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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아닌 '필수'가 된 AI, 예술에선 어떻게 쓰이나…코리아나미술관의 AI전

기사입력 : 2025년04월13일 22:16

최종수정 : 2025년04월16일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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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시대, 예술은 무엇을 질문하는가
코리아나미술관 국제기획전 '합성열병',6월28일까지
국내외 작가 9명의 다양한 질문과 실험 한자리에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현대인에게 인공지능(AI)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궁금한 것을 찾아주는 단순한 검색엔진, 문서작성 등을 도와주는 보조적 도구에 그치지 않고, '삶을 함께 하는 파트너'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미처 인식하지 않았지만 이미 AI는 내 삶 속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에서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식되고, 어떻게 쓰여지며,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이를 살펴보는 전시가 서울 강남구 코리아나미술관(관장 유상옥·유승희)에서 개막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발전하며 우리 삶 속으로 깊숙히 스며든 생성형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본 국제미술전시를 마련했다. 이 전시는 동시대 작가 9명의 시선으로 인공지능을 둘러싼 인간들의 흥분과 두려움과 현재의 지형을 '합성열병'이란 타이틀로 살펴보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싱가포르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호 루이 안의 '역사의 형상들과 지능의 토대', 2024. 실시간 AI 생성 이미지와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75분, 시트지 가벽, 모래, 캠핑의자. 코리아나미술관 전시전경. 2025.03.30 art29@newspim.com

'합성(synthetic)'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AI의 생성 메커니즘을 가리키며, '열병(fever)'은 생성형 AI의 급격한 발전이 초래하는 혼란과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합성열병'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의 저서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1995)에서 착안한 제목이다. 데리다는 아카이브를 단순히 과거 보존의 공간이 아닌 기억과 망각, 권력과 욕망이 뒤얽힌 역동적인 장으로 봤다. 전시는 이런 개념을 'AI시대의 합성 미디어 환경'으로 확장해 탐구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AI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문화적 반향과 그로 인해 파생된 쟁점을 9명 작가의 각기 다른 시선으로 조망한다.

◆합성열병:AI의 생성은 곧 합성의 기술, 사회·기술적 변화의 과도기 도래

최근들어 AI의 발전으로 인간과 기술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는 강력한 게임 체인저이자 촉진제로 작용하며 현대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포스코같은 거대 기업은 AI를 활용해 생산성 극대화라는 긍정적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AI는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딥페이크, 정보조작, 개인정보및 저작권 침해 등 각종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예술계에서도 양측면이 공존한다. 단순한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를 몇초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생성형 AI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믿었던 '창의성'의 경계를 허물고, 창작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이로써 챗GPT와 같은 AI 기반 생성 모델들은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며 누구든 손쉽게 고품질의 합성 이미지, '더 진짜 같은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하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로렌스 렉(Lawrence Lek)이 인간과 AI의 미래 서사를 다룬 83분 길이의 국내 미발표 영상 '아이돌(AIDOL)', 2019. 코리아나미술관 합성열병 전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이미지 제공=코리아나미술관] 2025.04.13 art29@newspim.com

생성형 AI는 마법처럼 순식간에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간과했거나 외면했던 이야기가 숨어 있다. 'AI는 정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코리아나미술관의 '합성열병'전은 AI 기술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AI가 창작과 사회에 끼치는 복합적 영향과 숨겨진 문제들을 살피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이 생성형 AI의 환상 너머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장(場)을 만들고 있다.

◆국내 최초 공개되는 해외 작품과 국내 작가들의 신작을 한 자리에

'합성열병'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인간의 주체성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데이터 추출과 편향, AI 환각, 유령노동 등 다양한 주제를 사진, 회화, 미디어 설치작품 약 30점을 통해 다층적으로 선보인다.

코리아나미술관의 유승희 관장은 "AI 하면 무조건 낯설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늘 이 AI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문화적 반향에 대한 쟁점을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기획전을 마련했다. 최근 AI 아트의 확산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빨라 놀라울 정도다. 생성형 AI의 가능성과 한계, 미래를 동시대 작가들의 시선으로 조망해봤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해외 작가들의 작품과 국내 작가들의 신작을 두루 만나 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로렌스 렉(b.1982)이 인간과 AI의 미래 서사를 다룬 83분 길이의 국내 미발표 영상 '아이돌(AIDOL)'(2019)이 최초 공개돼 눈길을 끈다.

