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보이스 탐지에서 악성앱 차단·대피소 운영까지
통신 3사, AI 기반 기술로 상반기 수천억 원 피해 막아내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통신사가 고객 보호의 최전선에 있는 만큼, 민·관이 함께 대응하는 협의체 구성이 필요합니다. 통신사 혼자만으로는 보이스피싱 문제를 완전히 막을 수 없습니다. 정부, 제조사, 금융사, 경찰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함께하는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합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LG유플러스 사옥. 홍관희 LG유플러스 정보보안센터장은 이날 열린 '보안 전략 간담회'에서 보이스피싱 대응에 있어 통신사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경찰·금융기관·제조사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력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개인의 부주의를 노리는 사소한 범죄가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피해액만 6,421억 원에 달했으며, 연말에는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피해자 1인당 평균 피해액도 약 4,800만 원으로, 단순한 생활비 수준이 아니라 생계와 가정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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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최근 보이스피싱이 생성형 AI와 딥페이크가 결합하면서 수법이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SNS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합성 음성은 본인조차 말투와 억양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홍콩에서는 한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위장한 딥페이크 영상통화에 속아 2,560만 달러가 송금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이스피싱을 탐지하고 차단하는 '최전선'에 있는 통신사의 역할은 이제 단순한 서비스 경쟁을 넘어 사회적 책임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내 통신 3사가 AI 기술과 민관 공조를 통해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의미가 크다. SK텔레콤은 AI 보안 플랫폼 '스캠뱅가드'로 통신·금융 데이터를 연계해 통화 직후 고액 이체를 차단하며, 지난 4개월간 1,070억 원의 피해를 예방했다. KT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음성 DB를 학습한 'AI 보이스피싱 탐지 서비스 2.0'으로 딥보이스까지 판별해 상반기에만 710억 원의 피해를 막았다. LG유플러스는 세계 최초로 온디바이스 '안티딥보이스'를 상용화하고, 전국 1,800개 매장을 '보이스피싱 대피소'로 지정해 4,569억 원의 피해를 예방했다.
통신 3사의 대응이 공통적으로 '실시간 차단'과 '연동성 강화'라는 방향성을 공유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통신사가 신호를 잡아내면 금융기관은 지급을 정지하고,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선다. 발신자 인증과 대규모 네트워크 차단, 고령자 보호에 집중한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국내 통신 3사가 통화 내용 분석·금융·수사 연계·온디바이스 탐지를 결합한 다층적 대응 체계는 한층 촘촘한 방어망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사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가 여전히 늘고 있고, 범죄 수법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민·관이 함께하는 국가 차원의 통합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다행히 금융위원회는 연내 통신·금융·수사 데이터를 통합한 'AI 보이스피싱 플랫폼'을 가동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AI 탐지 기술 상용화의 문턱을 낮췄고, 경찰청은 통신사와 실시간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제도 마련이 범죄 진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범죄가 하루가 다르게 교묘해지는 만큼 대응 체계는 가능한 한 빠르게 제도화되고 현장에 안착해야 한다.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새로운 기능이 아니라, 전화를 끊었을 때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 현실이다.
dconnec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