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폭격음 속 1시간 10분 이륙 대기… 11개국 영공 열리자 뜬 시그너스
"애국심 충만해져서 돌아왔다"… 남겨둔 남편·가족 걱정 안고 배뫼산서 재회
[국방·외교부 공동취재단(서울공항)]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작전명 '사막의 빛'으로 리야드에 집결했던 중동 체류 교민 204명이 15일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 내려, 30여 시간 넘는 탈출 여정을 마무리했다.
◆서울공항 활주로, KC-330 '시그너스' 착륙 순간 = 15일 오후 5시 59분,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에 바퀴를 내렸다. 한국시각 기준 오전 4시 13분 사우디 리야드에서 이륙한 수송기는 방콕을 경유해 약 14시간 비행 끝에 한국 상공에 진입했다.
활주로 옆에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 임상우 외교부 공공외교대사, 손석락 공군참모총장, 김홍철 국방부 정책실장, 윤주석 외교부 영사안전국장,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 이광석 국방부 국제정책관 등이 시그너스 앞 스텝카 옆에 일렬로 서서 귀국 교민을 맞았다.
"우리 국민들의 안전 귀국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펼쳐지자, 교민들은 기내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손을 흔들며 활주로를 내려다봤다.

◆'패딩 못 챙긴' 아이들, 태극기 쥔 손 = 오후 6시 10분, 수송기 전방 도어가 열리면서 네 식구가 먼저 트랩을 내려왔다. 흰색 바람막이를 걸친 엄마는 분홍색 털옷을 입은 첫째 딸 손을 잡았고, 아빠는 분홍색 옷차림의 둘째를 이끌었다. 아이들 손에는 작은 태극기가 들려 있었고, 정부 관계자들과 하이파이브와 악수를 나누며 한국 땅을 밟았다.
뒤이어 노란색 외교부 신속대응팀 조끼를 입은 이재웅 전 외교부 대변인이 발을 내디뎠다. 두 번째로 트랩을 내려온 또 다른 4인 가족의 아이를 안규백 장관이 직접 들어 안으며 "잘 왔어, 힘들었어?"라고 묻자,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은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윤주석 국장의 인사에 눈시울을 붉혔다.
트랩을 내려오는 아이들 대부분은 얇은 옷차림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형제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은 "아, 근데 너무 추워", "패딩 못 챙겼어"라며 몸을 웅크렸고, 부모들은 각자 가벼운 캐리어 하나씩을 손에 쥔 채 서둘러 이동했다. '블랙 이글스' 모자를 쓴 교민들이 눈에 띄었고, 히잡처럼 두건을 쓴 외국인 여성과 외국국적 가족들도 섞여 있었다.

◆"33시간 입체작전"… 군·외교 '원팀' 강조 = 안규백 장관은 귀국 장병들을 상대로 한 격려사에서 "사막의 빛 작전을 아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며 "약 33시간 동안 하늘·지상·해상에서 입체적으로 작전을 수행해 임무를 완벽하게 끝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우디 인근 중동 4개 나라에서 우리 교민들을 리야드 공항에 집결시키고, 안전하게 조국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다"며 "공군, 합동참모본부, 외교부, 국방부가 하나의 원팀으로 100%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장관은 취재진에게도 "국민주권 정부의 완벽한 원팀 작전의 성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틀에 걸쳐 리야드로 집결하고, 20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온 분들이 많았고, 노약자와 어린이가 적지 않았지만 물 흐르듯이 큰 사고 없이 작전을 마쳤다"며 "영공 통과를 위해 11개국과 긴급 협조한 것도 우리의 국격에 맞는 대외 협력의 결과"라고 했다.