독일 출생의 말레이시아계 중국인으로 런던서 활동 중인 로렌스 렉은 동남아시아의 지정학적 현실을 반영한 미래 세계를 몰입형 가상환경으로 구현한다. 이를 통해 사회·정치 구조 속 예술과 기술이 재구성되는 미래를 그려왔는데 그의 대표작인 '아이돌'은 중화미래주의 세계관으로 구성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트랙비디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2065년 가상의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쇠락한 왕년의 슈퍼스타(디바)가 e스포츠올림픽 '콜 오브 뷰티'의 복귀공연을 위해 AI 작곡가 지오(Geo)를 몰래 영입해 히트곡을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이 서사를 통해 로렌스 렉은 '인간(바이오)' 대 '인공지능(신스)'간의 길고 복잡한 투쟁을 다루며 예술의 독창성과 AI와의 미래 관계에 대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 요나스 룬드 '어떤 것의 미래'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3분41초. [사진=코리아나미술관]2 025.04.01 art29@newspim.com

올 봄 막을 내린 파리 퐁피두센터의 'AI'전에 초대받았던 싱가포르 작가 호 루이 안(b.1990)은 퐁피두센터에서 선보인 신작 '역사의 형상들과 지능의 토대'를 한국팬에게 공개한다. 작가는 목가적 풍경의 초대형 사진 패널을 세우고 그 앞에 두 대의 대형 모니터를 설치했다. 왼쪽에는 작가의 논지를 설명하는 강연 자료가 상영되고 있고, 오른쪽에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형 AI가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송출된다. 관람객은 캠핑의자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인공지능이 기술적 도구를 뛰어넘어 사회적 기억과 권력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게 된다.

호 루이 안은 글로벌 거버넌스와 포스트식민주의 사회에서 노동과 기술, 자본의 교차점에 주목한다. 이번 작품은 작가가 구글의 문화연구소 행사에 참석해 듣게 된 발표에서 비롯됐다.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싱가포르 화가 추아 미아 티의 그림 속 인물을 마주한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사이버네틱스, 식민주의 전략, 후기자본주의, 말레이반도의 역사를 마셜 맥루한의 '지구촌' 개념과 연결해 식민주의적 감시체계와 현대 AI 네트워크의 유사성과 함께 글로벌 네트워크의 문화적 조건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AI가 데이터를 학습하고 생성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신경망 모델이 역사적 형상들을 단순한 데이터 패턴으로 변환할 때 그에 대한 성찰과 윤리적 판단은 사라질 수 있음을 밝힌다. 특히 학습을 위한 데이터셋에는 편향이 존재하는 한편, 신경망은 어떠한 역사적 판단과 윤리적 입장에도 편향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웨덴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 요나스 룬드(b.1984)는 생성형 AI로 영상과 이미지를 제작한 두점의 단채널 비디오 작품을 출품했다. 작가는 근미래 인공지능과 자동화된 시스템이 인간사회의 구조, 정체성,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먼저 '아무것도 아닌 것의 미래'는 인공지능 및 기술의 발달로 자동화된 기계가 업무를 대체하고, 인간의 일자리와 자율성이 위협받는 미래에서 개별 주체들의 절망, 불안, 저항을 다루고 있다. '어떤 것의 미래'는 일곱 개의 집단 그룹상담을 통해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소외, 정체성 변화, 기술의존성이 초래하는 불안 등을 고찰한다. 두 작품에서 작가는 기술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역할과 가치를 재고하고,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윤리적, 철학적 쟁점을 제시하고 있다.

말레이반도의 디아스포라와 탈식민주의 역사에 스며있는 거대 서사를 다뤄온 프리야기타 디아(b.1992)는 '열대 터빈'아라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열대 터빈'은 동남아시아의 고무 플랜테이션 역사와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 추출주의'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한 2채널 비디오 작품이다. 작가는 두 착취의 형태가 서로 다른 듯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오버랩된다고 주장한다. 즉 식민시대의 추출이 권력의 불균형, 불투명성 같은 원칙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오늘날 디지털사회에서는 인간 활동이 AI와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되고 수치로 변환돼 데이터화되면서 새로운 형식의 착취와 식민지적 관행으로 이어진다고 비교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나선형의 소용돌이는 고무 채취 패턴을 재구성한 것으로 식민지적 추출을 은유한다. 나선형은 중심으로의 이동과 그로부터의 이탈이 가능한 형태이며, 이는 관객을 창조와 소멸의 무한한 세계로 이끌고 식민지적 권력과 착취의 본질을 넘어 이러한 고리를 풀고 재조정하는 방식을 상상하게 만든다.

