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미국, 日 엔저 용인 '中國 견제 포석'
[뉴스핌=노종빈 기자] 2013년 신년벽두에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환(換)의 전쟁은 우리 경제를 급격히 위축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어지러운 환율의 변동속에서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이끌어가는 주요 기업들의 매출이 대부분 내수가 아닌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같은 엔화절하 압력은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도 크게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엔달러 중기 97엔까지 상승 가능성
한 환율전문가는 "단기적으로 달러당 90엔대 부근까지 상승한 뒤 약간 조정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주초반 일본은행(BOJ)의 정책발표가 단기 매도시점으로 작용한 셈"이라고 24일 말했다.
전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3.90원 상승한 1066.20원에 마감했다. 또한 이날 아시아 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조정을 이어가면서 88.20엔선까지 하락한 뒤 소폭상승, 88.30엔선에 마감했다.
지난 21일 뉴스핌의 향후 3개월 엔달러 환율 긴급 예측컨센서스 조사결과 달러당 92.60엔으로 전망됐다. 3개월 후 예측 저점과 고점은 각각 90엔, 95엔 수준이었다. 6개월 후의 예측컨센서스는 93.50엔으로 6개월 후 예측 저점과 고점은 각각 91.5엔, 97엔이었다.
현재 환율시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단기와 중장기적 관점으로 나뉘고 있다. 즉 엔화 약세가 단기적으로는 달러당 90엔 부근에서 강력한 저항대를 만날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중장기적으로는 이보다 한단계 더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관측이다.
또한 지난해 말 일본 아베 정권의 엔저이니셔티브 천명으로 시작된 이같은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그 배경에 미국의 용인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여기에 최근 환율전쟁과 관련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 해서 일본의 국가 경쟁력 회복을 눈감아주고 있다"는 내용의 음모론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앞서 지난 1980년대 미국은 대놓고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막았다. 일본의 급격하고 과도한 성장이 자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깊은 이면에는 일본이 미국의 글로벌 경제 패권을 잠식해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음모론'속에 담긴 진실은
실제로 일본 아베 정권의 엔저 정책 기조에 대해 유럽 각국과 러시아는 물론 스칸디나비아의 중앙은행 정책 당국자들까지도 전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미국 당국은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정도여서 주목된다.
무엇이 미국을 이처럼 정반대로 움직이게 했을까. 그동안의 엔고 흐름이 비정상적이긴 했으나, 사실상 미국은 20여년 만에 일본의 수출경쟁력 회복을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음모론자들에 따르면 그 이유를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라 풀이하고 있다.
지난 1985년 프라자 합의 당시에는 미국의 강력한 적수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엔화절상으로 통해 일본 수출의 급격한 성장의 힘줄을 끊어버렸던 것이다. 그로인해 일본 기업들은 내수로 전향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과 기업간 시장주도권 교체가 일어났고, 한국기업들도 수혜를 본 것이 사실이다.
◆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제 미국이 두려워하는 상대는 일본이 아닌 중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의 급성장을 제어하기 위해서 미국이 일본과 암암리에 손을 잡고 엔화의 약세 움직임을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 일부 음모론자들의 시각이다.
미국이 일본의 엔고를 유도함으로써 얻은 직접적인 이익은 크지 않다. 오히려 일본차와 경쟁하는 일부 업종, 특히 자동차 업종의 경우에는 미국차업계가 직접적인 타격권에 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치가 떨어진 엔화를 빌려 해외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의 자산을 사들이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복원될 가능성이 있다. 엔화 유입을 통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환경변화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미국 뿐아니라 호주나 브라질, 캐나다 등의 자산이나 자원가치가 높은 나라들도 함께 투자 유입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시장 분석가는 "미국이 엔화 약세로 인해 불만스럽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엔화 약세가 한단계 더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美 위안화 압력에도 中은 '만만디'
실제로 중국은 그동안 미국과 EU 각국으로부터 위안화의 절상 압력을 받아왔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도 중국의 환율조작, 즉 국력보다 느린 위안화 절상 정책과 이에 대한 미국의 정책 대응은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대응은 달랐다. 흔히 우리가 '만만디'라고 부르는 것처럼 중국의 위안화 절상은 지켜보는 투자자의 속을 타들어가게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점진적으로 조금씩 위안화 강세를 추구해 목마른 사람에게 한모금씩 목을 축여주듯 선심성으로 환율을 떨어뜨려왔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별다른 타격없이 예측가능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 中 패권시대 눈앞…고양이가 호랑이됐다
"고양이 새끼인줄 알았는데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
음모론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이라는 후발주자에게 추월당해 글로벌 경제패권을 내주게 되는 두려움이 더 큰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사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이제 중국은 세계 경제대국의 패권을 쥐게 될 전망이다.
당연히 미국에게는 지금의 중국이 과거 일본보다 무섭다는 얘기다. 현 상황에서 이같은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믿거나 말거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환의 전쟁' 음모론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의 엔저 현상이 추세적으로 지속될 지 그렇지 않을 지를 판단하게 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음모론자들의 지적처럼 미국의 엔화절하 용인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는 당분간 추세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음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은 마치 무풍지대를 순항하던 범선이 때아닌 빙산을 만난 것과 같다. 이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과연 우리 당국은 어느 쪽으로든 방향타를 꺾을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