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은행 부실 위기 고조…구제안 '대립'
[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이탈리아 은행권 부실 우려를 증폭시키면서 유럽의 진짜 위기뇌관을 건드렸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브렉시트 충격을 뒤로 하고 상승 분위기를 타던 유럽 금융시장은 4일 이탈리아 은행 부실 해결책을 둘러싼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유럽연합(EU)의 대립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자국 은행권 구제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렌치 총리가 EU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십억 유로 규모의 정부 돈을 쓰겠다고 밝히면서 은행 문제가 재조명됐고 이날 이탈리아 은행주는 4% 가까이 밀렸다. 유럽 은행주들도 동반 약세를 보이며 1.6% 하락했고 전반적인 유럽 증시 약세장을 견인했다.
유럽증시 은행지수 1년 추이 <출처=마켓워치> |
◆이탈리아 은행권 부실 배경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렉시트 표결로 가뜩이나 부실부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탈리아 은행 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이는 새로운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중은 17%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미국보다도 10배 가까이 많은 수준이다. 당시 미국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중은 5%에 불과했었다.
사실 이탈리아 은행 위기설은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나치게 많은 지점 및 직원 고용 등 방만 경영으로 완충자본이 거의 남지 않은데다, 투자은행이나 자산운용과 같은 수수료 창출 활동이 아닌 단순 대출(plain-vanilla lending)에 기대왔던 이탈리아 은행권이 저금리 환경에서 타격을 입기 더 쉽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탈리아 정부의 갖은 노력이 실패하고 EU가 규제 강화를 통해 자금줄을 더욱 옥죄면서 부실 문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이탈리아 은행권 사정은 더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브렉시트로 성장세가 후퇴하면 은행 부실대출은 더 확대되고 은행 수익이 악화되면서 은행들의 완충자본을 좀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비즈니스 로비단체 컨핀더스트리아는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올해 이탈리아 성장률 전망치를 1.4%에서 0.8%로, 내년 전망은 1.3%에서 0.6%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게다가 이탈리아 은행 주가 급락으로 예금자들의 자금 유출 속도가 가속화하는 점도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 전염위기 어느 정도?
<출처=블룸버그> |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브렉시트로 악화된 이탈리아 은행권 상황이 잠재적으로는 유럽 전체 은행권을 흔들 수도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 재무부 심의관을 지냈던 로렌조 코도그노는 “브렉시트가 이탈리아 은행권 위기로 이어질 수 있고 브렉시트 불안이 즉각 해결되지 않으면 유로존 전체가 붕괴할 리스크도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국민투표가 실시된 6월23일까지 유럽 은행지수는 이미 연초 대비 17% 하락한 상태였지만 브렉시트 결론 도출 이후 낙폭은 30%로 확대된 점도 유럽 은행권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WSJ는 그 중에서도 유로존 주변국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포르투갈과 스페인 은행 여건이 특히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 구제안 이견, 브렉시트 넘어설 ‘위협’
이탈리아 은행 구제 방법을 두고 이탈리아 정부와 EU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모아서 관리하며 국가가 지급을 보증해주는 ‘배드뱅크’ 설립 등 직접 구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어 은행권 안정을 위해 최대 400억유로의 긴급 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EU가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EU 측은 납세자가 아닌 채권자가 구제자금을 대야 한다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브렉시트를 핑계로 위기 심각성을 부각시켜 EU 규정을 어기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유럽은행감독청(EBA)은 오는 7월 말까지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완충 자본이 부족한 은행들을 가려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이탈리아 은행 압박수위는 높아질 전망이다.
더오스트레일리안 신문은 이탈리아 은행권 구제안을 둘러싼 이탈리아와 EU간의 의견 대립이 EU의 은행연합을 흔들고 나아가 유럽 안정을 해칠 브렉시트보다도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