[서울=뉴스핌] 정영호 'Face Shopping' 연작, 2020,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0x40cm(each). [사진=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5.03.30 art29@newspim.com

한국 작가인 김현석(b.1988)은 인공지능과 공동집필한 소설을 오디오 설치형식으로 제안한 '메모리즈'를 출품했다. '메모리즈'는 구버전의 텍스트 생성 AI모델인 GPT-3와 작가가 함께 한줄씩 주고받으며 공동집필한 8편의 옴니버스 소설이다. 각 소설은 '1975년 최초의 디지털 이미지'부터 '딥페이크 오바마'까지 디지털 이미지 처리역사의 분수령이 된 8개의 이미지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21, 2023년 각기 다른 형식으로 발표됐고, 이번에는 2025년 새 버전을 만날 수 있다.

관객은 푹신한 빈백 소파에 앉아, 캐릭터 손 모양의 3D조형물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에 재생되는 영상과 함께 오디오북 형식의 소설을 들을 수 있다. 전통적인 '독서' 보다는 영상콘텐츠 시청이 압도적으로 증가한 현대의 미디어 소비 행태의 변화, AI 음성 합성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오디오북 콘텐츠의 확산 등 기술이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업이다.   

정영호(b.1989)는 사진을 중심으로 동시대 기술매체가 시각 경험을 매개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스크린을 경유해 마주하는 AI 생성 이미지와 육안으로 경험하는 현실세계와의 간극을 조명한다. 마치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은 가상의 이미지를 통해 실재와 재현, 원본과 변형의 구분이 점차 해체되고 있는 현실을 다룬다.

정영호의 출품작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빨강, 파랑, 초록으로 구성된 패턴이 명도 차이를 두고 배치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스마트폰에 사진을 띄우고 카메라를 스크린에 밀착해 접사촬영하는 방식을 통해 패턴을 가시화한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에서 이러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으며, 흑백 사진과 프린트가 중첩되어 있는 '무릎 수건'에서는 두 이미지를 통해 서로 다른 세계의 대비를 살펴볼 수 있다. 카메라를 비롯한 네트워크, 스크린 등의 물리적인 기술 조건을 거친 화면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과 현실세계에서 느끼는 감각과 정서의 차이를 주목한 작품이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방소윤 '내가 너를 보듯, 너도 나를 보았니?' 2024, 캔버스에 아크릴, 175x175cm. [이미지 제공=코리아나미술관]
[이미지 제공=코리아나미술관] 2025.03.30 art29@newspim.com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방소윤(b.1992)은 동등한 위계의 디지털및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두 세계간 감각적 간극을 회화를 통해 탐구해왔다. 작가는 3D 프로그램및 AI 기술로 가상의 이미지를 구현한 뒤, 이를 캔버스에 재현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현실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텍스처의 매끄러움을 가시화하기 위해 미세한 입자를 표면에 분사하는 방식의 에어브러시를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의 '폴리모프' 연작은 작가가 AI 이미지 생성기를 동등한 인격체로 간주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생성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작은 황동조각 '무제'를 AI에게 학습시키며, 가상의 이미지에 탈 조각을 씌우고 인공지능과 함께 이미지를 재구성(reimage)했다. 이 과정에서 AI는 배경과 형상을 구분하지 못하며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인식했고, 이로 인해 빈틈과 오류의 결과물로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냈다. 방소윤은 이같은 재구성 과정을 계속 추적하고 변형하며,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형상의 일부를 캔버스에 담아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양아치 '고스트 1.0.0 '.2025, 2채널 비디오(프로젝션+모니터), 컬러, 사운드, 35분, 혼합매체, 가변크기. 코리아나미술관 전시전경. 2025.03.30 art29@newspim.com

양아치(b.1970)는 기술중심 사회 속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과 그 이면의 사회문화, 정치적인 영향력을 비판적인 태도로 탐구해온 작가다. 감시 기술, 빅데이터, 인공지능, 스마트 시티 등의 미래지향적 기술과 매개하는 현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모색해왔다. 그의 신작 '고스트 1.0.0'는 오랜 기간 지속해온 리서치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며, 비물리적 환경이라 여겨지는 인공지능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을 탐구한다. 프로젝션된 화면에서 작가는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위성 이미지를 통해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단지 등 현대기술 인프라와 밀접한 장소를 주목하는데, 이들 일부는 한국에서 보안을 위해 감춰진 시설이다.

