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J 인플레 목표치 높였지만 시장 `냉랭`..양적완화는 미봉책 비판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일본 정부의 중앙은행 흔들기가 내외 비판을 받고 있다. 시장의 반응도 차가웠다. 의도했던 것 중 하나는 엔화 약세였지만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장중 88.3엔대까지 떨어졌다가 소폭 올라 88.74엔을 기록했지만 전 거래일대비 1% 가까이 밀렸다(엔화 가치 상승).
글로벌 환율전쟁을 야기할 것이란 전 세계 통화정책 당국자들의 비판도 잇따랐다.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할 중앙은행이 일본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마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같은 통화정책은 고질병을 앓고 있는 일본 경제에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 아베 총리의 손에 잡힌 중앙은행
일본은행(BOJ)은 지난 22일 올해 처음 가진 통화정책회의에서 물가상승(인플레이션) 목표치를 기존 1%에서 2%로 올렸다. 물가 목표치를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돈을 풀 여지를 만든다는 의미.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출처=월스트리트저널, BOJ) |
현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마이너스(-)0.2%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윤전기' 운운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코드에 걸맞는 조치를 내리며 굴복한 것이다.
BOJ는 4월부터 시작될 2013 회계연도 물가상승률 목표치도 0.4%로, 그 다음 해 목표치도 0.9%로 제시했다. BOJ도 굴복하긴 했지만 목표 달성이 힘들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9명의 통화정책위원 중 2명도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시라카와 총재의 임기는 어차피 4월이면 끝난다. 아베 총리의 손아귀에 BOJ가 잡혔으니 차기 총재는 당연히 코드 인사를 통해 뽑힐 것이 분명해 보인다. 원래부터 BOJ는 정부의 입김에 많이 좌우돼 온 편이었지만 이제 확실하게 '정부 아래 중앙은행'으로 낙인찍혀 독립성은 지금으로선 물건너 간 셈이다.
딱 3년 전인 지난 2010년 1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가 열석발언권을 행사하면서 불거졌던 한은의 독립성 논란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엔 물론 중앙은행도 모르게 화폐개혁이 이뤄지기도 했었다. 이런 면을 떠올려 보자면 일본 통화정책의 후퇴는 씁쓸함을 맛보게 한다.
◇ 차기 BOJ 총재는 누구..관료출신 '유력'
전통적으로 BOJ 총재는 BOJ 내부나 재무성 관료 출신이 선임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1998년 BOJ법이 바뀐 이후 BOJ가 좀 더 독립성을 갖게 되면서 관료 출신은 배제되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차기 BOJ 총재는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위한 나의 기본 정책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못박아 둔 상태. 독립성은 이미 안중에 없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금융장관은 "차기 BOJ 총재는 건강하며 조직을 이끌 능력이 있고 유연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고 언급했었다.
일본 영자지인 재팬타임스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현재 시라카와 총재 후임으로는 5~6명의 후보가 거론되고 있다.
무토 도시로 다이와종합연구소 소장 |
올해 69세의 무토 소장은 재무성 차관 출신으로 2003~2008년 BOJ 부총재를 지낸 경험이 있어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2008년 3월엔 자민당 정권 하에서 BOJ 총재 후보로 나왔지만 참의원에서 야당인 민주당 반대로 좌절됐다. 37년간이나 정부에 몸담았던 인물이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이번에는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무토 소장은 무력해진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BOJ가 더 강력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다.
이토 다카토시(62) 도쿄대 교수 역시 무토 소장과 함께 BOJ 부총재 후보로 올라갔다가 참의원을 통과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인물. 이토 교수 역시 재무차관 출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어에 능숙하며 인플레이션 타깃팅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 온 인물이다.
이와타 가즈마사(66) 이사장은 무토 소장과 함께 BOJ 부총재를 역임했고 이 시절 해외 인맥을 확실하게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타 이사장은 지난달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일본 정부와 BOJ간 협력은 불충분하다"면서 "인플레 타깃은 현 1%가 아니라 1.5% 밑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역시 아베 총리와 코드가 맞을 수 있는 인물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
이들 중 누가 되더라도 관료 출신이 BOJ 총재가 된다. 1993년 마츠시타 야스오(松下康雄) 총재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BOJ 총재와 부총재를 2월 중순까지는 선임할 방침이며 이후 이들은 의회를 통과해야 자리에 오를 수 있다.
◇ 관료출신 BOJ 총재 가능성 높아.. '재정확대 필요' 주장도
일부 경제 전문가들과 야권 인사들은 이렇게 관료 출신 BOJ 총재가 선임돼 정부에 휘둘리는 경우는 있어선 안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역시 자민당이 야권의 협력을 얻어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협력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이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대개는 앞서 거론된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 선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BOJ) 총재(좌)와 아소 다로 부총리(우)(출처=IFR) |
와타나베 대표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BOJ 내부에서 총재가 나오게 되면 입장의 변화가 있을 수 없다"며 "BOJ의 DNA를 갖고 있다면 디플레가 아니라 인플레와 싸우게 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서 후임이 뽑혀야 한다"고 했다. 그는 후임 BOJ 총재는 경제학 박사여야 하며 영어에 능숙해야 한다면서 "다케나카 헤이조는 추천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JP모간증권 재팬은 구로다 ADB 총재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봤다. 아소 다로 부총리가 거론한 요건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것. SMBC 닛코증권은 무토 소장이 유력하다고 거론했다.
한편 통화 확장이 아니라 재정을 풀어야만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레고리 클라크 타마대학(多摩大学) 명예 학장은 재팬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이 돈을 더 많이 찍어내는 것이 처방이 아니라 재정 빅뱅(Fiscal Bigbang)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클라크 명예학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케인지언적 사고를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이라고 비판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이 결국 일본을 고질적인 침체에 빠뜨린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케인지언 폴 크루그먼이 얘기한 `신뢰의 요정(confidence fairy; 여기서는 재정확장 정책을 의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BOJ의 양적완화는 일시적일 뿐이며 부양 노력을 지속성 있게 밀어붙이기 위해선 재정 빅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