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긴축' vs 선진국 '완화'…신흥국은 '유출주의보'
[뉴스핌=노종빈 기자] 지난 한 해 미국 달러화는 유로화나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한국 원화, 브라질 헤알화 등 거의 모든 글로벌 주요국 통화에 대해 큰 폭의 강세를 나타냈다.
1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 지수(dollar index)는 지난해 13% 상승했다. 9년래 최대 상승폭이다.
◆ 달러화, 전세계 통화대비 강세 지속할 듯
달러화가 전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1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 이른바 '닷컴버블'로 불렸던 뉴욕증시 기술주 급등시기를 전후한 달러 강세 이후 처음이다.
현재 글로벌 헤지펀드 등 대부분의 투자 자금은 미국 내부의 자산, 정확히는 달러화로 평가되는 자산을 사고 싶어한다. 달러화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통화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올해 안에 현재 사실상 제로 수준인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중반부터 이어진 달러화 강세 흐름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달러화 지수는 올해도 4%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료: 인베스팅닷컴] |
반면 미국이 아닌 여타 선진국 통화는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 등은 지속적으로 자금공급을 확대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로화와 일본엔화는 달러대비 12~13%대 약세를 보였고 올해도 추가 약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 몇 년간 나타났던 이른바 '달러화 캐리(carry·조달비용이 싼 통화로 자금을 빌려 투자하는 기법)' 투자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회귀할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 자본시장에서는 자금이 유입됐던 현상이 반전돼 일부 국가에서는 급속도의 자금 유출이 나타날 수 있다.
여기에 미국 경제 회복세가 더 탄력을 받게 될 경우 이 같은 추세는 더 빠르게 강화될 전망이다.
키트 유크스 소시에테제네랄 통화전략가는 "해외의 리스크 높은 자산에 유입됐던 자금들이 집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자본에 굶주린 신흥국들의 경제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유가하락·달러강세 지속시 통화전쟁 가속
올해 북유럽 산유국 노르웨이 크라운화는 연초대비 19% 떨어지며 최악의 통화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노르웨이는 GDP의 22%를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유가 하락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큰 나라다. 이로 인해 비교적 재정 상황이 튼튼했던 노르웨이의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2%보다 낮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처럼 유가 하락과 미국 달러 강세가 더 강화될수록 환율 급변에 따라 경제 상황이 급격히 변동하는 글로벌 통화전쟁이 촉발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 루블화는 서방의 경제제재와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지난해에만 46% 떨어졌다. 또 펀더멘털이 취약한 국가들인 아르헨티나 페소와 콜롬비아 페소는 각각 23%, 19% 하락했다. 반면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등 원유 수입국의 경우 자국 화폐 평가절하폭이 4~6%대에 그치면서 비교적 선방했다.
국제금융시장 투자자들의 관심이 특히 올해 국제유가와 환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시기와 폭에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후 올해 1분기 중 경제 지표들의 회복 추세를 보고 난 뒤 그 이후부터 금리인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혀 일단 시장을 안심시켰다.
연준의 금리인상 시기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대부분 오는 9월을 예상했다. 반면 얀 해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예상을 밑돌 경우 연준이 인상을 2016년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 신흥국 자본유출, 펀더멘털따라 차별화
미국이 금리인상 등을 통해 긴축정책을 지속하더라도 당분간 유럽과 일본은 여전히 완화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의 관점에서는 신흥국 재정위기에 따른 디폴트 발생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특정 국가에서 개별 기업의 디폴트 발생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인한 글로벌 펀더멘탈 개선 지연, 그리고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의 리스크 요인에 따른 재정 디폴트를 우려하기보다는 개별 기업의 재무적 건전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 신흥국의 주요 기업에서 디폴트가 발생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최진호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금융권 리스크가 비금융권 또는 개별 기업의 리스크로 이전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러시아와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의 경우 비은행권 차입금 비중이 높아 최근 한달간 통화가치가 달러화 대비 절하되는 패턴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일단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와 여파에 따라 신흥국 가운데서도 경제 펀더멘털에 따른 차별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998년 금융위기 이후 신흥시장에선 금융부문(Banking sector)보다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미비한 비은행사부문(Non-banking private sector) 차입금 증가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경우 최근 은행부문보다 공공부문(Public sector) 차입금이 더 빨리 증가했다는 점에서 경제의 기초 펀더멘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