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만 되면 어디든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재취업...창업 성공하기는 하늘에서 별따기
[뉴스핌=김나래 기자] 진한 감색 정장에 하얀 셔츠, 넥타이를 매고 33년간 A은행에서 근무했던 박성원(58·가명) 씨. 그는 정년퇴직 후 세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 오전에 계약직으로 은행에서 일한 뒤 오후에 SGI서울보증보험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주말엔 농부로 변신한다. 16년째 겸업한 농사다.
박씨는 은행에서 주로 기업 대출을 담당했다. 1981년 상고를 졸업하고 2014년까지 근무한 그는 은행업에 애착이 남다르다. 은행을 다니면서 조금씩 사둔 토지를 강제처분 당할까 걱정돼 시작한 농사가 어느덧 노년의 일이 됐다. 스스로 키운 농작물 중 일부를 주요 거래처에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그가 일을 하는 이유는 돈보다도 명함 때문이다. 또 4대 보험이 포함된 직업이면 괜찮다는 것이 그의 선택 기준이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인생 2모작을 위해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재취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B은행에 다녔던 김준호(58·가명) 씨도 박씨와 비슷하게 은행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의 연수입은 1억원에 달한다. 기업여신 업무 경력을 살려 서울보증보험에서 능력을 발휘 중이다. 그가 하는 일은 기업들에 '이행보증보험'을 파는 것이다. 이행보증보험은 공사를 맡기고 자재구입비 등 선급금을 지급한 기업이 시공업체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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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은행 출신 박상원(58·가명) 씨는 부동산중개업자로 변신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등 제 2의 인생을 설계해왔다. 하루에 찾는 손님이 많지 않지만 부동산을 소개하면서 후배 은행원을 연결시켜 대출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해준다. 여기에 재무상담도 하다 보니 입소문이 퍼졌다.
D은행에 30년간 근무한 조동원(56·가명) 씨는 제조업체에 사무직으로 재취업했다. 가끔 직원들 눈치도 살피고 스트레스가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70세까지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조씨도 재취업을 위해서는 10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휴대폰대리점·음식점 창업,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
은행에서 은퇴한 후 재취업에 성공하기는 만만치 않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퇴직자 중 재취업한 비율이 20~30%도 안 된다는 게 현직 은행원들의 전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퇴직자들은 창업에 도전한다. 그렇지만 창업에 성공하는 건 더 어렵다.
휴대폰대리점이나 치킨집을 창업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많다. 음식점 창업도 꼼꼼히 오랜 시간 준비 없이 도전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E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했던 현상원(60·가명) 씨는 은퇴 후 경기도 분당에 고깃집을 차렸다.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덜컥 계약했지만 고깃집 운영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워져 1년 만에 가게를 팔았다. 겉보기에는 사람이 북적거렸지만 실상은 이윤이 별로 없어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둔 여유자금만 축내고 말았다.
은행 업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고 소자본 대부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케이스도 있다. F은행에 다닌 김민수(56·가명) 씨는 은행에서 나온 뒤 친구와 동업으로 소자본 대출사업을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P2P 대출이다. 대부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운영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 장점이 있다. 소액을 빌려주고 연 23~24%의 이자를 받았다. 불법 대출업자보다 금리가 낮아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돈을 떼이는 경우가 잇따르면서 사업에서 손을 뗐다.
조급함과 사전 준비 부족 등이 실패 이유로 꼽힌다. 박성원 씨는 "자존심 때문에 퇴직 후 재취업을 망설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며 "(은행)업무가 방어적이다 보니 퇴직 후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나래 기자 (ticktock03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