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훈련장에 낯익지만 낯선 얼굴이 등장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메달 3개를 땄던 남자 중장거리 간판, 그러나 이제는 헝가리 국기를 달고 서 있는 김민석이다.
김민석은 4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스피드스케이팅 스타디움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트랙을 누볐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날 훈련 장면만큼은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보던 여느 해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민석의 이름은 한국 빙속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2022 베이징 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1500m와 팀추월에서 특유의 지구력과 스피드를 앞세워 중장거리 에이스로 떠올랐고, 차세대 간판으로 불리며 대표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선 더 이상 한국 대표가 아니다. 2년 전 국적을 바꾸며 헝가리 대표로 돌아왔다. 계기는 뼈아픈 일탈이었다. 2022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인근에서 벌어진 음주운전 사고에 연루되며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1년 6개월 징계를 받았고, 2023년 5월 재판에서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은 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자격 정지 2년 처분까지 더해졌다. 사실상 국내에서 국가대표 커리어를 이어가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막다른 길목에서 김민석에게 손을 내민 건 헝가리였다. 2024년 헝가리 빙상 대표팀의 한국인 지도자 이철원 코치가 귀화를 제안했고, 김민석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국적을 바꾼 그는 헝가리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을 뛰며 올림픽 출전권까지 스스로 따냈다. 이번 대회 헝가리 선수단 안에서 유일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이다.
밀라노에선 그가 선택한 길과 남겨둔 흔적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김민석은 헝가리 소속으로 빙판에 서 있지만, 훈련 파트너는 예전 동료들이다. 한국 대표팀과 같은 조로 타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훈련을 지켜보던 국내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는 "경기가 끝나면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올림픽에서 김민석의 메달 전망이 밝은 건 아니다. 2025~26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4차 대회에서 헝가리 대표로 나섰지만, 주종목인 남자 1500m에서는 1차 대회 9위 한 번을 제외하면 톱10 경쟁도 버거웠다. 예전 한국 대표 시절처럼 시상대를 밟지 못했고, 전체 흐름으로만 보면 입상 후보라기보다 결선 진출을 노려볼 중위권 선수에 가깝다.
그럼에도 김민석의 이름이 다시 화제를 모으는 건, 기록보다 그의 인생사 때문이다. 한때 태극마크를 달고 빙상장을 뒤흔들던 에이스가 음주운전 사고와 징계 끝에 국적을 바꾸고, 이제는 헝가리 국가대표 패치를 단 채 옛 동료들 사이에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같은 트랙 위를 돌지만, 출발선 옆에 꽂힌 국기는 서로 다르다.
김민석에게 이번 올림픽은 세 번째이자 가장 복잡한 올림픽이 될 전망이다. 더 이상 한국 빙속의 미래는 아니지만, 여전히 올림픽 빙판 위를 지나는 스케이터로 남아 있다.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도 한때 팀의 중추였던 선수를 경쟁국 유니폼을 입은 라이벌로 마주해야 하는 묘한 상황이다.
밀라노의 링크 위에서 김민석은 여전히 익숙한 자세로 빙판을 가른다. 달라진 건 유니폼 색깔과 깃발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한국 팬들의 감정선이다. 이번 대회에서 그가 어떤 성적을 내든, 김민석이라는 이름 옆에는 '헝가리 대표'라는 표기와 함께, 한국 빙속이 외면했던 한 에이스의 복잡한 궤적이 함께 기록될 것이다.
zangpab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