모니터에는 가상의 인물 '샐리'가 시리, 빅스비 같은 지능형 개인비서를 부르며 유령, 플랫폼, 인공지능에 대한 문답을 나눈다. 작가는 개인과 사회, 자본과 군사, 데이터와 환경파괴가 얽힌 복합적 네트워크에 접근하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개인의 정보와 국가안보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탐구한다. 이를 통해 기술이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권력구조와 네트워크에 긴밀히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장치임을 드러내고 있다.

기술과 기계가 인간과 맺는 관계에 관심을 갖고, 디지털과 아날로그, 가상과 현실세계의 교차점을 탐구해온 장진승(b.1991)은 이번 전시에서 고도화된 AI를 탑재한 전쟁기계와 자율무기 활용이 촉발한 사회적 변화와 새로운 시각 체계에 주목한 신작 영상을 선보인다.

장진승의 '깊은 정찰:스펙트럼 해독자' 속 가상세계의 시뮬레이션은 현실적 비현실을, 풀-스펙트럼 카메라로 촬영한 현실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비현실적 풍경을 그려내며 서사를 펼쳐간다. 영상의 주인공인 해독자는 설산에서 처음 감지한 신호를 따라 사막을 힘들게 지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흐려진다. 마침내 섬에서 그는 결국 신호를 해독하는 존재에서 생성하는 존재로 변모하고, 도시에서는 더 이상 무엇을 해독할 필요 없이 기계가 바라본 세계와 마주한다. 결국 인간의 시선은 이제 기계적 시각을 이해할 수 없는 잔향으로만 남게 된다. 제목에 언급된 '스펙트럼 해독'은 알고리즘의 규칙과 체계를 파악하는 과정으로, 데이터의 구조와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기계의 시각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장진승 '깊은 정찰:스펙트럼 해독자', 2025, 단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이미지 제공=코리아나미술관] 2025.03.30 art29@newspim.com

'오늘날 AI는 예술에 어떻게 스며들고, 과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합성열병'전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인공지능과 예술과의 관계, 인공지능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문제점 등을 돌아보게 한다.

서지은 학예팀장은 "생성형 AI라는 기술은 예술계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이자 많은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를 무조건 찬양하거나 무조건 비판하기 보다는 'AI가 과연 예술가를 뛰어넘어,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 기술 이면에 도사린 여러 단면과 요소들을 작가의 작품과 함께 탐색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 미술관, AI 전시 잇따라 개최

근래들어 세계 주요 미술관들은 인공지능(AI)을 현대미술과 테크놀로지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전시를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도쿄 모리미술관은 '머신 러브: 비디오 게임, AI, 그리고 현대미술'을 올 2월부터 개최 중이다. 프랑스의 퐁피두센터가 인공지능을 테마로 한 기획전을 개최한데 이어 파리의 현대미술관인 주드폼(Jeu de Paume) 국립미술관도 'AI에 따른 세계'를 최근 개막했다. 지난 10년간 현대예술가들이 AI를 활용한 방식과 AI가 미술 안에서 자리잡아온 과정을 살펴본 전시다. 이같은 글로벌 흐름 속에서 한국의 코리아나미술관의 '합성열병'은 시의성 있는 기획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편 대중에게 'AI 아트'를 각인시킨 곳은 글로벌 미술품경매사 크리스티다. 크리스티는 지난 2018년 프랑스의 3인조 작가그룹 오비어스가 AI를 활용해 그린 가상의 남성초상화를 약 5억원에 판매해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예상가의 40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이 사건 후 각국에서 AI 아트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AI 테크놀로지를 작업에 솜씨 좋게 녹여내는 레픽 아나돌(미국)같은 슈퍼스타 작가들도 잇따라 탄생했다.

