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평화연구원·한국외대 초빙 연구위원
전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책임연구위원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 한반도 긴장 키워
'북극 항로' 경제 카드로 대러 외교 활용을
튼튼한 한미일 협력 속 안보 네트워크 강화
여야 초당적 한반도 평화 로드맵 만들어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66년 만에 한 자리에 서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세 사람의 모습은 단순한 기념식 풍경이 아니다.
그들은 항일전쟁 승리를 내세우며 모이지만 실상은 미국이 이끄는 서방 질서에 맞선 '반서방 클럽'의 재등장을 알리는 듯하다.
광장의 거대한 붉은 깃발 아래 그들의 악수가 동아시아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냉전의 유령이 다시 깨어나 한반도를 휘감는 이 순간 한국은 벼랑 끝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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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제주평화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북중러, 에너지 안보 위협 '실체적인 힘'
과연 이 거센 파도 속에서 한국의 배는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까. 단순한 외교 쇼가 아니라 세상이 다시 양극으로 갈라지는 신호탄처럼 느껴지는 이 만남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기 거래로 공생하며 끈끈한 유대를 맺고 있다.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비하려는 뚜렷한 움직임이다.
이들은 제재의 틈새를 파고들며 경제·군사 분야에서 연대를 다지고 있다. 푸틴이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와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은 이들의 결속이 일시적 동맹이 아닌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대한 공동 전선임을 증명한다.
천안문 망루 위에 선 그들의 모습은 마치 새로운 '철의 장막'이 세워지는 선언처럼 한국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 연대는 단순한 정치 쇼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고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실체적인 힘으로 다가오고 있다.
반대편에서 한미일은 '프리덤 에지' 훈련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2025년 9월로 예정된 이 훈련에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가 투입된다는 소식은 표면적으론 북한 핵 위협 대응이지만 속내는 중국의 군사 팽창을 견제하려는 의도다.
트럼프 2기 미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이 결속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런 대립이 한반도 긴장을 더 키운다는 점이다.
국내에선 '훈련 중단'을 외치는 목소리가 여전하고 진영 논리에 빠진 소모전이 반복된다. 안보가 정쟁의 먹잇감이 되는 순간 한국의 발밑이 더 미끄러워진다.
이 이분법적 사고는 위기 속에서 한국을 더 약하게 만들 뿐이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방향타를 놓고 다투는 선원들처럼 말이다.
◆강경·유화 오가는 '하이브리드 전략'
그렇다면 한국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한미일 동맹에만 매달리거나 대북 유화에만 기대는 건 위험한 도박이다. 강경과 유화를 오가는 '하이브리드 전략'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경제 카드로 대러 외교를 다져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첨단 기술은 세계가 탐내는 무기다. 이를 활용해 러시아와 북극 항로 개발 같은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어떨까.
제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러시아를 서방 쪽으로 살짝 끌어당기는 달콤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상호 이익을 엮는 '윈-윈' 게임으로 전환이다.
둘째, 외교의 그물을 더 넓게 쳐야 한다. 한미일은 튼튼히 유지하되 아세안(ASEAN)이나 유럽연합(EU)과의 안보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특정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다자주의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북중러를 고립시키지 않으면서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모을 수 있다.
셋째, 내부에서부터 단단해져야 한다. 안보를 정쟁 도구로 삼지 말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초당적 한반도 평화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 유화정책의 실패와 강경책의 교훈을 곱씹으며 예측 가능하면서도 기민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 국민이 함께하는 합의가 없으면 아무 전략도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1989년 천안문에서 총성이 메아리쳤던 그날, 중국은 안정을 택하며 민주와 인권을 외면했다. 그 선택이 오늘의 신냉전을 불렀다. 이제 그 그림자가 한반도에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북중러 연대는 피할 수 없는 파도지만 이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유연성과 내부 결속으로 항로를 찾을 수 있다. 역사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자에게 미소를 짓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념의 안개를 걷고 국익을 앞세운다면 한국은 이 파고를 넘어설 수 있다. 한국의 선택이 미래의 장을 쓴다. 이를 위해 이제 그 펜을 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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