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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공감’에서는 현해탄을 건넌 해녀들이 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아본다. <사진=‘다큐공감’ 캡처> |
[뉴스핌=박지원 기자] KBS 1TV ‘다큐 공감’은 28일 오후 8시 ‘현해탄을 건넌 해녀들’ 편을 방송한다.
일본 치바 현의 한적한 어촌, 호타. 호타의 한 요양원에 제주 출신 해녀 홍석랑(91) 할머니가 고향을 그리며 누워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다른 이의 보살핌 없이는 거동조차 힘든 홍석랑 씨는 스무살에 일본에 왔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홍석랑 씨처럼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제주 해녀들은 일본으로 나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큐 공감’에서는 현해탄을 건넌 해녀들이 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아본다.
오늘도 물질에 여념 없는 해녀, 권영애(89) 씨는 언제나 넉넉한 바다는 이 마을 최고령 해녀 권 씨에게도 풍성한 수확물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녀가 어릴 적 기억하는 바다는 달랐다. 아무리 물질을 해도 캐올 게 없어 배를 곯기 일쑤였고 결국 어머니와 함께 대마도로 출가 물질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잠수 어선들이 잠식했던 제주 바다. 할 수 없이 해녀들은 고향 바다를 떠나 돈을 벌려 먼 일본으로 물질을 나갔는데, 이것을 ‘출가 물질’이라 부른다.
해녀들은 일본에서 주로 감태와 우뭇가사리를 채취했는데, 당시 전쟁에 열 올리던 일본에 군수용 물자 원료인 감태와 우뭇가사리는 무척 유용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출가 물질의 이유는 또 있었다. 전시동원이란 명분하에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한 일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군사훈련을 시켜 최전선으로 내몰 준비를 했다. 강산옥(92) 씨는 그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고향산천 떠나 대마도로 향했다.
결국 일본의 핍박과 수탈을 참지 못한 해녀들은 항일 시위에 나섰다. 여자의 몸이지만 해녀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던 건 바로 ‘항일 해녀가’ 덕분이었다.
그렇게 일본으로 떠난 이들 상당수는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 등으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았다. 이제는 거의 다 사라진 일제강점기 출가 해녀들이지만, 늙고 병든 몸으로 그저 망향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그들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큐 공감’ 제작진은 “출가 해녀들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시대의 거친 파도를 헤치며 차별과 편견을 이겨내고 살아온 그들의 아픈 역사”라고 강조한다.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내나라도 돌아오지 못한 해녀들의 아픈 사연은 28일 오후 8시 ‘다큐 공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스핌 Newspim] 박지원 기자 (pj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