크리스티는 올 2월에는 AI로 만든 작품만 모은 '증강지능'경매를 개최했는데, 이 소식에 6500명에 이르는 인간 예술가들이 '경매취소'를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작품 생성을 위해 사용된 AI 도구들이 예술가들의 허락 없이 작품을 학습했다. 저작권 침해이자 도용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경매를 강행했고, 34점 중 28점이 판매되는 성과(낙찰액 총10억원)를 거뒀다. 

소더비도 작년 11월 AI 로봇아티스트 '아이다'가 그린 천재수학자 앨런 튜링(영국)의 초상화 '인공지능 신(AI God)'을 추정가의 7배에 달하는 15억원에 팔며 기염을 토했다. 앨런 튜링은 'AI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인데 로봇 아티스트가 튜링을 그렸다는 점이 화제를 증폭시켰다. 이 사건으로 AI와 예술의 교차점이 확대되고, 다변화되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아이다의 창작자인 에이단 멜러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윤리적·사회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도도한 흐름은 시작됐다. 이번 초상화는 AI의 힘이 우리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것인지 질문하게 한다"고 했다.

예술에서 AI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고, 어떻게 쓰이며, 어떻게 평가 해석되고 있을까를 다양한 작업을 통해 짚어본 코리아나미술관의 기획전 '합성열병'은 오는 6월 28일까지 계속된다. 또한 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5.2~5.31)'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게더링 AI-모두를 위한 기술 접근성'을 운영한다. 강연과 워크숍, AI 리터러시 레벨 테스트, 보드게임 체험존 등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AI기술에 대한 이해와 예술의 관계를 깊이 탐구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한편 코리아나화장박물관에서는 서른번째 소장품테마전인 '정성을 담은 보자기'를 오는 8월 14일까지 개최한다.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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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테더 '5700원·1600원' 제각각 거래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대표적인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 가격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크게 널뛰었다. 한때 가상자산 시장이 흔들리자 1600원에서 5700원까지 오가며 심한 변동성을 나타낸 것이다. 달러와 1:1 연동돼 '안전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불안정적인 자산이 된 셈이다. 14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6시쯤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테더 가격이 1655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미국 트럼프대통령이 희토류 수출 통제에 맞서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이 급락했고 이에 따라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에 수요가 몰린 여파다. 빗썸에서 거래된 테더 시세창. [사진= 빗썸 갈무리] 테더는 달러와 1:1로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때 달러/원 환율은 1436원이었지만 김치프리미엄이 10% 이상 붙으면서 테더 가격이 환율 이상으로 벌어졌다. 김치프리미엄은 국내와 해외거래소 간 가상자산 가격 차이를 의미한다. 같은 시각 빗썸에서는 테더 가격이 5755원까지 오르는 이상 급등 현상도 발생했다. 달러/원 환율을 상회한 것은 물론 업비트를 비롯한 다른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거래 가격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특히 빗썸의 경우 렌딩(코인 대여) 서비스 청산 과정에서 이 같은 급등 현상이 발생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빗썸의 렌딩서비스는 대여한 메이저 자산의 시세가 급등락해 자동상환 레벨에 도달하면 모두 시장가로 매도되는 구조다. 이후 확보된 원화로 대여했던 가상자산을 시장가로 매수해 상환하게 된다. 청산 과정에서 시장가 매수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테더 가격을 계속 밀어 올렸다는 관측이다. 테더 가격이 급격히 뛰면서 빗썸에서 테더를 대여한 일부 투자자들은 예기치 못한 청산 사태를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 빗썸은 상환 매매 발생 시 시세 왜곡 상태를 방지하는 '도미노 청산 방지 시스템'의 작동 여부 등을 점검하고 후속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상 달러 등 실물자산과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혀왔다. 테더 또한 국내 시장에서 달러 자산의 저장 및 거래 수단으로 활용도가 높게 평가됐다. 그런데 이번 변동성 장세에서 국내 거래소의 테더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 사실상 '스테이블코인=안전성'이라는 개념이 깨진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테더(USDT) 는 스테이블코인이기 때문에 다른 코인 가격이 변하더라도 가치는 유지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테더 수요가 높은 국내 하락장에는 1달러보다 가격이 높아지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며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파생상품을 사용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거래 청산을 막기 위해 추가 테더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주의도 요구된다. 국내시장에서 테더를 포함한 특정 가상자산에 대한 공급 대비 수요가 순간적으로 크게 앞서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이 또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관련해 이날 기준 빗썸 내 대여금액 1위 종목은 테더로 대여 금액은 933억원이 달한다. 이는 2위인 비트코인 대여금액(218억원)의 4배 수준이다. 