추가 군 수송기 투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군은 24시간, 365일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언제 어느 때라도 국민이 요구하면 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리야드 현장 "드론·폭격음 들으며 이륙 대기" = 사우디 현지에서 작전을 지휘한 국방부 관계자는 "토요일부터 리야드에 들어가 현지 교민 수, 투입 수송기 대수, 집결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했다"고 했다. 그는 "이륙 직전 주변에 드론들이 떠 리야드 공항 인근 미군기지를 폭격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이 때문에 1시간 10분 동안 이륙이 홀드됐다가 잠잠해지자 출발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비행 중에는 별다른 위협 상황은 없었지만, "우리 무관부와 여러 국가와 긴밀히 협조해 영공을 열어준 덕에 하루 만에 대한민국 국격이 많이 높아진 것 같다는 말을 현지에서 들었다"며 "중동 4개국에 흩어진 교민을 한 곳으로 모은 나라는 사실상 대한민국뿐이라는 평가도 나왔다"고 했다.

◆"집에서 미사일 날아가는 거 봤어요" = 이번 수송기에 오른 교민 204명 가운데는 바레인·쿠웨이트·레바논·사우디 등 네 나라 곳곳에서 미사일 낙탄과 공습 경보를 겪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바레인에서 온 10살 정서은 양은 "집에서 미사일 날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너무 무서웠어요. 미사일 소리가 들리면 집으로 내려갔어요"라며 "공항에서 우리 비행기(군 수송기)를 보고 신기했다"고 했다.
아이 두 명과 함께 먼저 한국으로 빠져나온 박씨(43)는 "한국 와서 드디어 안심이 된다"며 "비행 중에도 혹시 모르니 긴장을 놓지 못했다. 미사일 공격을 워낙 많이 본 터라 비행기 안에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남편은 아직 바레인에 남아 한국인 사장이 하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다시 들어가야 해서 짐을 많이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사우디에… 전쟁 빨리 끝났으면" = 사우디 동부 라스타누라에서 온 4인 가족은 '남겨두고 온 가족' 이야기에 눈시울을 적셨다. 이선아(41)씨는 2살 딸을 안고 "남편 직장이 그쪽이라 가족이 같이 사우디에서 살다가, 시부모님이 관광 차 오셨는데 하필 전쟁이 터져 이틀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그렇게까지 위력적이지 않았는데, 최근 이틀 사이 드론과 요격 소리, 큰 폭발음이 잦아지면서 그 지역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빠져 나온 상태"라며 "남편들은 직업 때문에 못 나오고 엄마들·아이들만 나오는 구조"라고 전했다. "나라에서 '무조건 나와라'고 해주면 좋겠지만, 남편 회사가 한국 회사가 아니다 보니 각자 선택에 맡겨져 더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군 수송기 탑승 과정에 대해서는 "어떤 비행기보다도 편하게 왔다"며 "신속대응팀이 '하루 만에 데리고 온 것'이라고 하더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어머니 최혜정씨는 "세심하게 배려해줘서 너무 편안하게 왔다"고 했다.
◆쿠웨이트·레바논 교민 "매일 미사일·공습음… 버스로 리야드로" = 쿠웨이트에서 온 한-아일랜드 국제 부부 가족도 긴장된 탈출 과정이었지만 '군 수송기 탑승'에 안도감을 드러냈다.
쿠웨이트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오웬 데일리(48)씨는 "매일 밤 미사일 소리를 들었고, 미국 대사관이 공격받는 장면도 봤다"며 "쿠웨이트 한국 대사관이 버스를 마련해 리야드까지 안내했고, 사우디에 도착해서는 군 수송기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이 길긴 했지만, 승무원들이 매우 전문적이고 도움이 많이 됐다"며 "모두가 지쳐 있었지만 한국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고 말했다.
우리말이 유창한 아들 코엔허군(17)은 "밤마다 폭격 소리가 들리고, 근처 미국 대사관 공격도 직접 봐 아주 무서운 상황이었다"며 "한국 대사관이 먼저 연락해 리야드로 가는 버스를 잡아주고, 군 수송기 탑승도 안내해줘 편하게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비행편 줄줄이 취소… 집에 올 수 있을까 걱정" = 사우디 리야드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이윤화(46)씨는 부모님과 함께 귀국 항공편이 줄줄이 끊긴 끝에 이번 군 수송기를 탔다.
