다.
사우디 측은 카쇼기의 실종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회의적인 표정이다. 두바이 소재 에미리트 NBD 애셋 매니지먼트의 파드 키카니 이사는 WSJ과 인터뷰에서 “카쇼기 사건은 투자 리스크를 크게 높이는 변수”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국부펀드 퍼플릭 인베스트먼트 펀드(PIF)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은행권 여신을 통해110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한 데 이어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는 기업공개(IPO)가 사실상 좌절된 가운데 500억달러의 자금 조달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카쇼기에 관한 터키 측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른바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신뢰가 추락, 국제 금융시장의 돈줄이 막힐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왕가의 부조리와 함께 정치 및 지정학적 리스크와 국부펀드의 불투명한 운용, 여기에 최근 2년 사이 급속하게 불어난 부채까지 악재가 한꺼번에 반영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금융협회의 가비스 이라디안 이코노미스트는 WSJ과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사우디의 정치적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실제 리스크가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판단하는 것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실리콘밸리와 일본의 소프트뱅크도 카쇼기 사건의 후폭풍에 강한 경계감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의 자금줄이 막히면서 투자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사우디 측의 자금이 마비될 가능성뿐 아니라 불미스러운 일에 얽힌 국가로부터 투자를 받는 데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도 적잖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앞서 920억달러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에 4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바 있다.
이미 위워크를 포함한 신생 기업 투자가 진행, 사우디가 실리콘밸리의 최대 자금줄로 부상한 만큼 자금을 기다리는 기업들은 곤혹스럽다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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