코인 대여 서비스 상위 자산인만큼 변동성 위기 시 청산 위험도 높게 평가된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자산 급등락이 발생할 때 국내 거래소에서 해당 가격변동이 100% 반영되지 않아 김치프리미엄 또는 역프리미엄이 발생하고 여기에는 테더도 포함된다"며 "이번 폭락 사태의 경우 국내 거래소의 원화 거래가격이 폭락을 전부 반영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김치프리미엄이 붙게 됐다"고 설명했다. romeok@newspim.com 2025-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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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온스당 4100달러 돌파…유가 상승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과 중국 간 여전한 무역 갈등 우려와 금리 인하 기대감 속에 13일(현지시간) 금값이 온스당 4100달러를 돌파했다. 국제유가는 반등했는데 백악관이 중국과의 긴장 완화를 위한 합의 가능성을 시사한 데 주목하며 배럴당 60달러 아래에 머물렀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 12월물은 3.3% 뛴 온스당 4,133달러에 마감했다. 금 현물은 장중 한때 4,116.77달러까지 올랐다가 한국시간 기준 14일 오전 2시 47분 기준 2.2% 오른 온스당 4,106.48달러를 기록했다. 금괴 [사진=로이터 뉴스핌]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한 중국에 오는 11월 1일부터 추가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고, 이달 말 한국 경주에서 예정됐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만날 이유가 없는 것 같다"며 부정적으로 발언해 긴장감을 키웠다. 이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을 만날 것으로 낙관하면서 갈등 완화를 시사하긴 했으나,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금 가격은 올해 들어 56% 상승하며 지난주 처음으로 4,00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번 상승세는 지정학적·경제적 불확실성,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 중앙은행들의 꾸준한 금 매입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블루라인퓨처스의 최고시장전략가 필립 스트리블은 "금 가격의 상승 모멘텀은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며 "2026년 말까지 5,0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의 꾸준한 매입, 탄탄한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입, 미·중 무역 긴장, 그리고 낮은 미국 금리 전망이 금 시장의 구조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레이더들은 10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확률을 97%, 12월 인하 확률을 100%로 반영하고 있다. 금은 이자 수익이 없는 자산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저금리 환경에서 강세를 보인다. 애나 폴슨 미국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전국 경제학회(NABE) 연례회의에서 올해 2차례 추가 금리 인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소시에테제네랄 애널리스트들은 금 가격이 2026년에 5,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스탠다드차타드는 내년 금 가격 평균 전망치를 4,488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상품 리서치 글로벌 헤드 수키 쿠퍼는 "이번 랠리는 지속될 여력이 있다고 보지만, 장기 상승세를 위해서는 단기 조정이 오히려 건강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물 은 가격은 3.1% 오른 온스당 51.82달러를 기록했으며, 장중 한때 52.12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과 마찬가지로 은 가격도 금리 인하 기대와 공급 부족 등 요인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유가도 미중 관련 소식을 지켜보며 반등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2월물은 배럴당 59센트(0.9%) 오른 63.32달러에 마감했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1월물은 59센트(1%) 상승한 59.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중국과의 관계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11월 1일로 예정된 관세 부과 계획은 여전히 유지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본토 깊숙이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토마호크 미사일'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 회원국으로부터의 원유 공급 차질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가 상승 재료가 됐다. DBS의 애널리스트 수브로 사카르는 "현재 시장의 매도세는 워싱턴과 베이징이 협상 의지를 보이면서 진정된 모습"이라며 "단기적 유가 흐름은 결국 무역 협상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OPEC은 이날 월간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의 전 세계 석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했다. OPEC은 보고서에서, OPEC+ 산유국들의 증산이 이어지면서 2026년 석유 공급 부족 규모가 이전 예상보다 훨씬 작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가 이뤄지면서, 전 세계 원유의 3분의 1이 생산되는 중동 지역에서 전투가 재점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완화됐다. 이날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남아 있던 마지막 생존 이스라엘 인질들을 석방했다. kwonjiun@newspim.com 2025-10-14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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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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