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정책이 파도라면 시장은 거대한 바다다. 거센 파도가 바다를 일시적으로 요동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바다는 곧 제 길을 찾아 흐른다. 파도가 바다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믿음은 신기루에 가깝다.
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례로 증명된 바 있다. 2022년 HUG는 신규 공급되는 주택에 입주할 예정인 청년·무주택가구 등의 주택구매자금 원리금에 대해 HUG가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보증을 서는 '주택구매자금 보증 제도'의 지원 대상을 종전 분양가 9억원 이하에서 12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 포레온)의 분양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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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민 건설중기부 기자 |
동시에 HUG가 임차인에게 전세 보증금 반환과 금융기관에 전세자금대출의 원리금 상환을 함께 책임지는 전세금 안심대출 보증의 문턱은 높였다. 2023년 HUG는 전세금 안심대출 보증 신청대상 주택의 부채비율이 90%가 넘는 경우 보증한도를 종전 80%(신혼부부·청년 90%)에서 60%로 하향조치했다. 2022년 대규모 전세사기로 전세보증을 담당하는 HUG의 재정건전성이 우려되자 보증 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은 주택 위주로 보증을 발급한 것이다.
그러나 보증 실적은 정반대였다. 주택구매자금 보증 실적은 2017~2021년 연평균 14만7862건에서 2022~2025년 연평균 11만3981건으로 축소됐다. 반면 전세금 안심대출 보증 실적은 2017~2021년 연평균 10만4884건에서 2022~2025년 연평균 17만3344건으로 확대됐다. 매매가가 고점이라는 인식 하에 정책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인 셈이다.
시장을 이기는 부동산 정책이란 존재하는가?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부동산 시장을 정책으로 제압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수록 시장이 비정상화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앞선 정부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총 28번 내놓으며 정책을 통해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확고히했다. 각 대책이 나올 때마다 일시적으로 시장은 주춤했다. 그러나 약 한 달의 기간을 두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도로 상승세로 전환되는 양상이 반복됐다. 실제 경영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문 정부 집권기 서울 아파트 가격은 총 109% 상승했다. 강력한 수요 억제책이 나올수록 더욱 강력한 매수심리가 이를 역으로 흡수하면서 반등 동력을 얻은 것이다.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재명 정부는 합리적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강조한다. 세금을 통한 시장 압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문 정부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정책이 시장을 압도할 수 있다는 시각은 유사하다. 문 정부 시절과 유사한 강도의 규제책으로 불리는 6·27 대책 후에도 시장의 매수심리는 여전하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7월 서울 아파트 거래 중 56%가 상승 거래였다. 8월에도 53%가 상승 거래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달 7일 보완책으로 9·7 부동산 공급대책을 발표하며 규제지역 내 가계대출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상한을 기존 50%에서 40%로 강화했다. 그러나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이달 9일 0.09%로 직전(0.08%) 대비 상승폭이 커졌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지만 정책과 시장의 온도차는 여전하다.
시장을 이기는 부동산 정책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버릴 때다. 수요 억제책은 단기적으로 집값 안정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는 거래 시점을 늦추는 양상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부동산 대책을 내겠다"고 말한 바 있으나 잦은 정책 발표는 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밖에 없다.
공공이 주도해야 시정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선 시장의 흐름을 지켜보고 분석해야 한다. 시장 변동에 즉각적 충격을 가해 진화를 시도하는 방식만은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정책이 파도라면 시장은 바다다.
blue9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