"부모님은 한 달 전 싼 항공권을 끊고 관광 겸 오셨는데, 돌아오는 비행편이 전쟁 때문에 취소돼 발이 묶였다"며 "3월 16일 비행편이 취소된 뒤 다른 항공편을 알아봐도 장시간 경유에다 언제 또 취소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컸다"고 했다.
그는 "사우디에서도 미군기지 인근 체감과, 일반 생활권 체감이 달라서 섣불리 말하긴 어렵지만, 종종 경고 문자와 소식이 온다"며 "일단 부모님을 한국에 모셔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김영자(69)씨는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너무 걱정하고 불안했는데, 대한민국이 이렇게 국민을 챙겨주는 나라라는 게 너무 감동이고 행복하다"며 "대사관과 관계자들이 너무 친절하고 잘 챙겨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저는 직장이 사우디 회사라 다시 돌아가야 한다"며 "돌아가는 편도 언제 취소될지 몰라 걱정된다. 뉴스 보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인·외국 국적 가족들도 "이제 안심" = 이번 수송기에는 한국인 204명 외에도 외국 국적 가족과 일본인 2명이 탑승했다.
일본 구마모토 출신 토마루 유이씨는 "바레인에 있을 때 주변에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매일 안전한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의 도움으로 돌아오게 돼 이제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는 "군 수송기에서 여러 서비스를 받고 식사도 제공받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연신 "아리가토(감사하다)"를 반복했다.
외교부는 현지 라마단 기간이라 음식과 물을 구하기 어려운 교민들을 위해 샌드위치 도시락과 간식 박스를 준비했고, 탑승 후에는 군이 도시락과 물을 충분히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국심 충만해져서 돌아왔다" = 서울공항 활주로 인근 배뫼산 축구장 입구에는 귀국 소식에 발걸음을 재촉한 가족들이 오후부터 모여 있었다.
첫 버스가 도착한 오후 7시 10분, "윤아, 저기 있다!"라는 외침과 함께 할아버지가 손녀를 끌어안았고, 딸 장윤정씨와 손녀들을 맞은 할머니 남은숙씨(서울 중구 약수동 거주)는 "가슴이 두근거려 눈물이 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씨는 "날씨가 추워 애들 잠바 가져왔다. 이렇게까지 국민을 보호해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며 "전쟁이 빨리 끝나는 게 늘 기도 제목이었다"고 했다. 장씨는 "급히 나오느라 겨울 옷을 하나도 못 챙겼다"며 "군 수송기 안에서도 너무 많은 지원을 해줘 애국심이 충만해져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한 중년 여성 윤석문씨는 "딸이 사우디에서 외국 회사에 근무하는데, 몇 번 들어오려다 비행기가 없어서 못 왔다"며 "중간 경유할 때 연락이 안 와 혹시 무슨 일 있나 조마조마했지만, 무탈하게 와줘서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친동생 이신애씨와 조카 둘을 맞이한 이창노씨는 "전쟁 중이라 걱정이 컸고, 특히 애기들이라 더 걱정됐다"며 "그래도 이렇게 보니 반갑고 다행이다"고 했다. 이씨는 "현지에서는 미사일·폭격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가까운 나라 소식이 워낙 심각해 걱정을 많이 했다"며 "정부가 너무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중간중간 '편안하냐'고 물어봐줘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막의 빛' 작전으로 중동 네 나라에 흩어져 있던 교민 204명과 외국 국적 가족, 일본인 2명 등 211명은 일단 한국 땅을 밟으며 한숨을 돌렸다.
위험지에 남은 배우자와 가족들에 대한 걱정, 다시 현지로 돌아가야 하는 생계의 짐이 남았지만, "언제든 국민이 요구하는 곳이면 군 수송기로 달려가겠다"는 정부 메시지는 서울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은 교민들의 떨리는 눈가와 맞물려 조용한 안도감으로 번지는 모습이었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