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마음에 좌석과 기차 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조치원역을 지나고 기차 문에 의지해 바람을 쐬는데 아내가 달려왔다. 좌석으로 가자고 자꾸 몸을 끌기에 순간 나도 모르게, 놔, 뛰어내릴거야, 했다.
우리는 자리로 돌아가 진주에 도착하기까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처가에 들어서자마자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가 불안해하며 뒤따랐다. 들어가라고 해도 배를 움켜쥐며 계속 뒤따라 왔다. 조금 빨리 걸었다. 아내도 빨리 따라왔다. 더 빨리 뛰듯이 걸었다. 아내가 숨이 차도록 걸어와 내 잠바를 잡았다.
“이거 놔. 죽어버릴 거야”
버럭 소리 지르며, 아내가 꽉 쥐고 있던 잠바를 벗어던지고 차도로 뛰어들었다. 요란한 클랙슨 소리. 욱욱거리며 아내가 달려오는 소리. 차들이 급정거하는 소리.....
아내와 말다툼 할 때마다 듣던 이야기다. 그때마다 사과했고, 내 상황을 좀 이해해달라고 했던. 그러나,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용은 같아도, 강도가 달랐다.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자장, 전혀 다른 감동 속에서 내 가슴을 울리며 아름답고 슬프게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진석 씨는 부성애도 없는 사람이에요. 일주일 만에 찾아와 겨우 한다는 말이, 막 태어난 애를 발로 툭 차며 뭐 이래, 했다면서요?”
이 대목에선 화가 치밀었다. 부성애가 없다는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인정할 수 없는 말이다. 이렇게 몸부림치며 사는 것도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애를 발로 툭 건드리며 ‘뭐 이래’라고 한 것은 나로선 순전히 애정표현일 뿐이었다. 내가 자라온 문화권에선 나는 그런 식의 표현에 길들여져 있고, 나 역시 누구에겐가 그런 투의 관심을 받을 때 뭉클한 친밀감을 받는다.
그런데 그것이 서운함의 정도를 넘고, 무시 받는 느낌을 넘어, 부성애도 없는 인격 이하로 격하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완강했다. 부성애조차 없는 인간쓰레기. 그렇게 단죄하고 있었다. 쭈그러진 깡통이나 우그러진 양철조각,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그것은 내 이미지, 그녀 속에 들어있는 내 이미지였다. 소름이 쫘악 돌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실추했을까. 미라는 숙과 더불어 아내의 절친한 친구라 나하고도 여러 번 식사도 하고 웃고 지내는 사이다.
아이들과 내가 즐겁게 노는 광경도 수차례 본 사람이다. 그런데 입술에 힘을 주어가며, “부성애도 없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을....그간에 쌓인 좋은 관계들이 일시에 폐기 처분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바닥이 안 보이는 나락. 절망감.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얻어맞는 충격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저토록 극단적인 부정의 이미지로 나자신이 고착된 것은 어쨌든 내 아내로부터 연유되었을 것이며, 내 아내의 마음속에도 저 유사한 이미지가 박혀있으리란 생각에 가슴이 베여나가는 것 같았다.
미라의 검고 큰 두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얼마나 아팠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지나치게 고통스러우면, 고착된 이미지에라도 의지하고 싶어지는 게 본능일지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이미지를 일부러 고착시켜 그 왜곡의 힘으로라도 자신을 지탱하려 한다. 내가 장롱에 머리를 박았던 것도, 어렸을 적 옆집 아저씨가 집 안의 수저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우그러뜨리고 부러뜨린 것도 다 그런 것일 것이다.
아내 역시, 그 지경까지.....미라에게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미라는 지금 내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성애조차 없는 인간이 아내에겐 어떠했겠냐고. 부성애조차 없는 짐승같은 인간에게 당한 현주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냐고. 사랑하는 남편을 짐승으로까지 몰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렇게라도 해야만 겨우 숨 쉬며 살아갈 수 있었던, 아주 예민하고 섬세한 여자의 우그러지고 찌그러진 마음속을 너처럼 둔한 놈이 들여다볼 수 있겠냐고....
그러한 진실의 심연을 향한 말을, 그녀는 내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라를 만나기 전 이럴 줄 알고 손수건을 사두었는데 그걸로 자꾸 눈물을 닦아내야 했다. 더 말을 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