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담금 감내 못하면 사업 멈춰
제도 엇박자에 도심 주택공급 중단 위기
[서울=뉴스핌] 정영희, 송현도 기자 = "이제 정비사업 시장에선 3.3㎡당 1000만원을 전제로 사업성을 따져야 합니다. 공사비 상승은 이미 현실입니다."

◆ 공사비 1000만원 시대…사업성 기준선 바뀌었다
최근 만난 김제경 투미부동산연구소장은 현재 재개발·재건축 시장을 "될 곳만 되는 구조"라고 표현했다. 건설 경기 침체와 분양시장 위축이 겹치며, 모든 정비사업지가 같은 출발선에 서있는 것이 아닌 실정이다.
김 소장은 "서울이라고 해서 모두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같은 서울이라도 일반분양이 가능한지, 신축 가격이 얼마나 형성될 수 있는지에 따라 사업 추진 가능성은 극명하게 갈린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재건축 안전진단 신청이나 추진위원회 발족만으로도 가격이 뛰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제는 재개발·재건축을 한다는 말만으로는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분양이 가능한지, 분양가를 어느 수준까지 받을 수 있는지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예전엔 조합이 시공사를 고르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시공사가 사업지를 선별하는 시장이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공사비를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가 입찰 성사의 전제가 됐다. 시공사 우위 시장이 굳어지면서 조합의 협상력은 크게 약화됐다.
공사비 상승은 정비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3.3㎡당 공사비 500만~600만원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재는 900만원 이하로는 신규 수주 논의 자체가 어렵다"며 "착공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사업장은 평당 1000만원 전후를 기준으로 사업성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공사비 상승이 분양가에 모두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김 소장은 "분양가는 정부의 직·간접적인 통제가 있기 때문에 결국 공사비 상승분은 조합원 분담금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분담금 부담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합원 분담금 수준도 급격히 높아졌다. 그는 "과거에는 분담금 3억~4억원이면 부담이 크다고 했지만 지금은 6억~7억원이 기본선이 됐다"며 "일부 사업장은 10억원을 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사업 기간이 10년 이상 지연된 곳이나 이제 막 출발하는 사업장일수록 분담금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분담금이 10억원을 넘는 구간부터는 조합원 내부에서도 인식 차이가 뚜렷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조합원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갈라지면서 비상대책위원회가 나타나거나 심한 경우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도 사업이 진행되는 곳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집값이다. 김 소장은 "서울 강남권처럼 신축 아파트 가격이 40억~50억원까지 형성되는 지역에서는 분담금이 높아도 사업을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며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지방 대부분 지역은 분양 리스크와 분담금 부담으로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입지가 약한 곳들은 사실상 정비사업이 멈춘 상태"라며 "결국 지금의 정비사업 시장은 철저한 옥석 가리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 제도 엇박자…이주비 제한·토허구역 겹쳐 혼란
정비사업을 둘러싼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 묻자 김 소장은 각종 제도가 시장 현실과 괴리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제도 중에서 도심 공급을 가로막는 가장 상징적인 제도로 언급한 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이다.
김 소장은 "재초환은 애초에 재건축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며 "이 제도가 유지되는 한 정부가 아무리 공급 확대를 말해도 현장에서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부담금 부과 구조가 불합리할 뿐 아니라, 실제 부과 과정 역시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사업 불확실성만 키운다"고 부연했다.
재초환의 가장 큰 맹점은 부담금 규모보다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업 초기에 수익 구조를 계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조합과 시공사 모두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려워서다.
정부의 금융 규제도 현장 체감이 크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주비와 중도금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 대출이 막힌 조합들이 고금리 사업비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며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이 수천만원씩 늘어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주비 대출이 막히면 조합이 PF(프로젝트 파이낸싱)로 고금리 자금을 조달해 조합원에게 빌려줄 수밖에 없다. 집값을 잡으려고 마련한 규제가 분담금 부담을 오히려 키우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하 '토허구역') 지정과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5년 재당첨 제한이 동시에 적용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조합설립인가 전에는 토허구역으로, 이후에는 전매 제한으로 사실상 출구가 막히는 데다 5년 재당첨 제한까지 겹치면 현금청산 위험이 커져 조합원 갈등이 불가피해진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김 소장은 "정비사업은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라며 "단 한 명의 조합원이라도 제도에 걸리면 사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제도적 압박이 비대위 출현과 소송으로 이어지며 사업 지연을 초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올해 부동산 시장 전망은 어떨까. 그는 "양극화와 신축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며 "도심 공급이 막힌 상황에서 신축 아파트의 희소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상가, 오피스텔, 비주택 자산은 상당 기간 어려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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